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2월 7일 오후 나온 검찰 고위 간부 인사는 박범계 장관도 ‘마이웨이(My way)’를 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내비쳤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이기도 했다. 박범계 장관은 검찰 고위간부 인사와 관련해 윤석열 총장을 만난다면서도, “검찰총장과 협의를 하는 게 아니라 ‘의견’을 듣는 것”이라는 등 윤 총장의 의견을 참고만 할 것을 시사했다.
윤 총장은 실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추(미애) 라인’ 검사장들에 대한 인사를 요청했지만 박범계 장관은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인사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유임시켰고, 박범계 장관이 중퇴한 남강고등학교 7년 후배이자 추 라인 검사로 분류됐던 이정수 검사장을 법무부 검찰국장에 임명했다. 박범계 장관이 윤석열 총장에게 ‘화해’의 시그널을 보낸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시간이 돌아왔다.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박범계 장관이 인사말을 하러 단상으로 가는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협의 아닌 의견 청취”
2월 2일 검찰 고위직 인사를 앞두고 “검찰총장을 적어도 두 번은 만날 것”이라며 의견을 주고받을 것을 시사했던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당일 곧바로 윤석열 총장을 만나 검찰 인사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법무부는 “박 장관이 윤 총장과 상견례를 한 다음 날인 지난 2일 서울 모처에서 다시 만나 검찰 인사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5일, 윤 총장을 서울고검에서 한 차례 더 만났다.
앞서 전임 추미애 장관과는 분명 다른 행보를 걷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검찰 인사 과정에서 추미애 전 장관은 의견 제시 절차 등을 놓고 윤 총장과 갈등을 빚었고, 인사에서 윤 총장의 측근들을 대거 좌천시키며 ‘갈등 국면’을 야기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추미애 장관 때는 형식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이뤄지지 않아서 문제가 제기됐을 때 갈등으로 나갈 부분들이 있었다면, 박범계 장관의 경우 그런 문제의 소지를 아예 만들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갈등 봉합’ 메시지를 준 것에 따른 조치로 풀이되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치를 할 생각으로 검찰총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지칭했고, 윤 총장과 추미애 장관 간 갈등에 대해서도 “검찰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놓고 협력해 나가야 될 관계인데 그 과정에서 갈등이 부각된 것 같아 국민들께 송구스럽다. 법무부와 검찰이 함께 협력해서 검찰개혁이라는 대과제를 잘 마무리하고, 더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정수, 검찰 견제 맡게 돼
그리고 지난 7일 일요일 오후, 법무부는 검사장 간부 4명의 전보 인사를 발표했다. 예상보다 작은, 그러면서도 풍문으로 돌았던 내용들이 그대로 인사안에 포함됐다. 윤 총장이 ‘교체’를 강력하게 요구했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유임됐다. 1년 이상 서울중앙지검장을 역임, 인사 교체 대상이기도 했던 이성윤 검사장은 앞으로도 한동훈 검사장의 채널A 사건 연루 의혹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윤석열 검찰총장의 가족 의혹 등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게 됐다.
검찰 인사 등을 휘두르는 법무부 검찰국장에는 추미애 전 장관 라인으로 분류됐던 이정수 서울남부지검장을 임명했다. 이정수 지검장은 박범계 장관이 중퇴한 남강고 7년 후배이기도 한데, 이번 인사로 법무부에서 검찰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현재 검찰국장이었던 심재철 검사장은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이동하게 됐고, 공석이었던 대검 기획조정부장에는 조종태 현 춘천지검장이 임명됐다. 공석이 된 춘천지검장에는 김지용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수평이동하게 됐다.
법무부는 “박 장관이 윤 총장과 상견례를 한 다음 날인 지난 2일 서울 모처에서 다시 만나 검찰 인사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5일, 윤 총장을 서울고검에서 한 차례 더 만나 인사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사진=법무부 제공
이들 외 고위 간부의 인사이동은 없으며, 고검장·검사장 승진 인사도 없다고 법무부는 밝혔는데, 채널A 사건에 연루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가 있는 한동훈 검사장도 유임됐다. 윤석열 검찰총장 라인으로 분류된 검사장들의 ‘핵심 보직 복귀’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이두봉 대전지검장도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의 수사와 공판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중간 간부급 검사는 “대전지검 수사 라인 ‘좌천’은 실제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윤 총장이 제안한 게 받아들여진 것이 없을 것 같다”며 “현재 대검이나 수도권 내 규모가 큰 지방검찰청에 윤 총장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있는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평가했다.
박 장관이 윤 총장을 두 차례 만나는 소통과는 별개로, 윤 총장의 인사 희망이 반영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실제 검찰청법 제34조에는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대통령에게 제청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박 장관이 이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은 바 있다.
박범계 장관은 인사에 앞선 2월 4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인사 단행에 앞서 윤 총장의 의견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는 협의가 아닌 ‘의견을 듣는 것’”이라며 검찰총장의 인사 관련 제안은 ‘의견’에 그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박 장관은 “의견을 듣는다는 의미가 법무부 장관의 해석, 검찰총장의 해석, 또 언론의 해석이 다 다르다”며 “논의 수준은 합의, 협의, 또 의견을 듣는 것으로 기준이 있다. 검찰총장 측은 ‘이것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협의에 가까웠다’라고 주장을 해왔지만, 장관 측에서는 이것은 의견을 듣는 역사적 연혁이 있기 때문에 ‘의견을 듣는 것이고 협의와는 다른 것’이라는 입장”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은 바 있다.
특히 두 차례 만남에서, 윤 총장은 주요 수사를 두고 갈등을 벌여온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교체를 희망했으나 박 장관은 “유임될 것”이라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종근 대검 형사부장,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 등 이른바 추미애 장관 라인으로 분류되는 ‘4인방’ 가운데 심 국장만 서울남부지검장으로 보내는 인사를 했다.
이번 인사를 토대로 이성윤 지검장에게 더욱 힘이 실릴 것이라는 평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윤 총장 직무정지 파문 당시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와 고기영 법무부 차관(퇴직)이 ‘검란’에 윤 총장 편으로 합류하면서 자연스레 그가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특히 본인 희망대로 서울중앙지검장에 유임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신뢰를 받았다는 시그널이라는 평도 나온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이전 장관들처럼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 검사들을 계속 중용하겠다고 박범계 장관이 이미 밝혔던 만큼 윤 총장 라인으로 분류되는 특수통 검사들이 중용되기는 쉽지 않았다”면서도 “하반기면 새로운 총장이 와야 하기 때문에 3~4월부터는 고검장이나 검사장급 사이에서 차기 총장을 놓고 치열한 눈치 다툼이 시작될 텐데 이성윤 지검장이 앞서나가는 형세”라고 평가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