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하다. 그러나 ‘설’이 끊이지 않는다. 대선발 정계개편을 흔들 탈당 시나리오 얘기다. ‘이슈메이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탈당설에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이 지사는 신년 들어 줄곧 1강 체제를 형성했다. 여론조사 평균 지지도는 20%대 후반에 달한다. 이견이 없는 독주 체제다.
그간 차기 대선주자 탈당은 2인자의 몫이었다. 여의도의 기존 문법을 뛰어넘는 ‘이재명 탈당설.’ 여권 주류인 친문(친문재인)계의 본격적인 판 흔들기와 이 지사의 적극적인 방어전. 여권 권력구도를 둘러싼 최대 승부처의 막이 올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월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사시설 보호구역 해제 및 완화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특별한 움직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탈당설에 이어 대선 경선 연기론 등이 잇따라 분출했다. 특히 이 지사는 공개적인 압박을 받지 않았지만, 탈당설에 대해 선제 방어를 했다. 이재명 탈당설 핵심 전제는 ‘비주류의 당내 경선 통과 불투명’이다. 여기엔 여권 주류 지지 없이는 본선행이 불가능하다는 친문 패권주의가 깔렸다.
더불어민주당 내부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난데없는 이재명 탈당설이 재부상한 경로는 ‘친문계의 제3후보론 검증→13룡 등판론→여권 대선잠룡의 이재명 때리기 본격화→탈당설 확산→대선 경선 연기론 및 전 당원 투표’다. 여의도 안팎에선 “여권 내 반이재명 연합군이 형성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재명 때리기 직후 ‘대선 경선 연기론’과 ‘전 당원 투표론’이 당 내부에 고개를 들자, 반이재명 연합군 태동에 대한 의구심은 짙어졌다. 5월 차기 당 대표 선출 후, 대선 경선과 대선 룰 변경을 논의하자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흘러나온다.
특히 친문계를 중심으로 온라인 전 당원 투표를 통해 ‘대선 180일 전 선출’인 현행 당헌을 ‘대선 120일 전’으로 늦추자는 안이 나오면서 논란은 한층 확산됐다. 당내 반이재명 전선은 신친문인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연일 이 지사를 비판하는 와중에 얼개를 갖췄다. 이 지사 측 내부에선 ‘판 흔들기’라며 격앙된 분위기가 감지됐지만, 확전만은 자제하는 모양새다.
친문계의 대선 경선 연기와 룰 변경 명분은 코로나19와 릴레이 선거전에 따른 공백이다. 당 주류 인사들은 “코로나19와 4월 재보궐 선거, 5월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등이 맞물리면서 대선 준비 기간이 짧아졌다”고 토로하고 있다. 대선 180일 전 선출 규정에 따르면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데드라인은 ‘오는 9월 초’다. 5월 전당대회 이후 3개월밖에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대선 경선 연기 등에 관해) 내부 논의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집권 5년 차를 맞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도가 낮지 않다는 점도 대선 경선 연기론이 힘을 받는 데 한몫했다. 통상적으로 지지율이 앞선 당은 열세인 당보다 최종 후보를 늦게 선출한다. 김대중(DJ)·노무현 캠프를 경험했던 한 국회 보좌관은 “(지지율이) 우세인 쪽이 먼저 후보를 선출하면, 괜히 공격의 빌미만 제공한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은 21대 대선 4개월 전인 올해 연말 최종 후보를 선출할 예정이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 사진=박정훈 기자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대선 후보 선출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게 다수의 인식”이라고 밝혔다. 친문계 일각에선 ‘(대선 경선 연기는) 이 지사에게도 불리할 게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지사 아킬레스건인 가족사 등에 대한 방어 시간을 두 달 늦추는 이른바 ‘시간 벌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문(비문재인)계 일부 인사들은 ‘꿈보다 해몽’이라고 친문계를 비판했다. 민주당은 논란이 확산되자, 대선 경선 연기 검토에 대해 “논의된 바도, 검토된 바도 없다”고 일축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대선 경선 일정이나 룰에) 손을 대면 당이 깨질 것”이라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 지사 측도 확전을 자제한 만큼, 양측 간 갈등이 단기간에 일촉즉발로 치달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이 지사의 전략적 행보다. 이 지사는 2년 전과는 달리, 공개적인 탈당 압박에 시달리지 않았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국무총리, 임종석 전 실장 등이 ‘반 기본소득제’ 전선을 고리로 때리자, 탈당설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이 지사는 2월 8일과 9일 “제가 왜 (당을) 나갑니까” “제 사전에 탈당은 없다” 등으로 방어막을 치면서 선제 대응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불리한 상황을 정면 돌파’하는 이 지사 특유의 기질이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이 지사는 반이재명 연합군이 부상하자, 탈당설을 적극 해명했다. 앞서 2018년 지방선거 이후 진행된 민주당 전당대회 때 김진표 민주당 의원은 “이 지사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탈당을 공론화했다. 당시 당 내부에선 이재명 비토론이 극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도 너무 나간 발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설훈 의원은 “가짜 뉴스인 줄 알았다”며 김 의원 사과를 촉구했다.
당권 후보자였던 이해찬 당시 후보도 “잘 모르겠다”며 “전당대회와 관계없을 것”이라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했다. 친문계 한 관계자는 “당시 김 의원의 탈당 요구로 원팀이 깨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해 국정감사에서 이 지사는 김영우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으로부터 “당내 문재인 정권 실세로부터 자진 탈당 압력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는 질의까지 받았다. 이에 이 지사는 “그런 말을 하는 분이 있었다”며 “나보고 (탈당을) 고려하라고 한 것이니 내가 안 하면 그만 아니냐”라고 말했다. 한동안 여의도에선 ‘안이박김(안희정·이재명·박원순·김부겸 혹은 김경수)’ 숙청설이 확대 재생산됐다.
이번엔 이 지사가 이를 역이용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 지사가 감성 정치의 일환인 ‘비주류 포지션’을 앞세워 집토끼(지지층)는 묶고 산토끼(비지지층) 이탈은 최소화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특히 임종석 전 실장을 필두로 친문계의 거센 공격 과정에서 당 주류 핍박을 공론화한 것을 놓고는 ‘노무현 마케팅’을 차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에게 발탁된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3당(민주자유당·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 합당을 거부한 뒤 꼬마 민주당을 거쳐 평생 지역주의와 싸운 대표적인 비주류이자, 정치권의 이단아였다.
이 지사의 다중 포석 효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비주류 포지션 전략은 ‘이재명은 친문계와는 결이 다르다’는 인식을 극대화한다. 여당 내 야당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중도층에 어필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명박(MB)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여당 내 야당 포지션을 구축, 끝내 보수와 중도층을 동시에 포섭했다. 다수의 정치평론가들은 “당시 국민 다수는 MB와 박근혜가 다르다고 인식했다”며 “이런 차별화가 박근혜 정권 출범을 정권교체로 본 이유”라고 설명했다. ‘1강 체제’를 구축한 이 지사의 자신감도 이 같은 대응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가 당분간 다중 포석이 담긴 비주류 포지션을 밀고 나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지사의 비주류 마케팅이 대선 본선행의 촉매제로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관건은 20%대 후반대인 지지도의 확장 여부다. 위기 국면에서 이 지사 지지도가 박스권에 갇히거나, 하락할 땐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수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 지사의 당내 기반이 여전히 약한 만큼, 지지도 하락 시 친문계의 공격 및 결집이 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친문계는 이미 1997년 대선 때의 신한국당 9룡을 넘어선 ‘13룡 체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문심(문 대통령 의중)도 변수다. 친문계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여권 대선 경선 국면에서 적통 후보 찾기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문 대통령이 사실상의 킹메이커 역할을 할 경우 이재명 원톱 체제가 중대한 변곡점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