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는 2016년 초청선수 신분으로 스프링캠프 참가, 스플릿계약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모든 게 낯설었다. 처음에는 훈련장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이대호가 시애틀 클럽하우스에 들어가 맨 처음 찾아간 곳은 이와쿠마 히사시의 라커룸 앞이었다. 이와쿠마는 이대호가 나타나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악수를 청했고, 이대호는 정중히 인사하고 이와쿠마의 손을 잡았다.
이때 이와쿠마의 얘기가 재미있다. 이와쿠마의 통역이 전한 내용은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대회 때 이대호 선수에게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대호는 “어떻게 그걸 기억하느냐”며 활짝 웃었고, 이와쿠마는 “그때 정말 가슴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이대호 선수의 시애틀 입단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반가움을 나타냈다.
이와쿠마로선 한국 대표팀의 4번타자가 시애틀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 신분으로 합류한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대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클럽하우스에서 처음 보는 선수들과 돌아가며 악수를 나눴다. 어느 때보다 밝고 환한 표정이었고, 거침이 없었다.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 신분인 이대호는 한국과 일본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와 가장 낮은 곳으로 걸어갔고, 바늘구멍 뚫기보다 더 어렵다는 빅리그 25인 로스터에 도전했다. 이대호는 스프링캠프에서 불꽃 튀는 경쟁 끝에 개막 25인 로스터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뤘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당시 이대호는 기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25인 로스터에 들어갈 거라고 아무도 안 믿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면 스플릿계약을 받아들이면서까지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대호는 주전 1루수 백업 멤버로 개막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 자체를 즐겼다.
“한국에서는 물론 일본에서도 늘 많은 기대를 받다보니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항상 노심초사했다. 지금은 나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다. 오히려 응원을 많이 받고 있다. 계속 앞만 보고 질주하다가 브레이크 한 번 걸었는데 앞으로 더 나아갈지, 뒤로 퇴보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담을 내려놓고 야구를 즐기고 싶다.”
이대호의 미국 생활은 한 시즌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시즌을 치르며 빅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며 백업 멤버로 활약하는 현실의 벽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대호는 지금도 스플릿계약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야구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으로 저장돼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2016년의 이대호를 소환한 건 양현종도 이와 비슷한 길을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대호도 해냈다면 양현종도 충분히 부딪혀 이겨낼 수 있다. 부디 좋은 소식이 들리길 바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