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쿠팡 본사인 미국의 ‘쿠팡Inc’가 미국 뉴욕 증시 상장을 추진한다. 미래 쿠팡의 지배구조가 과거 롯데그룹과 비슷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정말 차등의결권 때문에?
쿠팡이 국내가 아닌 미국 주식시장을 선택한 이유로 ‘차등의결권’이 꼽히고 있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주나 경영자가 경영권을 잃을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기 위한 제도다. 쿠팡이 2월 12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가진 클래스 B 주식 1주는 일반 주식 29주에 맞먹는 의결권을 가진다. 쿠팡이 외부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차등의결권이 있는 미국 주식시장을 택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반면 차등의결권이 중요한 이유는 아닐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차등의결권을 보장하면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하는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려 자금 확보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의 뉴욕 증시 상장
미국 증시에 상장을 추진하면서 새삼 쿠팡의 정체성이 눈길을 끌고 있다. 쿠팡은 2월 12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미국기업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뉴욕증시에 상장하는 회사는 국내에서 이커머스 사업을 영위하는 ‘쿠팡(주)’가 아닌 지주사 형태의 쿠팡Inc(전 쿠팡LLC)다. 쿠팡Inc는 미국 델라웨어주에 있는 기업이며, 쿠팡(주)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쿠팡(주)는 ‘한국지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쿠팡의 핵심 경영진이 대부분 미국인이라는 점도 확인됐다. 비상장기업이었던 쿠팡은 그동안 금융감독원에 경영진 구성이 담긴 정기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는데, 이번 증권신고서에서는 이들의 명단과 프로필을 자세히 공개했다. 우선,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은 미국 국적의 재미교포다. 임원 가운데 LG전자와 네이버를 거친 박대준 대표이사와 법률사무소 김앤장 변호사,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강한승 대표이사만 한국인이며, 그 외의 인사는 미국인이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핵심 경영진은 대부분 미국인으로 나타났다. 증권신고서에 기재된 쿠팡 경영진 명단과 프로필. 사진=미국 증권거래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미국 아마존 출신인 고라브 아난드(Gaurav Anand) CFO(최고재무책임자)와 승차공유업체 ‘우버’를 거친 투안 팸(Thuan Pham) CTO(최고기술책임자)도 미국인이다. 이들 외에도 해롤드 로저스(Harold Rogers), 매튜 크리스텐슨(Matthew Christensen), 리디아 제트(Lydia Jett) 등 한국인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경영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롯데그룹과 닮은 지배구조
미국 기업인 쿠팡Inc의 지배를 받는 쿠팡(주)가 향후 우리나라에서 여러 계열사들을 설립해 지배할 경우, 롯데그룹과 비슷한 형태를 띤다. 호텔롯데의 2014년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호텔롯데의 주주는 일본 롯데홀딩스와 광윤사, L투자회사 등이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의 호텔롯데를 지배하고, 호텔롯데는 한국 내 계열사들인 롯데제과와 롯데쇼핑 등을 지배한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공기업정책학과 교수는 “미국은 모회사가 자회사에 지분 100%를 보유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분 20~40%만 가지고 있어도 회사에 대해 실질적인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향후 쿠팡(주)가 우리나라에 여러 회사들을 설립한다면 미국 기업인 쿠팡Inc의 손자회사가 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쿠팡 자회사는 손자회사의 지분 20~40%만 보유해도 되고, 미국에 상장하는 모회사는 차등의결권까지 가질 수 있어 소유 지분 대비 통제가 이상으로 적용되는 셈”이라며 “결국 쿠팡은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모두 유리한 제도만 골라 이용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향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