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은 자신의 꿈을 위해 KIA와 결별하는 선택을 했다. 사진=이영미 기자
14시즌 동안 총 425경기에 등판해 1986이닝 147승 95패 9홀드, 1673개의 탈삼진, 평균자책점 3.83을 기록한 양현종은 KBO리그에서 20승, 다승왕, 골든글러브, 정규 시즌 및 한국시리즈 MVP, 국가대표 에이스 등을 이뤘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메이저리그 진출. 하지만 현실은 극히 제한된 상황이고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월 5일 현재 양현종과 관련된 메이저리그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에이전트 측에서는 일부 팀에서 미국 에이전트 측과 접촉 중이라고만 밝혔을 뿐이다. 양현종은 과연 새로운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까.
#에이전트조차 파격적이라는 반응
2월 3일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4·토론토)이 스프링캠프 참여를 위해 미국 플로리다 더니든으로 출국했다. 류현진을 시작으로 김하성(26·샌디에이고) 최지만(30) 김광현(33·세인트루이스) 등이 잇달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는 2월 18일 전후로 투수와 포수들이 먼저 모여 훈련을 시작하기 때문에 대부분 선수들은 2월 중순에 스프링캠프지에 모인다. 이런 상황에서 양현종은 아직 계약을 이루지 못했다. 관심을 나타내는 팀들과 접촉 중이라고 하지만 언론을 통해 움직임이 포착되진 않았다.
양현종은 처음 메이저리그행을 선언했을 때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중요한 계약 조건에 포함시켰다. 그러다 메이저리그 FA(자유계약) 시장의 움직임이 없자 마이너리그 거부권 대신 ‘40인 로스터 포함’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시간은 흘러갔고, 양현종은 1월 30일 결단을 내렸다. 아직 제안조차 없는 상태지만 자신이 돌아갈 곳인 KIA와 협상을 마무리 짓고 메이저리그 도전을 계속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양현종은 40인 로스터 포함도 포기했다. 스플릿계약(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따로 두는 방식)으로라도 자신을 불러주는 팀이 있다면 가겠다고 밝혔다. 스플릿계약이지만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로 캠프에 합류할 수 있다면 실력을 인정받고 빅리그 로스터에 진입하겠다는 복안이다. 양현종의 에이전트인 최인국 해피라이징 대표는 이러한 양현종의 선택을 두고 “정말 파격적이었다”라고 회상했다.
“KIA에 남았다면 큰돈을 받고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을 텐데 양현종 선수는 더 이상 계산하지 않고 미국행을 선언한 것이다. 마이너리그 거부권은 물론 40인 로스터도 내세우지 않겠다고 했고, 스플릿계약이라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설령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선수가 내세운 건 한 가지 조건밖에 없었다.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하더라도 잘 던지면 메이저리그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팀이다. 현재 그런 팀을 찾고 있는 중이다.”
양현종 측도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만약 스플릿계약을 통해 초청 선수 신분으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려면 비자 발급이 우선시돼야 한다. 비자 발급 후 스프링캠프에 합류해서 적응하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그 또한 어려운 여정이 될 수밖에 없다.
스플릿계약을 맺은 초청 선수들은 매 경기 생존 경쟁을 펼친다. 자신의 자리가 정해진 상태에서 스프링캠프를 치르는 것과 매번 서바이벌을 벌이는 환경은 큰 차이가 있다. 더욱이 양현종은 루틴이 생명인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현지 구단 스카우트는 양현종의 메이저리그 진출 꿈에 대해 녹록지 않은 현실을 전했다. 사진=이영미 기자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시각은?
미국 현지에 있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의 스카우트(한국인) A 씨는 양현종의 도전에 대해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대호도 그렇고 양현종도 한국 최고의 선수 아닌가. 그들이 어떠한 개런티 없이 스플릿계약을 맺겠다고 나선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대호는 스플릿계약으로 시애틀 유니폼을 입었고 스프링캠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빅리그 로스터에 진입하지 않았나. 양현종한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질 수 있겠지만 빅리그에 오래 머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스카우트 A 씨는 양현종의 도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현실은 부정적인 요소가 많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만약 똑같은 실력을 갖고 있는 미국인 선수와 양현종이 있다고 치자. 내가 구단 관계자라면 적응할 필요 없는 미국인 선수한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양현종은 야구는 물론 언어, 문화 등 적응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동안 KIA에선 양현종한테 모든 걸 맞춰줬겠지만 메이저리그에선 그런 대우는 기대조차 하기 어렵다. 무조건 보여주고, 인정받아야지만 살아남는 상황에서 양현종은 시범경기부터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익숙해진 루틴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맞춰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그 점을 고민할 것이다.”
스카우트 A 씨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영향으로 FA 시장이 얼어붙은 걸 매우 안타까워했다. 일반적인 시즌이었다면 양현종은 비교적 수월하게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었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양현종은 우리 구단에서 오래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었다. 처음 포스팅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 문을 노크했을 때도 포스팅에 응찰했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양현종에 대한 리포트는 해마다 해온 상태고 구단도 관련 자료를 많이 갖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40인 로스터가 꽉 차 있고, 그를 위해 비워둔 자리가 없다. 무엇보다 FA 시장에 나온 많은 투수들이 아직까지 계약을 맺지 못했다.”
양현종이 스플릿계약도 불사한다면 늦게라도 그를 원하는 팀이 나올 수 있다는 게 A 씨의 예상이다. 양현종을 데려갈 팀에서는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초청 조건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년 먼저 진출해서 성공적으로 적응을 마친 김광현의 활약이 양현종한테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A 씨는 “지난 시즌 162경기를 다 치른 해가 아닌 60경기 단축 시즌이었기 때문에 김광현의 성적을 놓고 양현종의 가치를 평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희망을 띄운다!
송재우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은 양현종이 스플릿계약도 감수하겠다고 나선 부분과 관련해서 시기적인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런 내용을 처음부터 제시했더라면 메이저리그 팀들이 좀 더 일찍 관심을 나타냈을 것이다. 조금 늦긴 했지만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는 점에서 양현종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만큼 미국 진출을 간절히 원한다는 의미 아닌가. 양현종이 여러 어려움을 예상하면서도 메이저리그 진출을 감행하는 건 후회 없는 삶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KBO리그에서 더 이상 이룰 게 없다고 판단했다면 미국으로 향하는 게 맞다. 지금은 그의 도전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보다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야구는 결과론이다. 지금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