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들어가는 입구에 수형이 좋은 나무가 한 그루 죽어 있었다. 친구는 그 나무를 베려 하지 않았다. 능소화를 올리면 그것이 좋은 지지대가 될 거라는 것이었다. 그는 능소화를 사러 양재동 꽃시장에 갔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능소화 두 그루 주세요.”
친구가 만난 것은 꽃을 팔고 생명을 파는 꽃가게 주인이 아니라 그저 이문만 챙기는 장사꾼이었다. 장사꾼은 호구 같은 친구의 어투를 금방 알아차렸다. “제일 좋은 능소화라면 한 그루에 10만 원, 두 그루면 20만 원입니다.” 비싸다는 생각이 살짝 스쳤지만, 생애 첫 집에 식구로 들어오는 꽃이었다. 큰 맘 먹고 20만 원을 결제하려 했다. 그러다가 생각에 미친 것은 그러면 능소화를 어떻게 운반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양평에다 심을 건데, 그러면 누가 운반해주나요?” “아, 예. 용달이 필요하겠네요. 용달차는 10만 원입니다.”
30만 원을 결제하려는데 순간 심을 일이 막막했다. “그런데, 누가 심죠?” “예, 심는 사람은 10만 원이니까 40만 원 주시면 되겠어요.” 40만 원을 결제하려다가 또 걱정이 됐다. 능소화가 죽을까봐. “전문가가 심으면 반드시 살겠죠?” 장사꾼에게 호구는 밥이었다. “A급이 심으면 반드시 살고, B급이 심으면 살 확률 50%인데, A급은 15만 원입니다.” 친구가 말했다. “그러면 A급을 보내주세요.”
집에서 기다리는데 작은 용달이 터벅터벅 마당으로 들어왔다. 운전사가 내리더니 “이거 어디다 심어요?” 묻더란다. “아, 저기, 그런데 전문가는…” 하고 반문하는데, “제가 심어요!” 하고 말을 잘랐다. 삽으로 딱, 두 번, 나무 밑을 파고, 거기다 능소화 뿌리를 넣은 후에 흙을 덮더니 물을 주고 가더란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단다.
그제야 자신이 호구였음을 깨달았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껄껄 깔깔 웃으며 듣고 있는데 그 웃음들 속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은 장날이었다. 할아버지는 모처럼 서울에서 온 나를 데리고 송아지를 사러 나섰다. 할아버지가 송아지 값을 물었고, 그 쪽에서 가격을 얘기했을 때, 그 자리에 내가 끼어든 것이었다. 가끔씩 시장 따라다니며 엄마가 어떻게 콩나물 값을 깎는지를 본 나는 발칙하게도 송아지를 깎아달라고 흥정했고, 그쪽에서는 영리한 손녀를 두셨다고 덕담까지 하며 깎아주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하는 양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시고 돈만 치르셨다. 돌아오면서 의기양양해진 나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잘했지?” 하고 되물었다. 그때 할아버지의 표정은 바로 내 속의 할아버지상이 되었다. 빙그레 웃으시면서 나지막이 말씀하시던 그 모습! “목숨 값은 깎는 게 아니야. 제값을 주고 제대로 사야 하는 거야.”
잊고 있었던 그 때 그 사건이 30년도 더 지나 기억이 난 거였다. 호구 친구 덕택에. 나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그 능소화가 그 친구 집을 환하게 지켜 주리라 믿는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은 모두 호구고 바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