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개인지도를 통해 박지은, 홍맑은샘을 길러낸 정경수 사범. 사진=정경수 제공
책은 ‘1993년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처럼 장차 세계 정상에 오를 소녀 박지은이 내게로 왔다’라는 대목으로 출발한다.
“지은이가 1993년, 맑은샘이가 2001년, 진서가 2011년 차례로 제게 왔습니다. 지은이를 처음 본 날 바둑을 얼마나 두느냐고 물었더니 며칠 전 바둑교실에서 18급을 땄다고 했어요. 18급이면 태권도로 치면 흰띠, 단수는 아는 거고 따먹는 법은 배웠다는 거지요. 열 살짜리 아이가 바둑을 유난히 좋아한다니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또 차라리 18급이어서 좋았습니다. 어설프게 중급자가 되어 있으면 나쁜 타성과 습관이 밸 수 있거든요.”
열 살짜리 초보를 그냥 맡긴 것은 아니고 실은 지은이 아버지가 먼저 찾아왔다고 한다.
“부천 복사골 바둑교실에서였는데 하루는 3급 기력이라는 40대 중년 남성 분이 바둑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왔어요. 바둑교실은 어린이들 위주라 어른이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거든요. 한 달 보름을 가르쳤는데 하루는 밖으로 불러내더니 자기에게 바둑을 좋아하는 딸이 있는데 제게 맡겨보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동안 저를 테스트해본 것이었지요. 딸 사랑이 대단한 아버지였어요.”
다행히 승부근성이 강하고 집중력이 남달리 뛰어났던 박지은은 장마철 죽순처럼 쑥쑥 기력이 상승했고 1995년 12월 그를 찾아온 지 2년 8개월 만에 한국기원 연구생이 된다.
그는 아이들의 장래를 볼 때 승부근성, 그중에서도 승부에 대한 대담성을 첫 손에 꼽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본 케이스 중 원성진 9단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원성진은 지은이랑 대회 다니면서 많이 봤죠. 성진이에게는 성욱이라는 형이 있었어요. 둘 다 연구생이었는데 성욱이는 최상위인 1조에 주로 있었는데 성진이는 5조, 6조를 오가던 그저 그런 친구였어요. 그런데 어느 입단대회에서 성진이가 대박을 터뜨리며 형보다 먼저 입단을 해버린 거예요. 프로기사 중 아마 1, 2조를 거치지 않고 입단한 사람은 성진이가 유일할 겁니다. 바로 그게 승부근성이고 집중력이죠. 초일류는 그런 게 필요해요. 한방. 훗날 원성진 9단이 우승후보로 꼽히지 않던 삼성화재배에서 우승을 하게 되는데 어릴 때부터 그런 기질이 있었던 것이지요.”
박지은을 큰 도장으로 떠나보내고 울적하게 지내고 있을 무렵인 2001년 10월 홍맑은샘이 그에게로 왔다. 아버지 홍시범 씨가 그의 아들 맑은샘을 그에게 맡겼다.
제1회 바둑의날 기념식에 함께한 정경수 사범(왼쪽)과 홍맑은샘. 사진=정경수 제공
“당시 맑은샘은 전국대회에서 10번 이상 우승했고, 프로아마 1위전에서 당시 세계랭킹 1위 이창호 9단에게 정선으로 이겼을 정도였어요. 제게 올 수준이 아닌데 홍시범 씨는 맑은샘에게 부족한 무언가를 제가 채워줄 수 있을 거라 본 것 같아요.”
홍맑은샘은 독한 승부근성은 갖추지 못했지만 성실함이 있었다. 정경수와 의논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바둑도장을 연 것은 그의 인생 승부수. 거기서 그는 이치리키 료와 시바노 도라마루, 후지사와 리나라는 일본 바둑의 에이스들을 길러냈다. 이들은 정경수가 홍맑은샘에게 지도했던 방식 그대로 사활을 중심으로 한 철저한 수읽기 훈련으로 탄생한 결실들이었다.
책의 추천사는 조훈현 9단이 써줬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오지만 쪽보다 푸르고 얼음은 물이 얼어 된 것이나 물보다 차다. 나무는 먹줄을 받아 곧아지고, 쇠는 숫돌에 갈면 날이 선다.’ 순자(荀子)의 권학(勸學)에서 나온 말로 청출어람,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제자들의 성취가 더 컸을지는 모르나 박지은, 홍맑은샘이 모두 일가를 이루었으니 정경수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