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리는 최근 아들 젠의 100일을 맞았다. 고향인 일본에서 아들을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마친 그는 1월 한국으로 돌아와 아들의 100일 잔치를 손수 열었다. 사진=사유리 인스타그램
사유리는 최근 아들 젠의 백일을 맞았다. 고향인 일본에서 아들을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마친 그는 1월 한국으로 돌아와 아들의 백일잔치를 손수 열었다. 2007년 KBS 2TV 예능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를 통해 방송 활동을 시작해 다양한 무대에서 활약해온 그에게 한국은 제2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귀국하고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친 사유리는 평소 가깝게 지낸 가수 이지혜, 연기자 유민 등 연예계 동료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굳이 결혼하지 않고도 아들을 낳고 ‘엄마’가 된 그를 향해 대중은 물론 방송가의 관심도 뜨겁다. 출산 이후 몇 차례나 지상파 TV 메인뉴스를 장식하는가 하면, 예능부터 각종 프로그램으로부터 출연 제의도 받고 있다.
#‘엄마’ 사유리
결혼하지 않고 아이만 낳아 기르는 여성을 지칭하는 ‘자발적 비혼모’는 아직 한국에서는 낯선 개념이다. 독신주의자이면서 연인 혹은 정자은행을 통해 아이는 낳기로 선택, 가부장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엄마가 될 권리를 실현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다만 한국에서는 사유리처럼 결혼하지 않고 정자를 기증받기가 어렵다. 정자 기증을 통한 임신뿐만 아니라 원하지 않은 임신의 경우 이를 중단하기 위한 낙태를 결정하는 데도 일정한 제약이 따른다. 때문에 사유리의 ‘자발적 비혼모’ 선택은 우리 사회에서 엄마가 될 권리, 아이를 낳을 권리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유리는 유튜브 개인채널 ‘사유리TV’를 통해 일상을 공개하면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아들 젠을 키우는 소소한 육아 과정도 적극적으로 공유한다. 채널 구독자는 사유리의 출산이 알려진 직후 급증하기 시작해 젠의 100일을 기점으로 25만 명을 돌파했다. 아직 국내에서는 낯선 정자 기증을 통한 ‘자발적 비혼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사유리의 행보는 화제의 연속이다. 그는 최근 유튜브 구독자 증가로 얻은 수익금 1000만 원을 ‘베이비박스’에 기부했다. 베이비박스는 출산은 했지만 생계난 등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없는 부모가 아기를 대신 받아 위탁시설에 맡길 수 있도록 돕는 간이 시설이다. 버려지는 아기들을 막기 위해 한 교회가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사유리는 베이비박스 기부에 대해 KBS 인터뷰에서 “같은 엄마로서 어떤 마음으로 여기(베이비박스)까지 데리고 왔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힘겨운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돕는 일을 일회성 기부로 끝내지 않고,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실천하면서 꾸준히 기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일련의 활동은 그가 10년 넘도록 방송 활동에서 보인 모습과 사뭇 달라 더욱 주목받는다. ‘미녀들의 수다’로 방송을 시작한 그는 JTBC ‘님과 함께’ MBC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 등에 출연하면서 엉뚱하고 발랄한 모습으로 인기를 얻었다. ‘4차원 매력’의 대표주자로 꼽혔던 만큼 그의 최근 행보는 더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귀국하고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친 사유리는 평소 가깝게 지낸 가수 이지혜, 연기자 유민 등 연예계 동료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사유리 인스타그램
#“아이 낳을 권리 인정받길”
사유리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데는 이유가 있다. 1979년생인 그는 2019년 10월 생리불순으로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난소 나이 48세’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이를 낳기 원하던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었다. 고심 끝에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출산 사실을 처음 공개하면서 사유리는 “산부인과에서 ‘자연 임신이 어렵고, 지금 당장 시험관 시술을 하더라도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돌이켰다. 당시 교제하는 연인이 없던 그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급하게 찾아 결혼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사유리는 외국의 한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자연분만으로 아들을 출산했다. 일본 등 동양인이 아닌 서양인의 정자를 기증받은 데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서양과 비교해 아직 정자 기증에 대한 공감대가 낮은 동양의 경우 기증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사유리는 ‘사유리TV’에서 “서양이든 동양이든 신경 쓰지 않았다”며 “(정자를) 기증하는 곳에는 동양인이 거의 없고, 기증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서양의 한 사람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건강한 사람, EQ지수가 높은 사람의 정자를 찾아 기증받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결혼한 기혼자만 시험관이 가능하고, 미혼여성이 정자 기증을 받을 수도 없는 탓에 사유리의 선택에는 이목이 집중됐고 다양한 반응도 쏟아졌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도 ‘엄마가 될 권리’,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형성되고 있다. 물론 반대의 의견도 있다. 비혼모로부터 태어난 아이의 성장을 걱정하는 우려의 시선이다.
엇갈리는 반응, 다양한 평가 속에 사유리의 선택은 ‘자발적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인 공론의 장을 열었다는 데에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더욱이 얼마 전 여성가족부가 주최한 공청회에서는 비혼 가구, 동거 공동체 등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형성된 공동체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정책 추진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긍정적인 신호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