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신규사업 진출에도 방해 요인이었다.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증손자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하는 공정거래법 때문에 SK하이닉스는 합작사 설립 등을 추진할 수 없어서다. SK텔레콤을 SK텔레콤 투자회사(중간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눈 뒤 투자회사를 SK와 합병하면 SK하이닉스 또한 자회사로 승격돼 이 같은 규제를 비켜갈 수 있다(관련기사 분할·상장·인수…SK텔레콤 ‘딥체인지’ 엇박일까 큰그림일까).
서울시 중구 을지로 SK텔레콤 본사 전경. 사진=박정훈 기자
SK그룹은 SK텔레콤 분할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인사에서 박정호 SK텔레콤 대표가 SK하이닉스 부회장을 겸직하기로 하면서 기업 분할이 곧 공식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연내 추진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통과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으로 인해 올해 안에 지배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SK의 SK하이닉스 지분율을 30%까지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SK텔레콤의 SK하이닉스 지분율은 20.07%에 불과해 현재 주가를 감안하면 SK는 10조 원의 돈을 SK하이닉스 지분 매입에 써야만 한다. 증권가에서는 늦어도 5월 이전 이사회 결의가 나오고 2분기 중 임시주주총회가 소집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모빌리티, 11번가 등 비통신 기대감 모락모락
SK텔레콤이 국내 2위 대기업인 SK하이닉스의 최대주주라는 점 때문에 수많은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기업 분할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SK텔레콤이 분할하면 SK텔레콤과 SK는 물론, SK하이닉스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기업 분할로 인해 SK텔레콤의 가치가 크게 뛸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현재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 외에도 오픈마켓 11번가와 핀테크업체로 진화하고 있는 SK플래닛, 보안업체 라이프앤시큐리티(ADT캡스), 앱마켓 원스토어, 그리고 티맵 모빌리티 등 많은 비통신 자회사 및 사업부문이 있다. 단순투자이긴 하나 카카오 지분가치도 1조 원이 넘는다. 최 연구원은 “비통신 부문의 매출이나 영업이익 증가가 SK텔레콤의 기업가치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비통신부문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업분할을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최남곤 연구원은 유사 사례로 대림산업을 꼽았다. 대림산업은 폴리에틸렌(PE), 폴리부텐(PB), 합성오일(Synthetic Oil) 등을 생산하는 화학사업부와 석유화학 합작사 여천NCC, 폴리미래 등이 있었음에도 건설업체로만 인식돼왔다. 그러다가 대림산업을 DL과 DL이앤씨(건설), DL케미칼(석유화학) 등으로 나누니 재평가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 대림산업은 지난해 12월 28일 분할 전 시가총액이 2조 8884억 원이었으나 올해 1월 25일 첫거래일 땐 DL 시총이 1조 1519억 원, DL이앤씨 시총이 2조 4682억 원에 형성됐다. 이후로도 DL의 석유화학부문이 저평가됐다는 인식이 잇따르면서 현재 1조 3000억 원대로 올라섰다. 분할 전과 비교하면 합산 시가총액이 23% 불어났다.
최남곤 연구원은 타사 사례를 근거로 SK텔레콤을 분할하면 중간지주회사 지분 가치는 15조 원, 사업회사(통신) 지분 가치는 1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SK텔레콤 시가총액이 20조 원을 밑돌고 있으니 분할과 동시에 가치가 40% 넘게 뛴다는 계산이 나온 셈이다.
#“기업 가치 오른다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
물론 정반대 의견도 있다. 이 의견의 선봉장에 선 인물은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이다. 김홍식 연구원은 SK텔레콤을 분할한다는 것은 오너 일가가 다른 뜻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로 인해 주가에 호재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더해 분할한다고 기업가치가 오른다는 세간의 인식은 “순진한 생각”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동료 연구원을 사실상 저격한 셈이다.
김홍식 연구원은 일단 SK텔레콤의 통신사업이 일부의 평가처럼 매력이 높진 않을 것이라고 봤다. SK텔레콤이 통신시장을 50% 가까이 지배하고 있는 1위 사업자이긴 하나 성장성이 없는 산업인 데다 경쟁사 대비 이익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와 KT의 시가총액이 5조~6조 원 수준에 불과한데 이익이 고작 10~20% 많은 SK텔레콤이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폭탄 배당’의 가능성을 고려한다고 해도 10조 원을 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통신부문은 중간지주회사라는 특성상 대규모 할인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비통신 부문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은 사실이나 원스토어 정도를 제외하곤 아직 상장 계획이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무엇보다 구조적으로 중간지주회사가 주목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너 일가 입장에서 SK와 합쳐야 하는 SK텔레콤 중간지주회사 주가가 급등하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홍식 연구원은 “5~6년 전 SK와 SK C&C 합병설 때도 많은 투자자가 SK 저평가론 및 (최태원 회장의 지분이 많은) SK C&C 고평가 논란을 제기했지만 결국 주가는 SK C&C 강세로 끝났다”면서 “주가 흐름은 결국 그룹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세월이 흘렀지만 역사는 반복될 공산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홍식 연구원은 통신 부문의 시총이 10조 원, 중간지주회사의 시총이 10조 원에 형성돼 쪼갠다고 해도 주가상으로는 현재와 바뀌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반대 의견을 내놓은 두 연구원의 생각 중 일치한 것은 상반기 중 SK텔레콤 분할이 공식화될 것이란 점뿐이다.
민영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