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강림’에는 극 중 고등학생인 임주경(문가영 분)과 강수진(박유나 분)이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중국 즉석식품 브랜드 ‘즈하이궈(自嗨锅)’의 인스턴트 ‘훠궈’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여신강림’은 이런 중국 PPL을 과도하게 활용해 논란이 됐다. 사진=tvN ‘여신강림’ 방송 화면 캡처
‘여신강림’에는 극중 고등학생인 임주경(문가영 분)과 강수진(박유나 분)이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는 모습이 나온다. 이들이 먹는 음식의 메뉴를 결정하는 것은 작가의 의도가 아닌 PPL 담당자의 계약이라는 점은 이미 시청자들도 다 안다. 그런데 이들이 먹는 제품은 국내 브랜드의 컵라면이 아닌 중국 즉석식품 브랜드 ‘즈하이궈(自嗨锅)’의 인스턴트 ‘훠궈’다. 그런가 하면 임주경과 이수호(차은우 분)가 앉아있는 정류장에 중국의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京東)’의 광고가 있는 장면도 화제가 됐다. 두 장면 모두 한국의 일상적인 모습과는 다소 이질감이 있다.
이렇게 화제가 된 몇몇 장면에만 중국 브랜드가 노출된 것은 아니다. 임주경의 물건이 담긴 상자에도 중국 기업 브랜드 상호가 크게 보이고 골목길에 홍등이 줄줄이 걸려 있는 낯선 풍경도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은 왜 중국 기업이 한국 드라마에 과도한 PPL을 하고 있느냐다. 당연한 얘기지만 PPL은 광고다. 드라마 ‘여신강림’이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기록할 경우 드라마에 등장한 PPL 브랜드는 상당한 광고 효과를 얻는다. 드라마로 인해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편의점에 가 ‘즈하이궈 훠궈’를 사먹는 게 유행한다면 판매량이 급증해 상당한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편의점에선 ‘즈하이궈 훠궈’는 물론이고 중국 브랜드 인스턴트 훠궈 제품을 전혀 판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고 효과로 이어질 제품이 우리나라에선 판매되지 않는 것이다.
이 정도면 ‘여신강림’은 판타지 드라마다. 대표적인 판타지 영화 ‘해리포터’에서 호그와트 학생들이 특정 브랜드의 마법 지팡이나 마법 빗자루를 타는 장면이 나왔지만 PPL은 아니다. 실제 영화에선 ‘님부스2000’ ‘님부스2001’ 등의 빗자루 브랜드가 유행이라는 대사까지 나오지만 실생활에선 구할 수 없고 필요도 없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여신강림’ 속 인스턴트 훠궈 역시 대한민국에선 구할 수 없어 마법 빗자루 ‘님부스2000’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중국은 왜 이런 PPL에 거액을 쏟아 부은 것일까.
이런 질문은 또 다른 분야에서도 이어진다. 2021년 최대 기대작 드라마 가운데 하나인 tvN 드라마 ‘지리산’의 해외 판권을 중국판 넷플릭스인 아이치이가 구매했다. 김은희 작가가 대본을 쓰고 전지현이 출연하는 ‘지리산’은 총 제작비 320억 원의 대작인데 업계 관계자들은 아이치이가 250억 원 이상을 주고 해외 판권을 사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써 ‘지리산’은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이 너무 ‘지리산’을 보고 싶어 해 아이치이가 거액을 베팅한 것일까. 그건 아니다. 계약 조건을 보면 아이치이의 ‘지리산’ 온라인 전송에서 한국과 중국은 제외된다. 한한령으로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내보내기 어려운 터라 아이치이는 중국 본토에서 ‘지리산’을 서비스하지 않는다. 결국 중국 본토에서는 틀지도 못할 드라마를 거액에 사간 셈이다.
상술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중국인들이 왜 이런 무의미한 PPL과 해외 판권 구매를 한 것일까. 한국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 자신들의 수익까지 포기하며 밀어주려는 것일까. 당연히 그럴 리 없다.
‘여신강림’은 정류장과 골목길 등 일상적인 공간에도 다양한 중국 PPL을 활용해 한국이라고 보기에는 이질적인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사진=tvN ‘여신강림’ 방송 화면 캡처
중국 기업들이 움직이게 된 원동력은 당연히 한국 드라마의 힘이다. 넷플릭스가 주도하는 세계적인 OTT 열풍을 타고 한국 드라마는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 중이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제2의 겨울연가 열풍이 불고 있다. 최근 CNN이 “한국 드라마의 선전으로 2020년 아시아 지역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며 “2020년 한국 콘텐츠의 동남아시아 지역 시청률이 전년 대비 4배 증가했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한국 드라마에 PPL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한국 시청자 층을 겨냥하는 게 아니다. ‘여신강림’ 열풍을 타고 동남아시아 중고생들 사이에 편의점에 가 ‘즈하이궈 훠궈’를 사먹는 게 유행할 수 있다. 이런 열풍은 한한령이 여전한 중국에서도 가능하다. 2020년 방영한 MBC 드라마 ‘꼰대인턴’에 PPL을 한 퓨워터는 아예 박해진을 모델로 계약한 뒤 중국 철도청과 계약하는 성과를 이뤄냈으며 리츠힐러의 치즈마스크팩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무려 1000만 장 계약을 성사시켰다.
중국에서 워낙 인기가 높은 박해진이라는 카드에 한류 드라마 열풍이 더해진 성과다. 이처럼 한국 드라마에 PPL을 하는 것이 이제는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광고 전략이 됐다.
아이치이가 중국 본토에서는 방영조차 할 수 없는 ‘지리산’의 해외 판권을 거액에 계약한 이유 역시 중국이 아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넷플릭스가 아닌 아이치이를 통해 볼 수 있는 대작 한국 드라마’의 가치가 동남아시아 OTT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아이치이는 2019년 6월부터 동남아 등으로 서비스 지역을 넓히고 해외 구독자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아이치이는 MBC ‘나를 사랑하는 스파이’ SBS ‘편의점 샛별이’ tvN ‘간 떨어지는 동거’ 등 지난해에만 30여 편 한국 드라마 해외 판권을 사들였으며 이번에 다시 ‘지리산’에 거액을 베팅했다. 이처럼 중국 자본의 한국 드라마에 대한 투자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여신강림’과 같은 중국 기업 PPL도 계속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