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자율주행차 ‘애플카’ 생산과 관련해 애플과 협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며 현대차와 기아차 주가가 동반 하락한 지난 2월 8일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에서 한 관계자가 양사의 주가 변동 그래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애플카, 왜 다 안하려 하나
애플이 처음으로 접촉한 곳은 독일 폴크스바겐으로 알려졌다. 그 다음이 현대차그룹이고, 다음은 일본 업체들과 접촉 중이라는 소문이다. 애플은 제품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 스마트폰 부품은 많아야 1000개 미만이지만, 자율주행전기차는 최소 1만 5000개 이상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공급망관리(SCM)와 품질관리능력이 필수다. 테슬라가 아직 전기차에 무게가 실렸다면, 애플카는 자율주행에 무게를 둬야 한다. 이미 자체 전기차 기술을 어느 정도 갖춘 곳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에 오른 완성차업체들은 이미 자체적으로 자율주행차를 개발 중이다. 애플카 생산에 매달렸다 자칫 종속될 위험이 있다.
애플카에 대한 기대를 높인 배경에는 테슬라의 성공이 있다. 기존 완성차 업체가 아닌 테슬라가 자율주행전기차의 개척자 역할을 하며 기업가치가 급등하면서 애플의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했다. 하지만 자율주행전기차 시장에는 테슬라와 애플 외에도 엄청난 거인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폴크스바겐, 도요타, GM-혼다 등 완성차업체는 물론이고 구글과 아마존도 개발에 뛰어들었다. 현재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과 삼성전자가 양분하고 있지만, 자동차 시장은 다르다. 애플카가 미래자동차 시장에서 스마트폰에서와 같은 절대적 위치에 오르리라 장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국내 주식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1월 8일 현대차그룹과 애플의 협상 소식은 20만 원, 6만 3000원이던 현대차와 기아차 주가를 각각 25%, 60% 끌어올린 재료였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현대오토에버 등도 덩달아 급등했다. 재료가 소멸된 만큼의 주가하락은 불가피하다.
주목할 시점은 1월 19일이다. 현대차가 아닌 기아차가 위탁생산을 맡을 것이란 소식이 알려지면서 29만 원에 육박하던 현대차 주가는 장중 23만 4000원까지 급락했다. 반면 1월 8일 6만 원에서 이날 7만 2000원까지 완만했던 기아차 주가는 이틀 만에 10만 원에 육박할 정도로 급등했다. 현대차는 애플카의 직접 영향권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시점에서 재료가 사라졌지만 기아차는 그렇지 못했다. 재료가 소멸되면 그로 인한 움직임만큼의 ‘되돌림’은 불가피하다.
#애플카 수혜주보단 미래차 부품주
애플 성장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제조업체는 대만의 폭스콘과 TSMC다. 각각 아이폰 조립과 핵심 칩을 위탁생산하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는 최대 고객인 애플 외에도 여러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절대강자였던 인텔이 파운드리 경쟁에서 사실상 탈락하면서 비메모리 칩 생산경쟁이 치열해졌고, TSMC는 최대 수혜주로 기업가치가 급상승했다.
반면 폭스콘은 아이폰 위탁생산을 독점하고 있음에도 기업가치는 계속 내리막이다. 아이폰 첫 생산 때 18배에 육박했던 주가수익비율(PER)은 스마트폰 경쟁이 치열해지며 현재 10배 남짓으로 추락했다. 독점이 아닌 종속에 가깝다.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이 아이폰 납품 수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점도 참고할 만하다.
애플과의 협상 결렬이 자율주행전기차 시장에서의 도태는 아니다. 오히려 현재까지의 자율주행 기술은 현대·기아차의 경쟁력이 애플보다 우위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현대·기아차도 아직 미래차 시장에서의 생존과 성공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확실한 것은 미래차 시장이 새로운 부품의 수요를 촉발한다는 점이다. 이미 국내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상당히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배터리 기술을 가진 LG화학과 삼성SDI, 첨단산업의 ‘쌀’로 불리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절대강자인 삼성전기, 디스플레이 선두기업인 LG디스플레이 등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현재의 차량용 반도체 점유율은 낮지만, 점차 전자기기화 될 미래차용 반도체 시장에서는 주요한 위치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