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의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주식 부자다. 그가 가진 카카오 주식 1217만 주(13.75%)의 가치는 지난 17일 종가(50만 9000원) 기준 약 6조 1900억 원이다. 김 의장이 지분 100%를 가진 케이큐브홀딩스의 카카오 주식 993만 주(11.21%)의 가치 약 5조 원을 더하면 11조 원가량이다. 최근 수년 사이 카카오 성장세가 가파르고,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따른 언택트(비대면) 수혜로 지난해부터 주가가 오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김 의장의 재산은 더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자신의 재산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만약 김 의장이 약속을 지킬 경우 사실상 ‘5조 원+알파’의 기부가 실현되면서 국내 다른 최고경영자(CEO)들의 ‘역대 기록’을 단번에 갈아치우게 된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금액을 사회에 환원한 CEO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이다. 정 회장은 2007년부터 6년에 걸쳐 8500억 원을 출연했다. 김 의장의 기부는 이 금액의 6배가 넘을 뿐 아니라 국내 상위 10대 기업이 2019년 낸 기부금 7398억 원의 7배를 웃돈다.
김범수 의장의 파격 선언은 최초 공개 이후 시간이 다소 흘렀음에도 아직도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약속’은 했지만 ‘구체적 실행 계획’은 언급하지 않았고, 공교롭게도 기부 계획을 밝힌 시점이 그를 ‘곤란하게’ 만든 의혹이 불거진 직후였기 때문. 국내 재계 기부 문화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와 함께 보여주기식 기부라는 차가운 시선이 함께 얽혀 있다.
#왜 지금인가
김범수 의장을 둘러싼 의혹은 자녀 및 친인척 주식 증여에서 시작했다. 김 의장은 지난 1월 보유 주식 중 33만 주(당시 시세 약 1450억 원)를 그의 부인과 두 자녀를 포함, 총 14명의 친인척에게 증여했다. 이 증여로 김 의장의 아내와 두 자녀가 처음으로 카카오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 3인의 보유 주식 가치만 총 790억 원으로 전체 증여 가치의 절반을 넘는다.
김범수 의장이 가진 지분에 비하면 ‘소액’이지만 시장은 대형 그룹사 창업자의 주식 변화에 대한 결정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특히 다른 곳도 아닌 가족과 친인척에게 거액의 주식을 증여하는 일은 구설을 피하기 어렵다. 동시에 김 의장의 두 자녀가 지난해부터 나란히 케이큐브홀딩스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도 올해 초에야 뒤늦게 알려졌다. 일련의 주식 변동은 경영 승계를 위한 움직임이라는 의심이 짙어졌다.
의혹이 불거진 이후 카카오 측은 “김 의장 개인 소유의 회사로 카카오와 업무적 연관성은 없다”고 설명했지만, 케이큐브홀딩스는 카카오의 2대주주로, 시장에선 사실상 카카오의 지주회사라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평소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소신을 밝혀왔던 김 의장이 결국 다른 재벌기업과 똑같이 2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재산 절반 사회 환원 계획 발표는 이 비판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치권의 이익공유제 추진과 연결 짓는 시선도 있다. 이익공유제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월 제안한 것으로서 그 취지는 코로나19 시기에 높은 수익을 낸 기업이 그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면 이를 통해 자영업자 등 서민들을 돕겠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수혜를 많이 본 IT기업들이 이 계획 중심에 올라 있다. 김 의장의 ‘개인적’ 사회환원 계획은 이에 대한 답변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카카오 안팎의 복수 관계자들은 앞의 의혹 및 각종 ‘설’들과 김 의장의 사회환원 계획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는다. 가족과 친인척에 대한 주식 증여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한 것에 가깝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사진=카카오 제공
김범수 의장은 2007년부터 최근까지 기부를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특히 교육과 관련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역시 유년시절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세율이 50%가 넘는 증여세가 나오는데도 주가가 고점일 때 증여했다. 경영 승계를 위해서라고 해석하기는 어렵지 않겠나”라고 반문하며 “기부 계획도 뜬금없이 나온 게 아니라 그동안 구체적인 기부 행위를 해오면서, 또 카카오가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 환원 범위를 넓히고 그 방식도 새롭게 추진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떻게 환원할 것인가
김범수 의장이 추진할 새로운 사회 환원 방식에도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가장 먼저 적게는 1조 원, 많게는 50조 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구글과 페이스북 창업자들의 행보와 연결됐다. 김 의장도 비슷한 방식으로 기부를 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왔다.
미국의 IT 부호들은 재단을 직접 설립하거나 자선재단, 공익법인 등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 방식을 추진하기에는 걸림돌이 적지 않다. 일단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재단 등 공익법인에 특정기업 주식을 5% 이상 기부하면 증여세율이 최대 60%다. 재단을 통한 편법 증여와 경영권 상속 등을 막기 위해서다.
김 의장의 카카오 지분율은 약 13.75%다. 여기에 지주사 케이큐브홀딩스가 가진 카카오 지분 11.21%를 합치면 모두 24.96%다. 재산 절반이면 지분율 12∼13%에 해당한다. 5%의 두 배가 넘는다.
주식을 처분해 현금을 기탁해도 쉽게 활용하지 못한다. 공익법인에는 설립 당시 원금(기본재산)은 보존하고, 투자 수익으로만 사회 공헌 활동을 할 수 있는 규제(원금보존 규제)가 있다. 주식 규모가 너무 커 한 번에 처분할 경우 나타날 시장 충격도 감안해야 한다.
카카오 재단인 카카오 임팩트를 적극 활용하거나 개별 재단을 직접 설립해 운영하는 방식은 오해를 사기 쉽다. 그동안 일부 대기업이 사회에 환원할 지분 중 일정 부분을 재단에 귀속시키고, 재단이 보유한 지분을 오너 일가의 우호지분으로 경영권 유지에 활용해 논란이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비슷한 형태로 기부가 실현될 경우 김 의장의 사회 환원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
현재 김 의장이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방안으로는 주식을 소액으로 쪼개 후원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김 의장은 과거부터 이 방식으로 기부를 해왔다. 아쇼카 한국재단,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에 주식을 기부할 때도 2만~3만 주를 매년 1만 주씩 나눠 증여했다. 그 밖에 현대가 3세 정경선 루트임팩트 창립자처럼 소셜벤처 투자를 활용하거나 뜻이 맞는 사회 문제 해결 단체 또는 전문가에게 활동 공간과 비용 등을 지원하는 방식도 관측된다.
이달 말께로 예상되는 카카오 구성원 간담회에도 눈길이 쏠린다. 보통 목요일 오후 5시에 열려 ‘T500’이란 별칭이 있는 이 간담회는 카카오에 중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김 의장과 CEO, 실무자 등 많게는 100명 이상 참여해 토론을 벌여왔다. 김 의장은 구성원들에게 사회 환원 계획을 밝히면서 “조만간 깊은 소통을 할 수 있는 간담회도 열어보려고 하니 그때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이번 간담회에서 김 의장의 사회 환원 방식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카카오 관계자는 “아직까지 간담회 일정 또는 공지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