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리호’에서 장 선장 역을 맡은 김태리는 이제껏 보여준 적 없었던 한국형 ‘여성 배드애스’ 캐릭터 호평을 받았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2월 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승리호’는 공개 이후부터 보름 남짓 지난 현재까지 국내외의 호평을 받으며 승승장구 중이다. 물론 그만큼 혹평도 많지만. 승리호의 선장으로 분해 이제까지의 이미지와는 백팔십도 다른, 이른바 ‘배드애스’(Badass·거칠지만 자유분방하며 자신만의 소신을 가진 인물이나 캐릭터를 가리키는 영미권의 속어)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완성해 낸 김태리에게도 호평이 쏟아졌다.
“장 선장이라는 사람은 레이어, 그러니까 층이 참 많은 사람이에요. 굉장히 복잡한 사람인 거죠. 그래서 이런 층들을 어떻게 해야 다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 캐릭터는 이런 것을 못 해’ ‘이렇게 말하지 않을 거야’ 하면서 가둬 두기보단, 훨씬 더 열린 마인드로 임했죠. 제 개인적으론 장 선장의 좀 더 깊은 모습, 층이 많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런 점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배우적인 아쉬움이 좀 있습니다(웃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선장의 인물됨이 영화 내에서 잘 보인 것 같아서 만족했어요.”
그의 말대로 극 중 장 선장은 좋게 보면 입체적인 인물이며, 다른 측면에서 보면 종잡을 수 없는 ‘기분파’다. 그럼에도 다소 ‘지질한’ 승리호 선원들 가운데 유일하게 냉철한 판단으로 중심을 잡는 리더다. “안 돼, 정의롭지가 못 해”라는 그의 대사는 사실상 승리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로 여겨진다. 이처럼 캐릭터의 성격과 그 배경이 겹겹이 쌓여 있기에 그만큼 영화를 본 관객들의 각자 해석의 여지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장 선장을 ‘층이 많은 캐릭터’로 소개한 김태리는 “승리호가 권총이라면 장 선장은 방아쇠같은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장 선장을 연기하기 위해 김태리는 이제까지 그에게 부여됐던 외유내강의 모습보다는 ‘외강내강’ 그 자체의 모습을 택했다. 검은색 보잉 선글래스와 아무리 봐도 감지 않은 채로 대충 빗어 넘긴 듯한 올백 머리, 카키색의 다 떨어진 재킷에 권총까지.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새라 코너나 에일리언 시리즈의 엘렌 리플리를 떠올리게 하는 이런 이미지는 목 아래부터 발끝까지 조성희 감독의 머릿속에서 탄생했다고 했다. 김태리가 살려낸 세심한 디테일은 머리 스타일뿐이었다고 한다.
“장 선장의 외적인 이미지는 거의 다 감독님 머릿속에서 나온 거예요. 제가 캐스팅되기 이전부터 그려놓으신 그림이 있더라고요. 큰 프린트가 있는 컬러풀한 의상이나 선글래스, 권총이랑 테이저건 같은 것들요. 그런데 머리 스타일만큼은 ‘태리 씨 편한 대로 하세요’ 하셔서 고민을 진짜 많이 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했던 머리 스타일 가운데 이게 가장 장 선장에게 잘 어울리겠다 싶은 걸로, 좀 더티하고 관리 안 하는 느낌으로 선택했어요. 우주선이라 물이 귀하거든요(웃음).”
앞서 열렸던 온라인 컨퍼런스나 인터뷰에서도 승리호 선원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숨김없이 보여 왔던 김태리는 이번 인터뷰에서도 함께한 선후배, 동료 배우들에 대한 칭찬을 이어나갔다. 특히 꽃님이(도로시) 역의 아역배우 박예린을 향해서는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멘트를 던지기도 했다.
장 선장의 이미지는 대부분 조성희 감독이 구상해 냈지만 그의 머리스타일만큼은 김태리가 직접 고안해 낸 것이라고. 사진=넷플릭스 제공
그가 말한 것처럼 친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필요가 없는 동료 출연진과 그 현장을 만난다는 것은 배우 입장에서 큰 행운일 수밖에 없다. 2016년 영화 ‘아가씨’로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어리고 생소한 얼굴의 여배우가 영화 ‘1987’,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까지 드라마와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며 마침내 한국 최초의 SF영화로 국내 관객들은 물론, 해외의 팬들과도 동시에 호흡할 수 있는 배우로 우뚝 서게 됐다. 김태리는 스스로를 “운이 좋은 배우였다”고 겸손하게 표현하곤 했다. 그래서 그런 운이 언제까지고 따라주진 않을 거라는 조바심이 생기진 않느냐는 조심스러운 질문이 나왔다. 인터뷰 처음에 그랬듯 김태리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냥 시간에 몸을 맡기면 된다”는 현자 같은 답변을 내놨다.
“아, 그런 마음 다스리기 쉽지 않아요(웃음). 그냥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죠. 그런 조바심은 연기적 에너지를 내는 데 하등의 도움이 안 돼요. 그냥 위축만 될 뿐이거든요. 그냥 빨리 벗어나는 게 최선의 방법이고,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거예요. 제가 가진 당당함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어릴 때부터 저는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왔거든요. 그것에 대한 굉장히 큰 자부심이 있습니다. ‘나는 혼자 컸다!’ 거기서 오는 당당함이지 않을까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