▲ 소송을 제기한 셰너 올리치(왼쪽)와 크리스티나 첸-오스터 전 부사장, 리사 패리시 전 상무이사. 로이터/뉴시스 |
최근 골드만삭스의 남성 중심적 기업문화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얼마 전 골드만삭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세 명의 전직 여성 임직원들 때문이었다. 이들은 골드만삭스에 근무할 당시 자신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한편, 그로 인해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모욕감, 그리고 그동안 받지 못했던 임금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 상태다.
“남자 직원들과 함께 억지로 스트립 클럽에 끌려갔다.”
“나보다 실적이 나쁜 남자 직원이 왜 연봉이 더 높은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회사로부터 성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소송을 제기한 여성은 모두 세 명. 8년 동안 전환사채 담당 부서에서 근무했던 크리스티나 첸-오스터 전 부사장(39), 7년 동안 자산운용 담당 부서에서 근무했던 리사 패리시 전 상무이사(48), 그리고 1년 동안 자본구조 프랜차이즈 트레이딩 그룹에서 일했던 셰너 올리치(30)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현재 이구동성으로 “임금 및 승진에 있어 성적인 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 즉 골드만삭스의 남성 중심적인 기업문화로 인해 남자들과 동일한 능력과 경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보다 임금 수준은 더 낮고, 승진 기회도 더 적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뉴욕 지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골드만삭스는 직장 내에서 여성들을 차별하는 ‘양식과 관행’을 계속 유지해오고 있다. 이는 분명히 뉴욕시법에 위반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이 언론이 주목을 받은 데에는 이들이 평사원이 아닌 고위 간부였다는 점도 한몫했다. MIT를 졸업한 첸-오스터는 월가에 진출한 이후 한때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런 고공행진은 얼마 가지 못했다. 승진한 남자 직원들을 축하하는 저녁 자리에서 그만 뜻하지 않은 사건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직원들이 우루루 2차로 몰려 간 곳은 다름 아닌 맨해튼의 유명한 스트립 클럽이었다. 오스터는 썩 내켜 하지 않았지만 모든 직원들이 동행할 것을 강요당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억지로 끌려가야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그런 대로 참을만 했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모임이 끝난 후 유부남 동료 한 명이 오스터를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면서 친절을 베풀었다. 하지만 아파트 복도에 들어서자 남자 동료의 태도는 갑자기 돌변했다. 오스터를 벽에 밀어붙인 후 키스를 하고 몸을 더듬으면서 강제로 성관계를 시도했던 것. 억지로 그를 떼어내고 돌아서긴 했지만 오스터는 불쾌한 기분을 삭일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회사에서 마주친 남자 동료는 멋쩍은 듯 그녀에게 사과를 하고는 “어젯밤의 일은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오스터 역시 남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회사 분위기상 조용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고 믿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비로소 2년 후에야 오스터는 뒤에 숨겨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2년이 지나도록 연봉도 오르지 않고, 승진 기회도 계속 박탈당하자 불만을 품었던 그녀는 결국 다른 부서로 옮길 것을 마음먹었다.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던 그 남자 직원은 꾸준히 급료와 보너스가 오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오스터는 자신의 책임 상사에게 2년 전 사건에 대해서 털어 놓았고, 내친 김에 사무실 안에서 남자 직원들 간에 오가는 음담패설을 듣는 것이 매우 불쾌하다는 등 그간 겪었던 직장 내의 성차별에 대해서도 항의했다.
하지만 상사의 반응은 놀랍게도 태연했다. 2년 전 사건이 일어났던 바로 다음 날 당사자로부터 이미 다 들어서 알고 있으니 행여 일을 더 시끄럽게 만들지 말라는 지시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상황은 개선되기는커녕 점점 나빠졌다.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직장 내 분위기는 점점 더 그녀에게 적대적이 되어 갔고, 결국 그녀는 핵심 테두리에서 밀려났다. 중요 업무에서 제외됐고, 직원들 사이에서 오가는 정보 교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2004년 두 번째 출산 휴가를 다녀온 후 부사장이라는 직함에도 불구하고 여비서와 나란히 책상이 배치된 것에 모욕감을 느낀 후 사표를 던졌다.
오스터는 “회사가 나에게 보복을 한 것이다. 성차별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자 나를 승진 대상에서 제외하고,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복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녀는 “내가 아는 대다수의 여성 트레이더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는 남성들이 지배하는 환경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여성들은 능력 여부를 떠나서 남성들 사이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올리치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녀는 자신과 함께 트레이더로 입사한 비즈니스 스쿨의 남자 동창생이 입사 직후부터 승승장구했던 것과 달리 자신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중요 업무에서 제외됐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자신이 트레이더 업무를 거의 보지 못했고, 대신 “블랙베리 설정을 바꿔달라” “복사를 해와라” 등 상사의 잔심부름을 했다면서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직장 내에 만연해있던 남성 위주의 문화에 대해서도 말하면서 해병대 출신인 상사가 쉬는 시간에 직원들과 푸시업 대회를 열거나, 여자인 자신을 따돌린 채 남자 직원들끼리 골프 모임을 가지면서 끼리끼리 어울리는 일도 빈번했다고 말했다. 또한 한 번은 크리스마스파티에 반라 차림의 에스코트걸을 불러서 질펀한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가 남성들 위주의 배타적인 분위기가 된 것은 어쩌면 수치상으로 볼 때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현재 골드만삭스에 근무하는 여성 임원의 비율은 부사장 29%, 상무급 17%, 이사급 14%로 남성들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비단 골드만삭스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월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월가에서 여성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여성들의 금융업계 진출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노동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개회사, 투자은행, 자산관리 회사 등 금융권에 종사하는 여성 근로자들 수가 14만 1000명(2.6%)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남성들은 38만 9000명(9.6%) 늘어났다. 이런 현상은 다른 업종의 여성 노동인구 수가 4.1%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또한 미국 내 금융권 임원들 가운데 여성들의 비율은 16.8%, 그리고 최고경영자는 2.5%에 불과하다.
일부에서는 최근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여성들이 대거 직장을 그만둔 데 따른 결과라고 말하지만, 문제는 금융위기 전인 2001~2006년에도 여직원 수가 꾸준히 감소해왔다는 데 있다.
이런 현상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가령 지난 10년간 대학 졸업 후 금융권에 취직하는 20~24세 여성들은 21.8% 감소했으며, 20~35세의 여성들 수 역시 16.5%가량 줄어들었다. 반면 같은 기간 남자들 수는 7.3% 증가했다.
과거 금융계에 종사했던 여성들은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 “스트레스와 성차별로 얼룩진 직장생활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먼브러더스에서 근무했던 매건 먼틴은 “수많은 여자 직원들이 남자들보다 보너스를 적게 받았다. 이유는 골프 라운딩 등 남자 간부들과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여성들 중 일부는 남자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하루에 15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노동과 남성들 중심의 공기가 통하지 않는 꽉 막힌 온실 같은 갑갑한 직장 분위기도 여성들을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월스트리트에 종사했던 경제전문기자인 하이디 무어는 <데일리비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스트립 클럽이나 성희롱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월가의 ‘데이트 룰’에 있다”고 말했다. ‘데이트 룰’이란 회사가 직원들의 사적인 인간관계, 가령 동료와의 관계, 상사와의 관계, 부하직원과의 관계, 고객과의 관계 등 직장 내의 모든 관계에 대해서 샅샅이 알기 위해 만든 규정이다. 즉 직장 동료 간에 벌어지는 모든 사소한 일들을 직속 상사에게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동료 사원과 사내 연애를 하거나 상사와 데이트를 하거나, 혹은 부적절한 스킨십을 당하거나 심지어 여성 직원에게 추파를 던지는 눈빛을 보내기만 해도 상사에게 혹은 인사과에 직접 보고(?)를 해야 한다. 마치 고해성사와도 같은 이런 규정을 어길 경우에는 임금 및 승진 기회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만일 알아서 고백을 하면 회사 측은 너그럽게 잘못을 용서해준다. 말하자면 “자백만 한다면 실수를 해도 좋다”는 것이다.
가령 자금 담당 부서의 한 간부는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동료 여직원에게 키스를 한 후 인사과에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가 낭패를 당했다. 이 소문은 사내에 순식간에 퍼졌고, 회사 측은 미리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직원의 보너스를 25% 삭감했다. 반면 오스터를 성폭행하려 했던 남성은 알아서 자백을 한 덕분에 불이익을 당하기는커녕 승진과 임금 인상을 보장 받았다.
이처럼 임금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법 대신 스캔들의 당사자들을 다른 부서로 이동시켜 떨어뜨리는 방법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 한 예로 한 유부남 직원과 젊은 여직원이 바람이 나자 남자 직원을 해외로 전근시킨 사례도 있었다. 골드만삭스가 이런 엄격한 룰을 적용하는 이유는 행여 불륜이나 성희롱 등으로 회사 내에서 벌어질지도 모르는 시끄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가령 불만에 쌓인 직원이 화가 나서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복잡한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회사 측의 이런 규정에 대해 골드만삭스 직원들은 회사가 마치 ‘신’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직원들의 동료 관계, 친구 관계, 심지어 부부 관계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있고, 일종의 고해성사를 하도록 강요하고 있으니 신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 측은 이번 성차별 소송 사건에 대해서 “전혀 가치가 없는 일”이라며 “우리는 지금까지 유능한 여성 전문가들을 채용하고 능력을 개발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만일 법원이 이번 소송을 받아들일 경우 골드만삭스 측의 승산은 그리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2004년 비슷한 소송을 당했던 모건 스탠리가 결국 5400만 달러(약 610억 원)를 지불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한 전직 여성 간부가 제기한 성차별 소송에서 패한 모건 스탠리가 지불한 액수는 미 성차별 소송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액수였다. 가장 큰 액수는 1997년 퍼블릭스 슈퍼마켓이 지불했던 8100만 달러(약 930억 원)였다.
‘골드매니츠(Goldmanites)’라고 불리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골드만삭스 직원들이 성차별을 당했다는 사실에 미국인들은 적잖이 놀라워하는 한편 과연 이번 소송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 주목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