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을 둘러싼 KCGI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다툼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서울 중구 대한항공 서소문사옥. 사진=최준필 기자
2020년 초, KCGI와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한진칼 주식을 공동 보유하는 내용의 3자연합을 구축했다. 당시 KCGI는 “(3자연합은) 위기 극복을 위해서 전문경영진 제도의 도입을 포함한 경영방식의 혁신과 효율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며 “유능한 전문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 준법경영체제가 확립된다면 안정적인 경영환경 속에서 임직원들의 근무만족도 및 자존감이 높아지고, 고객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가 제공될 것으로 믿는다”고 전했다.
이후 3자연합은 한진칼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면서 2020년 8월 46.71%까지 지분율을 끌어올렸다. 당시 조원태 회장과 그 우호세력의 지분율은 41% 수준으로 3자연합보다 적은 지분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한진그룹이 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 인수를 추진하면서 지분율에 변화가 생겼다.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지원을 위해 유상증자 5000억 원, 교환사채 3000억 원 등 총 8000억 원을 한진칼에 투입한 것이다. 현재 한진칼 주주구성을 살펴보면 3자연합 41.84%, 조원태 회장 측 약 37%, 산업은행 10.66%로 산업은행 뜻에 따라 한진칼 경영권 향방이 바뀔 수 있다.
재계에서는 산은이 조원태 회장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던 산은으로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를 가진 조원태 회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시 KCGI도 “조원태 회장이 국민의 혈세를 통해 10%의 우호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는 결과만 낳을 뿐 다수의 다른 주주를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산은이 조원태 회장을 지지하면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3자연합이 이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 3자연합은 오는 3월 주주총회를 위한 주주제안서를 한진칼에 발송하지도 않았다. 주주제안은 주주총회 개최 6주 전까지 마쳐야 하기에 3자연합은 주주제안을 포기한 셈이다. 앞서 2020년 12월, 강성부 KCGI 대표가 유튜브 삼프로TV에서 “(주주총회에서) 아마도 이사 후보를 제안할 것”이라고 한 말과 대비되는 행보다.
3자연합이 조 회장과의 싸움에서 승산이 없어지면 한진칼 지분을 매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KCGI가 본격적으로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기 시작한 2018년 11월 한진칼의 주가는 2만 원대였지만 현재는 6만 원이 넘어 적지 않은 수익을 올렸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경영권 분쟁에 패배한 측의 지분이 오버행(언제든지 매물로 쏟아질 수 있는 잠재적인 과잉 물량 주식)으로 전환되면서 한진칼의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3자연합은 한진칼 지분 매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현실적으로 수천억 원에 달하는 한진칼 지분 매각이 쉬운 일이 아니다. 경영권 프리미엄도 없을뿐더러 오버행 이슈로 주가가 급락하면 기대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 강성부 KCGI 대표는16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한진칼 주식을 매각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반도건설 관계자도 “향후 판단은 3자연합이 회의를 해서 진행하고, 반도건설 단독으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2020년 2월, 강성부 KCGI 대표가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한진그룹 정상화를 위한 주주연합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결국 3자연합은 기댈 수 있는 곳은 산은뿐이다. 산은은 지난 2월 10일 주주제안권 행사를 위해 한진칼에 주주제안서를 발송했다고 밝혔다. 주요 내용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를 제도화할 것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성별의 이사로 구성하지 않도록 할 것 △ESG경영위원회와 보상위원회의 설치를 정관에 반영할 것 등이다.
3자연합은 이를 근거로 산은과 협력 관계 구축을 시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부 대표는 “지난해 3자연합이 제안했던 주주제안을 산업은행이 그대로 제안했고 장기적으로 같은 이해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반도건설 관계자는 “우리의 목표는 한진칼 경영권이 아니라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해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이라며 “경영정상화 측면에서는 산은으로 인해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고 전했다.
분쟁이 장기화되면 조원태 회장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오히려 시간에 쫓기는 건 상속세를 내야 하는 조 회장 측일 수 있다”며 “당장 내년에 정권이 바뀌면 산업은행 회장이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산은이 특정 세력을 지지하지 않고 중립을 선언하면 3자연합이 표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산은이 한진칼 사외이사 3인의 선임권을 갖고 있다는 점은 3자연합 입장에는 부담 요인이다. 최남곤 연구원은 “산은이 중립을 지켜도 산은이 한진칼 이사회를 3석 확보하게 된다는 점이 3자연합에게는 향후 문제 요소가 될 수 있다”며 “3자연합이 경영권 확보 시 사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장애가 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산은 측은 주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보이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지금껏 수차례 입장을 내왔고, 추가적인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면서도 “특별히 어느 편에 서는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