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 대표가 7일 대전역앞 시장을 방문해 멸치상점에서 멸치를 맛보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강원도 평창 고랭지 배추밭, 광주 5·18 민주묘역 참배, 경기 여주 남한강 일대의 4대강 사업 현장, 경남 김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이어 충남 대전의 재래시장 방문까지, 당대표 당선 이후 첫 주 동안 손학규 대표의 일정표를 들여다보면 민생 챙기기와 4대강 사업 비판, 그리고 ‘친노 끌어안기’ 등 그가 챙겨야 할 현안들이 스케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친서민 노선’을 강조하고 있는 손 대표는 지난 7일 대전 역전시장을 찾은 자리에서도 시장 상인들과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요즘 배추값이 얼마나 하나요.” “한 포기에 6500원이에요, 그래도 많이 내렸어요.”
손 대표가 이날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채소는 역시 배추였다. 배추 한 포기 값이 6500원이라는 말을 듣고 손 대표는 “2주 전쯤에 배추금(가격)을 물어봤었는데 다행히 그때보다 조금 내린 것 같다. 그래도 아직 비싸서 채소를 사러 오신 분들도 배추는 거의 안 사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전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하고 있는 가게 주인아주머니는 갑작스런 손학규 대표의 방문에 반가움과 놀라움이 교차하는 듯했다. 주인아주머니는 “한 시간 전쯤에 손 대표가 방문하시는데 괜찮겠냐는 전화를 받았다”며 웃음을 보였다. 손 대표는 이 가게에서 30여 분 가까이 머물며 여러 가지 채소 가격을 물어보고 유통과정 등에 대해 묻는 등 시장 상인들의 고충을 귀담아 듣는 모습이었다.
잠시 뒤 한 수행원이 “손학규 시장이 열렸습니다. 반짝 세일 하니까 많이들 사세요”라며 손님들의 관심을 끈다. 손학규 대표가 직접 나서 ‘장사’를 하겠단다. 가게에는 수행원들과 당원들, 그리고 기자들까지 일행이 워낙 많아 일반 손님이 물건을 사러 오기가 사실 쉽지 않았다. 손 대표는 “우리 일행이 많아 가게 주인한테 폐를 끼치는 것 같다”며 미안해하기도 했다. 한 손님이 시금치 한 근을 달라고 하자 손 대표는 검정 비닐봉지에 시금치를 담아주며 “이거 한 근에 400g인데 500g이 넘었다. 덤이다”라며 손님에게 받은 돈을 이마에 붙이기도 했다. 그래도 몇몇 손님들과 당원들이 나서 구매를 했던 덕에 열무, 아삭이 고추, 골파, 시금치, 배추 등 꽤 많은 야채가 팔려나갔다. 가게 주인아주머니는 “손학규 대표 덕에 한 7만 원어치쯤 팔았다. 매출이 좋다”며 웃음을 보였다.
손 대표가 이날 재래시장에서 인사와 악수를 나눈 시민들만 해도 100여 명을 훌쩍 넘겼다. 손 대표는 시장 입구에서부터 상인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며 한 사람의 상인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지나가던 한 주민은 “뭔데 이렇게 난리야”라며 손 대표의 등장에 소란해진 시장 풍경에 한마디를 얹었다. 행상을 펼쳐놓고 버섯을 파시던 연세 지긋하신 한 할머니는 손 대표가 가까이 왔어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손 대표가 인사를 건네자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라며 어리둥절하신 표정이다. 손 대표는 “가만있자, 뭐를 좀 사드릴까”라며 밀버섯과 싸리버섯 한 소쿠리씩 2만 원어치를 사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 건넸다. 손 대표는 이날 여러 번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들었다.
▲ 손학규 대표가 재래시장 상인들을 만나 서민물가대책에 대해 청취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손 대표의 지난 한 주간의 일정은 여러모로 2007년의 ‘민심 대장정’과 닮아 있었다. 당시 전국 방방곳곳을 100일간 돌아보며 민심탐방을 했던 경험 때문인지 민생 현장에서 손 대표의 모습은 여느 정치인보다 자연스러워 보였다. 2년 동안의 춘천 생활 동안 닭을 키우며 ‘닭 전문가’가 되었다는 손 대표는 농부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그래서 대표로 당선되자마자 배추밭이나 재래시장과 같은 서민들의 생활 터전을 찾은 것은 ‘전략적이지만 거부감이 적은’ 행보였다.
이러한 친서민적 행보가 다분히 대중적 인기를 의식한 것이라면, 손 대표의 최근 여의도 행보는 제1 야당 리더로서 결기가 배어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이재오 특임장관 등 여권의 주요 인사들과 만나 날선 신경전을 벌이며 야당 대표로서의 입지를 강화했다.
손 대표는 한나라당과는 적절한 견제와 협력의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동시에 민주당 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만들고 키워가야 하는 입장이다. 벌써부터 정동영 최고위원, 정세균 최고위원 등 당내 경쟁자들이 ‘손학규호’의 항해에 견제구를 던지고 있기 때문. 당무에 복귀는 했으나 정세균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3위라는 충격 때문에 첫 당무회의에 불참하며 진로를 고민했는가 하면, 정동영 최고위원은 “당원여론조사 결과 실제 1등은 나”라며 전당대회 결과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지난 6일 당 지도부가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새 지도부는 집단지도체제인 만큼 대표 개인의 생각이 당 정체성이 아니라 당헌과 강령, 당원의 요구와 생각이 정체성”이라며 손 대표에게 각을 세운 바 있다.
손 대표는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과의 관계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불편할 게 뭐 있나. 정치라는 게 경쟁하면서 하는 거고, 시끄럽게 떠드는 가운데 국민의 관심과 지지도가 높아지고,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어깨동무하는 게 야당이다”라고 밝혔으나 당내에서도 세 사람의 역학관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여기에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의 불편한 심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민주당 일각에선 손학규 대표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손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1위를 하긴 했지만 압도적 표차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 측의 반발이 예상됐던 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빠른 것 같아 당 분위기가 다소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손 대표 체제에 의문을 품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손학규 대표로선 당내 화합이 무엇보다 최우선의 과제일 것”이라고 전했다.
손 대표는 제1야당의 수장으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견제력을 높이고 더 나아가 본인의 대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손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하고 있는 것도 이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손 대표가 가장 먼저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는 분야는 바로 4대강 사업의 저지다.
국감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배추값 폭등의 원인이 4대강 사업 때문이라고 지적하자, 강원도 고랭지 배추밭에서도 대전의 재래시장에서도 손 대표는 배추값 폭등과 4대강 사업을 연관시키며 이를 거들었다. 지난 7일 대전의 재래시장을 방문하면서도 일정을 쪼개 수자원공사에 대한 국토해양위 국감장을 방문해 민주당 의원들을 격려하는 등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이날 김진애·최규성·최철국·백재현·박기춘 의원 등은 손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강하게 성토했다.
정치전문가들은 손학규 대표에 대해 “차기를 위해선 한나라당 탈당 전력에 대한 입장도 보다 설득력 있는 명분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가 차기 대선에서 맞설 상대는 한나라당 주자가 될 것이므로 탈당 전력은 약점으로 공격받을 가능성이 크다. 손 대표는 이에 대해 “이번에 왜 민주당 당원들이 대표를 시켰겠나. 한나라당 지지자 중 내 경력을 거론하는 이들은 어차피 안 찍을 것”이라며 민주당 주자로서 당대표가 된 것으로 ‘검증’ 받았다는 입장이다. 또한 위험부담을 안고 있음에도 ‘한나라당 출신’ 김영춘 전 의원을 최고위원에 임명하는 초강수를 두며 정면 돌파하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비노 인사’이며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비판 발언으로 주목받기도 했던 김영춘 전 의원의 영입은 향후 친노계와의 관계 개선에도 손 대표의 부담을 크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손 대표가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사죄한 것에 대해 ‘친노 끌어안기’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친노계에서는 손 대표에 대한 평가가 아직 회의적인 상황. 당내 친노계 일부는 전당대회에서 정세균 최고위원을 지지했고, 당 외의 국민참여당 등 친노계는 ‘필요에 의해서만’ 손학규 대표와 손잡게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기 때문이다.
손학규 대표는 앞으로 6개월을 기회이자 고비로 내다보고 있다.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대선 1년 전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하기 때문에 손 대표의 임기는 길어야 내년 12월까지가 될 것이다. 1년 3개월의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야당 주자로서의 경쟁력과 민주당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할 경우 차기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는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손학규 대표는 “조직적 기반도 없이 당 대표가 된 것은 서민을 무시하는 정치를 하지 말라는 민심이 민주당원들의 뜻으로 나타난 것”이라며 “서민과 국민들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민주당 대표이자 대선 주자로서의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손 대표의 좌우명은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뜻의 ‘隨處作主’(수처작주)라고 한다. 어느 자리에서나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가 담긴 성어다. 과연 손 대표가 자신의 좌우명대로 민주당 대표 자리를 넘어서 다음 대선에서도 주인공으로 떠오를 수 있을지 향후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컨벤션효과…2위 ‘껑충’
손학규 대표 측은 대표 당선 직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고무적인 분위기다. 전당대회 다음날인 지난 4일 동서리서치가 실시한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손학규 대표는 11.8%를 기록해 박근혜 전 대표(31.5%)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어 오세훈 서울시장(8.2%), 유시민 전 장관(7.2%), 김문수 경기지사(6.5%), 한명숙 전 총리(5.4%), 정동영 최고위원(4.8%),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3.7%),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2.1%) 순으로 나타났다. 범야권 후보만을 대상으로 한 선호도 조사에서는 33.3%를 얻어 유시민 전 장관(12.8%)을 큰 차이로 앞섰다. 그동안의 여론조사에서는 유시민 전 장관이 줄곧 2위를 기록해왔다.
손학규 대표의 지지율 급부상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 지지율이 계속해서 유지될지는 미지수라는 입장이 우세하다. 우선 ‘컨벤션효과’가 크게 작용한 지지율이라는 분석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전당대회로 야권 표가 손학규 대표에게 결집하는 양상을 보였다. 유시민 전 장관을 지지했던 일부 표심도 손 대표에게 넘어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유 전 장관이 최근 정치행보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손 대표 지지율 상승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정치전문가들은 “손학규 대표와 유시민 전 장관은 차기 대선에서 야권의 주요 경쟁 주자들이다. 본격적인 대선구도가 형성되게 되면 두 인물이 야권의 대선후보 자리를 두고 지지율 다툼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손 대표의 지지율이 당분간 더 상승할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민주당 지지율이 25~30%대에 이르고 있는 데다 내년이 되면 차츰 대선주자의 경쟁구도가 본격화될 것이므로 민주당 지지층이 당 대표로 선출된 손 대표에게 지지의사를 결집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