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31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쿠팡의 김범석 대표(오른쪽)가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 명함을 새로 단 것을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사진=쿠팡 제공
쿠팡은 2019년 4월까지 김범석 대표의 단독대표 체제로 운영돼왔다. 쿠팡은 2019년 4월 11일 정보람 대표와 고명주 대표를 영입해 김범석·고명주·정보람 3인 각자대표 체제로 변화를 줬다. 8개월 뒤인 2019년 12월 31일 정보람 대표가 돌연 사임한 뒤 박대준 대표가 그 자리에 들어왔다. 그렇게 김범석·고명주·박대준 3인 각자대표 체제가 새로 꾸려졌다.
11개월 뒤인 2020년 11월 6일 강한승 대표를 영입해 김범석·고명주·박대준·강한승 4인 각자대표 체제로 운영했다. 두 달 뒤인 2020년 12월 31일 돌연 김범석·고명주 대표가 사임하면서 박대준·강한승 2인 각자대표 체제가 굳혀졌다. 고명주 대표는 회사를 떠났지만 김범석 대표는 쿠팡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했다.
#인사책임자 고명주 대표는 스마일게이트로
김범석 쿠팡 창업자가 대표 자리를 내려놓고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는 시기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 시기와 맞물린다. 김 의장이 대표를 사임한 건 2020년 12월 31일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골자는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 등 처벌을 한다는 내용이다.
정보람 대표(왼쪽)와 고명주 대표는 2019년 4월 11일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당시 쿠팡은 김범석·고명주·정보람 3인 각자대표 체제로 운영됐다. 정보람 대표는 2019년 12월 31일, 고명주 대표는 2020년 12월 31일 각각 사임했다. 쿠팡은 둘의 사임 이유를 “개인적인 사유”라고 밝혔다. 사진=쿠팡 제공
쿠팡 사업장에선 2020년 한 해 동안 5명이 일하다가 사망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공표된 지 5일 만인 2021년 1월 13일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몸집이 커질수록 인명 사고는 필연적으로 많아질 수밖에 없다.
정연승 차기 한국유통학회장(단국대 경영학부 교수)은 “김범석 의장이 형사 책임을 피하기 위해 대표 자리를 내려놨다고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좀 더 편안한 자리에서 시야를 넓히고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선 기업 운영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리스크를 피해야 하는 게 기업의 숙명이다. 김범석 의장이 잘못되면 쿠팡 의사결정에 큰 타격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ICT 업계 관계자는 “투자는 회사가 아닌 인물을 보고 이뤄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투자자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라도 상징적인 인물은 경영자 자리에 있을 필요가 있다”며 “쿠팡의 경우 이제 투자에 애쓸 시기는 지났고, 위기관리가 필요한 시기다. 거기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겹치면서 형사 책임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같은 맥락에서 ‘구조조정 전문가’로 불리며 인사 분야를 담당했던 고명주 대표가 사임한 것을 두고서 문책성 인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고명주 대표는 연이은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뒤 2020년 12월 31일 김 의장이 대표직에서 사임하면서 함께 사임했다. 이후 쿠팡은 박대준·강한승 2인 각자대표 체제가 됐다.
쿠팡은 고명주 대표가 떠난 것을 두고 “개인적인 사유”라고 밝혔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고명주 대표는 게임 개발 업체인 스마일게이트의 대외노무총괄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마일게이트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국회의원 당선 직전 일하며 노조를 만들려고 했던 곳이다.
#경영진 교체 방점은 ‘성장’에서 ‘관리’로
쿠팡의 경영진 교체를 두고 여러 해석이 제기된다. 급속한 성장에 발맞춘 기민한 인사 기용이라는 긍정적 해석도 있지만 폐쇄적·수직적 조직 특성으로 인한 잦은 물갈이라는 부정적 해석도 있다. 그것과는 별개로 쿠팡 경영진 성격은 ‘성장’에서 ‘관리’로 넘어가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2018년과 2019년에 쿠팡은 몸집 불리기와 동시에 수익성 개선에 집중하고 있었던 터라 2019년 4월 고명주 대표와 정보람 대표를 기용했다. 정보람 대표는 2014년부터 쿠팡과 함께하며 자체 결제 시스템인 ‘로켓페이’를 구축하고 성장시킨 인물이었다. 당시 이를 두고 쿠팡이 핀테크 사업을 따로 떼어내 성장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로켓페이가 쿠팡 애플리케이션(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호환성 한계에 봉착하면서 사업 확장까진 성공하지 못했지만 원터치 결제 시스템 등 쿠팡 앱의 UI(사용자환경)·UX(사용자경험) 개선은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에 한몫했다.
2018년 쿠팡은 매출 4조 4227억 원, 영업 손실 1조 971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64.7% 성장했다. 다음해인 2019년엔 64.2% 증가한 매출 7조 1530억 원을 올렸다. 영업 손실은 7205억 원으로 줄었다. 성장과 수익성 개선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2019년 12월 31일 정보람 대표는 돌연 사임했다. 쿠팡은 정보람 대표의 사임을 두고 “개인적인 사유”라고 설명했다. 이후 정보람 대표는 2020년 7월 온라인 핸드메이드마켓 ‘아이디어스’를 운영하는 백패커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자리를 옮겼다.
폭발적인 성장기를 뚫고 나온 쿠팡은 2019년 12월 31일 박대준 대표를 기용했고, 2020년 11월 6일 강한승 대표를 영입했다. 현재 2인 각자대표 체제를 이루고 있는 대표다. 두 대표의 면모를 살펴보면 ‘코로나19 특수’로 성장이 담보된 상황에서 홍보·대관 업무 등 위기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쿠팡의 의지가 드러난다. 실제로 최근 쿠팡은 대관·홍보 인력을 대거 충원해왔다.
강한승 대표(왼쪽)와 박대준 대표는 각각 2020년 11월 6일, 2019년 12월 31일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현재 쿠팡의 2인 각자대표 체제를 이루고 있다. 두 대표의 면모를 살펴보면 ‘코로나19 특수’로 성장이 담보된 상황에서 홍보·대관 업무 등 위기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쿠팡의 의지가 드러난다. 사진=쿠팡 제공
박대준 대표는 LG전자, 네이버를 거쳐 2012년 쿠팡에 입사해 정책담당 부사장을 역임했다. 박대준 대표는 신사업 부문을 이끌며 핀테크 사업보다는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동시에 현재는 홍보, 대외협력 업무, 대관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영입 직전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 있었던 강한승 대표는 ‘경영관리총괄’ 직책을 부여받았다. 강한승 대표는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서울고등법원 판사, 법원행정처 기획조정 심의관, 국회 파견 판사, 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UN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정부대표, 헤이그 국제사법회의 정부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국내외 법률 현장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강신옥 전 국회의원 아들로 정·관계 네트워크가 탄탄해 대관 업무에 최적화된 인물로 알려졌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 명예회장(동덕여대 교수)은 “김범석 창업자가 의장으로 자리를 옮긴 만큼 쿠팡이 앞으로 철저하게 성과로 판단하는 전문·책임 경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몸집이 커진 만큼 ‘리스크 셰어링’이 중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쿠팡은 2월에 열리는 임시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의 증인으로 채택됐다. 그 배경엔 1월 13일 쿠팡 동탄물류센터에서 50대 여성이 사망한 사건이 있다(관련 기사 [단독] 쿠팡 물류센터 사망자, 영하 10도에 핫팩 하나로 버텨야 했다). 이 자리엔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가 참석한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