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문을 연 행복의 집 롯켄은 고령자들을 위한 셰어하우스다. 사진=행복의 집 페이스북
일본 고베시 롯켄미치 상점가에는 녹색의 6층짜리 건물이 있다. 간판은 없지만 아이들이 자주 드나들어 언뜻 아동센터처럼 보이기도 한다. 건물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휠체어에 앉아 있는 고령자부터 하굣길에 들른 아이들, 노트북으로 일하는 노마드족 젊은이 등 다양한 세대가 모여 제각각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곳은 바로 ‘현대판 대가족’이라 불리는 ‘행복의 집 롯켄’이다.
2017년 3월 문을 연 행복의 집은 고령자들을 위한 셰어하우스다. 45개의 개인실이 있으며, 간병과 돌봄이 필요한 30명의 노인이 산다. 입주자들을 일상적으로 돌보는 것은 간병인 10명과 간호사 2명, 작업치료사 1명이다. 개개인에 맞춘 플랜에 따라 입주자의 방을 방문해 돌봄을 지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령자시설의 방들은 디자인이 비슷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행복의 집은 어느 하나 똑같은 방이 없다. 현지 아티스트들이 벽지를 비롯해 하나하나 개성적으로 꾸몄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령자들이 다른 방을 착각해 들어가는 해프닝은 발생하지 않는다.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1층은 입주자뿐 아니라 누구나 출입이 가능한 자유공간이다. “인근 주민과 초등학생 등 일주일에 2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가령 동네의 젊은 엄마가 “한 시간만 아이를 봐 달라”며 부탁하는 일도 있다. 그러면 입주자들은 흔쾌히 받아준다. 그 사이에 엄마는 장을 보고, 아이는 입주자의 말벗이 되어주는 식이다.
행복의 집에 사는 고령자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스스로 결정한다. 1층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자유.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자유다. 사진=행복의 집 페이스북
또 하굣길에 게임을 하러 오는 초등학생, 집에 가도 아무도 없어 놀러온 청소년 등 방문 목적은 다양하다.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외국인 배낭여행객들도 이곳을 찾아 함께 식사를 즐기기도 했다. 입주자들의 식사 준비가 끝나면 주방이 무료로 개방됐기 때문. ‘어르신 시설’인 줄만 알고 이곳을 찾았다면 아마도 놀라움의 연속일 것이다.
행복의 집을 설립한 이는 슈토 요시히로 씨(35)다. 그는 “결혼을 계기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운을 떼며 이렇게 말했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너무 힘들어서 우리 부부,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이렇게 다 모여 살기로 했다. 그때 대가족만이 가능한 ‘고마움’을 실감했고, 행복의 집 롯켄을 시작하는 데 큰 힌트가 됐다.”
어느 날 슈토 씨는 혼자 사는 이웃집 할아버지의 사연을 들었다. “비용이 비싸서 양로원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한 달에 세 번 정도 복지도우미를 불러 도움을 받고 있다”는 얘기였다. 슈토 씨는 “주택과 복지서비스를 동시에, 그러면서도 싸게 제공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만약 그러한 장소가 있다면 노인들의 고독을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슈토 씨는 일반 양로원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입주 가능한 고령자시설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약 1년에 걸쳐 ‘어떤 시설을 원하는지’ 지역주민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다세대 교류가 있는 장소’ ‘어린이 도서관’ ‘지역 식당’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것을 바탕으로 2017년 행복의 집 롯켄이 문을 열었다. 6층짜리 건물은 각층마다 ‘항구’ ‘레트로’ ‘아시아 리조트’ 등을 테마로 꾸몄고 피아노와 탁구장, 게임장 등을 설치해 일반 양로원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행복의 집에 사는 고령자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스스로 결정한다. 1층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자유.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자유다. 4년 전 입주한 92세 여성은 “처음에는 아이들이 시끄러워 싫었지만, 이제는 웃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과 놀거나 누군가가 연주하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거나 하루하루가 지루하지 않다”며 웃어보였다.
1층은 입주자뿐 아니라 누구나 출입이 가능한 자유공간이다. 청소년이나 외국인 여행객이 찾아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사진=행복의 집 페이스북
인력난으로 직원 고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자시설도 많지만, 행복의 집만큼은 예외다. “채용 광고를 따로 내지 않아도 지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이유다. 또 간단한 돌봄은 방문객들이 스스로 도와주기도 한다. 20대 청년 요쓰바토 씨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다. 4년간 방에만 틀어박혀 지내다가 한계를 느낀 어느 날 집을 나오게 됐다. 지금은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다.
그는 “행복의 집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비로소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고 전했다. 특히 항상 “애 쓰는구나”라고 말해주는 91세 할머니와 사이가 좋다. 요쓰바토 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외출했다가 들어서면 할머니는 ‘어서와’라고 말해준다. 그러면 나는 ‘다녀왔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왠지 이런 게 ‘가족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의 집에서 최후를 맞이할 경우 장례식도 치른다. 그럴 땐 입주자 전원과 인근 주민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성대하게 배웅한다. 꼭 혈연으로 연결되어야만 가족일까. 행복의 집을 취재한 후지TV는 “온갖 세대가 뒤섞인 공간이 마치 대가족 같은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초등학생 아이도 휠체어에 앉은 노인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지역 활성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후지TV에 따르면 “‘행복의 집 근처에서 육아를 하고 싶다’며 약 20세대가 주변으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행복의 집을 취재한 후지TV는 “대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초등학생 아이도 휠체어에 앉은 노인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했다”고 전했다. 사진=행복의 집 페이스북
슈토 씨 가족 역시 행복의 집에서 살고 있다. 그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익히는 배움이 있다”면서 “아이를 키우는 데도 이상적인 장소”라고 언급한다. 예를 들어 입주자 중에는 말을 할 수 없는 고령자가 있다. 그 경우 눈의 움직임이나 표정 같은 비언어적 요소로부터 감정을 읽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어린 딸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딸아이에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아기를 대할 때처럼 하면 되지”라는 현명한 답이 돌아왔다.
또 다른 예로 행복의 집에는 ‘별할머니’라 불리는 ‘유명인사’가 있다. 치매환자라 기분이 좋았다가 갑자기 화를 내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이 행복의 집에 처음 온 사람이 있으면 “별할머니, 지금 기분이 안 좋으니까 말은 나중에 거는 게 좋아요”라고 어른스럽게 조언해준다. 별할머니는 특히 인근 엄마들에게 인기가 좋아 ‘10분 인생상담’을 열곤 한다. 10분 뒤면 말끔히 잊어버리기 때문에 허심탄회하게 고민을 털어놓으려는 사람들이다.
슈토 씨는 행복의 집을 운영하면서 느낀 바를 이렇게 전한다. “위화감이 3개 이상 겹치면 ‘아무렴 어때’가 된다. 가령 집단에 한 가지 위화감이 있으면 배제하려고 하지만, 세 가지가 넘을 경우 다양성으로 인정될 수 있다. 무리해서 서로 이해하지 않아도 되며, 같은 공간에서 다른 일을 해도 괜찮다. 여기는 ‘위화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각각의 ‘있을 곳’이기도 하다.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이면 예상외의 화학변화가 일어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