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서울 홍대 순수복합 예술공간 그늘에서 청년창업 및 일자리 간담회에 참석한 우상호(왼쪽)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인물은 기본, ‘대박 상품’ 필수
역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던 후보들은 단순한 인물론을 넘어 서울시민들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대박 상품’을 내세웠다. 민선 서울시장 가운데 유일하게 대권을 거머쥔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내 경선 3수 만에 2002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나왔다. 여당에서는 새천년민주당 김민석 후보가 출마했다.
이 선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계천 프로젝트’를 내세웠다. ‘된다’ ‘안 된다’로 이명박 후보와 김민석 후보가 맞붙으면서 청계천 프로젝트는 선거판을 지배했고, 결국 이명박 후보가 52.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43.0%에 그친 김민석 후보를 눌렀다.
2006년 선거에서는 이명박표 ‘건설 프로젝트’를 이어받은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가 ‘뉴타운’을 내세우며 표심을 자극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측근으로 불리던 강금실 후보가 여성 법무부 장관을 지낸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오세훈 후보가 내세운 대박 상품 ‘뉴타운’에는 당할 수가 없었고, 결국 오 후보는 61.1%의 압도적 득표율로 27.3%의 득표율에 머문 강금실 후보를 가뿐하게 제쳤다.
오세훈 시장은 재선 고지에서 상대로부터 강력한 대박 상품 역풍을 맞는다. 여야가 뒤바뀐 지형 속에서 오 시장은 2010년 민주당 한명숙 후보와 맞붙는다. 상대적으로 대박 상품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민주당은 이번에는 ‘학교 전면 무상급식’이라는 메가톤급 공약을 내놨다.
무상급식 공약의 파괴력은 컸다. 선거판 내내 고전했던 오 후보는 불과 0.6%포인트(p) 차로 한명숙 후보에게 신승했다. 하지만 ‘무상급식’ 이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오 시장은 재선 성공에도 불구, 전면 무상급식 정책을 주민투표에 붙이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져야 했다.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 캠프 경험이 있는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의 충고다.
“서울시장 선거는 막연하게 인물만 보는 선거가 아니라서 공중전과 지상전을 함께 펼쳐야 한다. 잘난 인물됨을 보여주는 공중전은 어떻게 보면 기본이고 유권자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체감도 높은 정책 이슈를 내놔야 한다. 본선은 물론이고 본선보다 더 치열한 당내 경선도 마찬가지다. 당원들에게 먹히는 이슈는 물론, 요즘은 국민경선을 하니 시민들에게 직접 파고드는 초대형 공약을 내놓지 않으면 선거판을 지배할 수 없다. 특히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공약에 더 민감하다.”
2월 7일 서울 마곡나루역 스마트팜 ‘엽채류 재배실’에서 길러지고 있는 채소들을 보고 있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사진=박정훈 기자
#박영선 ‘주머니 두둑, 살림 넉넉’
박영선 후보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낸 경력을 충분히 살리려는 듯 경제 이슈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장관을 지내면서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토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민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 넉넉한 서울을 만들자는 것이다.
박 후보는 그 방안으로 ‘구독경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박 후보는 2월 4일 서울 강서구의 비대면 세탁 스타트업인 ‘런드리고’를 방문, 구독경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박 후보는 “가정에서 우유나 신문을 월 단위로 배달하듯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면 주변의 음식점, 미용실, 세탁소, 꽃집을 이용할 수 있다. 소상공인은 안정적 수입을 올리고, 소비자는 저렴한 서비스를 받는 윈윈경제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앞서 2월 2일에도 서울 양천구 신영시장에서 비대면 정책 발표회를 열어 서울을 소상공인 구독경제 도시로 만들겠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관련된 공약으로 △서울사랑상품권 1조 원 발행 △상반기 내 소상공인 긴급경영안정 특별보증 1조 원 추가 편성 △영업제한 업종 2000만 원 무이자 대출 등을 내세웠다.
또한 박 후보는 자신의 ‘21분 콤팩트 도시’ 구상을 언급하면서 “21분 안에 모든 것이 각 가정에 배달되는 구독시스템으로 소상공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시장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2월 8일에 ‘주4.5일제’ 구상도 내놨다. 4.5일제가 청년·일자리 문제, 여성의 삶과 육아·보육 문제 등 여러 복지 문제와 연결돼있으니 주 4.5일만 일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삶의 혁신을 가져와보자는 것이다.
박 후보는 당의 주력 지지층보다는 중도층 쪽으로 한발 옮기는 모양새다. 그는 야권 주자인 금태섭 전 의원과 관련해 “보듬고 가는, 품이 넓은 민주당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강남지역의 재건축·재개발에 찬성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를 두고 박 후보가 우 후보에 앞서가는 여론조사 지지율을 의식해 경선보다는 본선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박 후보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자신의 후원회장을 맡기로 한 사실도 공개하면서 안정감을 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문 전 의장은 민주당 내에서 가장 정치 경력이 화려한 인물 중 한 명이면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을 가졌다는 평가가 있다. 문 전 의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만큼, 중도층으로의 확장을 꾀하는 동시에 민주당의 전통 지지층 마음도 함께 다잡는 다목적 포석으로 읽힌다.
1월 31일 서울 광운대역에서 지하철 1호선 지하화 및 철길마루 현장 정책을 발표하기 전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우상호 ‘우직하게, 따뜻하게’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낸 박 후보가 다소 고상하게 보이는 ‘스마트형 경제 공약’을 앞세웠다면 우상호 후보는 그의 평소 스타일처럼 우직하고 투박하지만 민주당 전통적 지지 기반인 서민들에게 가깝게 다가서는 ‘복지형 건설 공약’을 전면에 세우고 있다. 서울시내에서의 지역 균형 발전을 통해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서울을 만들자는 공약을 내세운 것이다.
우상호 후보는 2월 4일 서울 신도림역에서 가진 정책발표회에서 강남북 불균형 해소를 위해 1호선 지상구간을 지하화해, 그 위에 ‘연트럴파크’ 같은 공원과 공공주택, 편의시설을 짓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우 후보는 “강남북 균형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이 철도 지상구간이다. 이 장애물을 걷어내지 않고 균형발전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 공공개발과 일부 상업 개발을 통해 철도 지하화 비용을 조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역-온수역, 구로역-금천구청역, 청량리역-창동역을 지하화 구간으로 명시했다. 또 광역급행철도(GTX) B노선을 계획대로 건설하고 경전철 신림선, 난곡선, 서부선, 목동선, 강북횡단선도 조기에 건설해 서울 서남지역 교통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우 후보는 지난 1월 31일에는 박 후보의 ‘강남 재건축’ 공약에 대해 “왜 굳이 수십억대의 강남 재개발부터 하려 하느냐. 그렇게 고액의 아파트를 지으면 집값이 올라가고 투기 억제가 어렵다”고 비판하며 박 후보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공급이 부족해서 하는 재개발과 재건축이라면 오히려 강북 지역의 균형발전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서민’을 앞세우는 우 후보는 2월 1일 민주당 유튜브 채널 ‘델리민주’로 생중계된 국민면접에서도 “부자를 대변하는 보수 후보와 차별화하려면 친서민 정책으로 차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저는 (보증금) 4억 원에 (월세) 50만 원 반전세를 사는 ‘찐서민(진짜 서민)’ 후보”라고 말했다. 등록재산이 수십억 원에 이르는 박 후보를 겨냥하며 서민이 서민의 삶을 알고, 서민을 위한 정책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강조점을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우 후보 공약은 공공재건축과 친노동·서민 정책 위주로 정리할 수 있다. 박 후보보다는 상대적으로 진보적 색채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 후보는 중도 확장보다는 전통적 지지층 쪽으로 몸을 확실히 기울이고 있다. 박 후보가 금태섭 전 의원을 품어야 한다는 말을 내놓자 “동의 못 한다”고 반대했고,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한 태도도 한층 적극적이다. 그는 최근 교통정책을 설명하면서 ‘박원순 철학’ 계승을 언급하기도 했다.
우 후보 측은 앞으로 남은 경선 일정에서도 선명성을 앞세워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의 마음을 잡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우상호 후보 캠프는 유튜브채널 ‘우상호TV’를 통해 서울시의원 79명의 ‘우상호에 바란다’ 응원 릴레이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바닥 지지층은 자신에게 기울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