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과 관련해서는 변이(바이러스)라거나 공급의 이슈 등의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추가 백신에 대한 확보 필요성, 그리고 내용들에 대해 계속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박은숙 기자
2월 8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브리핑에서 “아스트라제네카 개별 계약 물량 150만 도스의 2월 마지막 주 공급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150만 도스는 75만 명분(1인 2회 투약)으로 아스트라제네카와 계약한 공급 물량 1000만 명분 가운데 7.5%다.
문제는 양이다. 아스트라제네카의 2월 공급량은 계약 물량의 7.5%인 75만 명분에 불과하고 국제 백신 공유 프로젝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가 2월 공급 예정이라고 밝힌 물량도 6만 명분에 불과하다. 아스트라제네카에 이어 코백스 퍼실리티의 화이자 백신 등 예정된 2월 물량이 모두 제때 국내로 공급된다고 해도 81만 명분 정도다. 2분기에도 급격히 공급량이 늘 것으로 보이지 않아 1·2분기에는 긴급하게 사용할 백신 정도만 공급되고 전국민 대상 백신 접종은 3분기 이후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가장 먼저 국내로 도입되는 아스트라제네카를 65세 이상 고령층에게 접종해도 되느냐가 여전히 논란이다. 식약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2월 5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권고하면서 ‘고령층 접종 효과 입증 임상 자료 부족’이라는 의견도 함께 내놓았다. 아스트라제네카의 고령층 접종을 두고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에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방역당국의 백신 관련 발표 가운데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 국내 도입 검토’ 발표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8일 질병청 예방접종추진단 시민참여형 특별 브리핑에서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과 관련해서는 변이(바이러스)라거나 공급의 이슈 등의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추가 백신에 대한 확보 필요성, 그리고 내용들에 대해 계속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히며 “스푸트니크V 백신에 대해서 계약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어떠한 가능성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정부는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등과 백신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노바백스와는 협의 중이다.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백신이나 중국의 시노팜 백신, 시노백 백신 등은 고려치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스푸트니크V 백신을 정부가 언급한 까닭은 달라진 국제적 위상 때문이다. 최근 의학저널 ‘랜싯’에 실린 스푸트니크V 백신의 임상 3상 보고에 따르면 효능이 91.6%로 화이자, 모더나 등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스푸트니크V 백신은 일반 냉장 보관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최근 의학저널 ‘랜싯’에 실린 스푸트니크V 백신의 임상 3상 보고에 따르면 효능이 91.6%로 화이자, 모더나 등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스푸트니크V 백신은 일반 냉장 보관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먼저 언급한 것은 미국의 ‘뉴욕타임스’다. 2월 4일 박인숙 전 의원(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명예교수)은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나라가 러시아에 코로나 백신을 주문했다는 뉴스가 ‘뉴욕타임스’에 났다”며 “우리가 러시아산 코로나 백신을 맞을 수도 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정은경 본부장이 “계약이 진행 중이라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지만, 가능성은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역시 문제는 백신 확보다. 정부는 현재 5600만 명분의 백신을 확보했으며 노바백스와의 계약을 통해 2000만 명분을 추가 확보한다는 방침이지만 연내에 확보한 물량이 모두 국내로 공급될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예상보다 백신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약 물량이 모두 공급될지라도 시기가 중요한데 3분기 이후, 심지어 4분기에 집중될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최근 러시아와 중국 백신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현재 스푸트니크V 백신은 EU 회원국 헝가리와 중남미 멕시코 등 17개국이 사용을 허가한 상태다. 중국산 시노팜 백신은 아랍에미리트연합과 바레인 등 11개국, 시노백 백신은 12개국과 각각 수출 계약을 맺었다. 이런 까닭에 “어떠한 가능성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는 정은경 본부장의 발언이 러시아 백신은 물론이고 중국 백신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국내 반응은 좋지 않다. 지난 연말 우리 정부가 선제적인 백신 확보에 나서지 않아 물량 확보에 실패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을 무렵 ‘결국 러시아와 중국 백신을 들여올 것’이라며 제기됐던 음모론까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반응의 근본적인 이유는 러시아와 중국 백신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이 부분에 대한 분명한 답이 나오지 않을 경우 관련 비판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고민은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국가가 원활하지 않은 코로나19 백신 공급으로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국제적으로 러시아와 중국 백신의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돼야 한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역시 ARD방송 인터뷰에서 스푸트니크V에 대해 “유럽의약품처(EMA) 승인을 받은 백신이면 모두 환영한다”고 밝혔다. 결국 관건은 러시아와 중국 백신이 EMA 등 국제적인 공신력을 갖춘 기관에서 승인을 받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 정부 방역당국의 고민 역시 이런 부분에 맞닿아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