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는 원로배우 윤정희의 거처 문제를 놓고 그의 동생들이 ‘프랑스 파리 방치’를 주장하고 나선 가운데,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측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맞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글에 따르면 윤정희는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별거 상태로 파리 외곽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알츠하이머와 당뇨로 투병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원인은 “윤정희의 딸에게 (윤정희의) 형제들이 자유롭게 전화와 방문을 할 수 있도록 수차례 요청했으나 감옥의 죄수 면회하듯이 횟수와 시간을 정해줬다”며 “전화는 한 달에 한 번 30분, 방문은 3개월에 한 번씩 2시간이다. 개인의 자유가 심각하게 유린당하고 있고 인간의 기본권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편(백건우)은 아내를 안 본 지 2년이 됐다. 자기는 더 못하겠다면서 형제들한테 간병 치료를 떠맡겼다”고도 밝혔다.
윤정희의 동생들은 이번 입장문을 통해 백건우가 지난 2년간 아내와 처가에 대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거리를 두고 있다”며 방치에 대해 다시 강조했다. 이들은 “2019년 1월 장모상을 당했을 때 백건우는 서울에 체류하고 있었고, 윤정희가 많은 전화를 했음에도 받지 않았고 여의도 빈소에 끝내 나타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후 백건우는 아내 윤정희를 거의 찾지도, 보지도 않고 있다”며 “(부부가) 함께 살았던 주택에서 현재 윤정희가 거처하고 있는 빌라까지는 승용차로 25분, 전철로 21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고 덧붙였다.
백건우 부녀의 ‘후견인’ 지정 문제로 법적 분쟁이 불거진 것과 관련해서는 “딸이 윤정희에 대한 금치산 및 후견인 지정 신청을 윤정희의 법정 출석을 생략하고 은밀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돼 형제자매들이 이해관계인으로서 소송에 참여했다”며 “조카딸이 후견인이 되기에 부적임자임을 주장하는 데 역점을 둔 것이었고 형제자매들 자신이 후견인이 되려고 하는 소송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또 백건우가 남편으로서 최우선적으로 후견인이 될 수 있음에도 후견인신청을 하지 않고 딸을 앞세운 데에 대해서는 “남편으로서 아내 윤정희를 진심으로 보호하려는 마음을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청원에까지 이르게 된 이유에 대해 “윤정희는 귀국해 한국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기를 바라고 있고 이를 백 씨 부녀에게 요청해 왔다. 만약 허용된다면 형제자매들이 진심으로 보살필 의지와 계책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0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시’가 각본상을 수상한 뒤 귀국해 기자회견에 참석한 윤정희의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당초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윤정희 방치 논란이 불거지자 백건우는 지난 7일 소속사 빈체로를 통해 입장문을 내고 윤정희가 딸의 아파트 옆집에서 가족 및 간병인의 돌봄 아래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외부인과의 접촉을 제한하고 있는 것도 파리고등법원의 판결에 따른 조치라는 게 백건우 측의 설명이다.
백건우 부녀와 윤정희 동생들 사이에 후견인 선임과 관련한 분쟁에 대해서도 동생들이 지난해 11월 최종 패소한 점을 밝히며 그들의 주장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윤정희·백건우 부부와 23년 이상 가까이 지냈다는 익명의 최측근도 지난 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전혀 사실과 다른 청원 내용이 올라와 있으니까 (백건우가) 너무 황당하고 당황해한다”라며 “지난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이) 모여서 백건우 선생님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저한테 전송해 줬는데 2년 동안 못 만났다고 하는 건 정말 황당한 거짓말”이라며 백건우 측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윤정희의 재산을 두고 백건우 부녀와 윤정희 동생들 사이에 분쟁이 불거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윤정희 동생들은 “항간에 재산싸움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윤정희 명의의 국내 재산은 여의도 아파트 두 채와 예금자산”이라며 “모든 재산의 처분관리권은 사실상 백건우에게, 법률상 후견인인 딸에게 있으며 형제 자매들에겐 아무런 권한이 없다. 윤정희를 위해 충실하게 관리되길 바랄 뿐”이라고 일축했다.
백건우는 1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빈체로 측은 “백건우가 윤정희 관련 기자 회견을 하거나 별도 입장을 밝힐 계획은 따로 없다”고 밝혔으나 윤정희 동생들의 입장문에 대한 새로운 반박이 나올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한편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윤정희는 백건우와 1976년 결혼해 슬하에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 중인 딸 한 명을 뒀다. 그는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알츠하이머 환자 역을 맡았으며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 LA영화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