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창업자로 4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 마크 주커버그. 로이터/뉴시스 |
최근 미국에서 개봉해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26)의 성공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실화다. 40억 달러(약 4조 7000억 원)의 개인 자산을 보유한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인 주커버그가 어떻게 페이스북을 만들게 됐으며, 또 현시대의 아이콘이 된 페이스북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영화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영화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이른바 ‘패션 영화’라고 부르면서 영화 속에 나타난 주커버그의 패션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헐렁한 후드티에 다소 큰 청바지를 입은 채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그의 캐주얼한 스타일을 가리켜 ‘주커버그식 패션’이라고 부르면서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는 것.
이와 관련 <데일리비스트>는 최근 “주커버그는 명실공히 패셔니스타다. 그는 인터넷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성공을 위한 새로운 패션 기준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멋을 부리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대충 걸치고 다니는 주커버그의 스타일을 과연 세련된 패션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까. 이와 더불어 오직 한 스타일만을 고집하기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 애플 CEO의 ‘단벌 패션’에는 또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걸까.
“주커버그의 놀라운 점은 본인은 무엇을 입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지만 재미있게도 패션을 창조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의상 담당이었던 재클린 웨스트는 주커버그의 패션을 면밀히 살핀 결과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커버그 패션’은 어떻게 보면 패션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것이 사실이다.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야말로 평범한 ‘스트리트 패션’이기 때문이다.
가령 모자 달린 후드티에 헐렁한 청바지를 입거나 때로는 회색 티셔츠나 터틀넥 스웨터에 지퍼 달린 운동복을 걸치는 것이 고작이다. 또한 구불구불한 곱슬머리는 항상 헝클어져 있고, 통통한 아랫배는 허리띠 바깥으로 튀어 나와 있기 일쑤다. 하버드대학 캠퍼스에서도, 그리고 밤새도록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개발할 때에도 그는 항상 이런 모습이었다.
심지어 벤처투자회사 사장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서도 그는 파자마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나갔을 정도로 멋을 부리는 것과는 늘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도 주커버그의 이런 스타일은 그대로 묘사됐다. 영화 첫 장면에서부터 주커버그 역할을 맡은 제이슨 아이슨버그는 갭 운동복 차림으로 등장하며,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늘 비슷한 옷차림을 보여줬다.
하지만 헐렁한 후드티나 청바지보다 주커버그 패션을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신발’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슬리퍼’였다. 지난 몇 년 동안 주커버그는 공개석상에서건 사석에서건 늘 아디다스 남색 슬리퍼를 신고 나타났다. 게다가 대개는 맨발이었으며, 간혹 발톱을 깎지 않은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소박하다 못해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건만 주커버그에게는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 주커버그에게 슬리퍼를 신는다는 것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문제였다. 실제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사장이 되서 좋은 점은 평생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리고 아무도 나한테 슬리퍼를 신고 출근한다고 꾸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슬리퍼에 집착했는지 한번은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 재킷을 입은 상태에서도 슬리퍼를 신고 나타나는 대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웨스트는 “주커버그 덕분에 미국 내 아디다스 슬리퍼 매출이 껑충 뛰었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일궈낸 성공을 통해 패션을 창조해냈다”고 말하면서 “다른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근사하게 옷을 차려 입거나 자신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멋을 내는 것과는 분명히 대조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주커버그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슬리퍼 대신 운동화를 신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의 패션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의 스타일이 지금껏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잘 단련된 몸매, 그리고 몸에 맞게 재단한 값비싼 슈트를 입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주커버그가 입는 옷들은 보통 저렴한 할인매장인 T.J Maxx에서 구입한 평범한 것들이다.
이처럼 도통 패션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도 패셔니스타라고 부르자니 어째 민망한 것도 사실. 이에 <에스콰이어>는 주커버그를 새로운 패션 아이콘이라고 부르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부자이고 힘이 있으면 어느 자리에서나 자신이 입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입어도 된단 말이냐”며 쏘아 붙였다. 주커버그처럼 아무 생각 없이 막 입는 것은 결코 패션이 아니라는 것이다.
▲ 늘 같은 옷차림으로 화제가 된 스티브 잡스. 미국 사진공유사이트 ‘플리커’에 한 네티즌이 올린 ‘잡스 패션 변천사’. 다 똑같다. |
맥월드에서 신제품 발표를 하거나 기조연설을 할 때에도 항상 이런 차림새인 잡스는 지난 1998년부터 무려 10년 넘게 늘 같은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애플의 제품들은 진화하고 있지만 잡스의 패션은 그렇지 못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이런 까닭에 인터넷에서는 잡스의 단벌 패션에 대한 재미있는 유머나 게임 등이 넘쳐나고 있으며, 심지어 ‘스티브 잡스처럼 입는 법’ ‘스티브 잡스 패션 따라잡기’ 등을 소개하는 곳도 많다. 또한 어떤 누리꾼이 상상해서 그린 똑같은 옷이 나란히 걸려 있는 ‘잡스의 옷장’ 캐리커처는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잡스가 입는 ‘유니폼’의 가격이 고가의 명품인 것도 아니다. 잡스가 입는 옷은 모두 중저가 브랜드다. 가령 검정색 스웨터는 세인트 크로익스 제품으로 보통 15~24달러(약 1만 7000~2만 7000원)며, 리바이스 501 청바지는 46~60달러(약 5만~6만 7000원), 뉴발란스 991 조깅화는 99달러(약 11만 원) 정도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과연 잡스는 신제품 발표회 등 공식적인 자리 외에서도 이런 의상을 고집할까. 평상시에 잡스는 어떤 옷을 입을까. 날씨가 덥건 춥건 늘 이 스타일일까.
이와 관련해서 미국의 누리꾼들이 올린 몇몇 인증샷과 동영상들을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믿기 어렵지만 신기하게도 잡스는 평상시에도 늘 똑같은 차림이며, 심지어 어떤 누리꾼이 비교해서 올린 사진에서는 무릎이 헤진 낡은 청바지와 운동화를 며칠에 걸쳐 입고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또한 여느 때와 똑같이 검정색 터틀넥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고 아이들의 축구 시합을 구경하고 있는 잡스의 모습을 찍은 사진도 있다.
잡스가 이처럼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추측만 무성한 상태. 본인이 나서서 해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갖가지 주장만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검소한 생활이 몸에 뱄기 때문이라거나 혹은 일부러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이라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그럴 듯한 추측은 “잡스의 ‘단벌 패션’은 애플 제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즉 신제품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다른 데로 쏠리지 않고 오로지 제품의 아름다운 디자인과 기능에만 집중되도록 일부러 자신의 모습을 극도로 절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와이어드 매거진>의 마크 맥클러스키는 “잡스는 브랜드 홍보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다. 알다시피 애플사의 제품들은 대개 극도로 절제된 미를 추구하고 있다. 이 연장선상에서 잡스의 패션도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옷차림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신제품에, 그리고 자신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더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뉴욕주립패션공과대학의 루스 루빈스타인 교수는 “잡스의 옷 입는 스타일에는 평소 그가 컴퓨터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지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2000년 출간된 책 <드레스 코드: 미국 문화에 담긴 의미와 메시지>에서 잡스의 패션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었던 그녀는 “잡스는 컴퓨터로 세상이 크게 변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의 철학은 평등과 나눔이다. 이런 생각에서 그는 함께 고생한 자신의 팀원들과 자신이 단지 보이는 것만으로 구별되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녀는 “잡스는 무대 위에 아이디어를 홍보하러 올라갈 뿐이다. 그는 일을 하기 위해서 옷을 입지, 쇼를 하기 위해서 옷을 입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어떤 사람들은 잡스가 한 가지 패션을 고집하는 이유가 사실은 매우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즉 아인슈타인이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매일 아침 뭘 입을까 하는 고민으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필요도 없고, 또 옷을 사러 다니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