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금메달은 대한민국 올림픽 역사상 구기종목 최초 금메달이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 처음으로 야구 대표팀을 파견했다. 당시에는 아마추어 선수들로만 대표팀이 구성됐다. 김선우, 손민한, 문동환, 임선동, 진갑용, 조인성, 이병규처럼 훗날 프로에서 내로라하는 스타가 된 선수들의 이름이 여럿 들어 있었다. 첫 올림픽 성적은 8위. 기대에 못 미쳤다. 하지만 4년 뒤 시드니 올림픽 선전의 초석이 됐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는 프로 정예 멤버들이 처음 참가했다. 선수단 23명 가운데 아마추어 선수는 동국대 박한이와 경희대 정대현뿐이었다. 한국은 미국과 준결승전에서 정대현의 호투를 앞세워 접전을 펼쳤지만, 2-3으로 아쉽게 패했다. 대신 동메달 결정전에서 만난 일본을 통쾌하게 물리쳤다.
선발 구대성이 9이닝 5피안타 11탈삼진 1실점 완투승으로 일본의 ‘괴물’ 선발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압도했다. 이승엽은 0-0이던 8회 2타점 결승 2루타를 쳤다. 김응용 당시 대표팀 감독은 대회 직후 “동메달보다 일본을 두 차례나 이겼다는 것이 더 기쁘다”고 했다. 명승부의 연속이었다.
그 영광도 잠시. 한국 야구는 2004 아테네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일본과 대만에 일격을 당해 3위로 밀렸다. 그래서 2008년 베이징 대회 본선 진출은 8년간 품어온 숙원이었다. 그리고 그 아픔은 ‘완벽한 금메달’로 승화됐다.
베이징에 입성한 이승엽은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때만 해도 그 말이 실제로 이뤄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차츰 현실이 돼갔다. 류현진, 김광현, 김현수, 이대호 같은 대표팀의 새 얼굴들이 주축을 이뤄 똘똘 뭉쳤다. 예선 7경기를 다 이기는 파란이 이어졌다. 쿠바, 일본, 미국을 모두 꺾었다.
준결승에서는 일본을 만났다. 8회 이승엽의 결승 2점포가 터졌고, 김광현이 8이닝 2실점으로 역투했다. 결승에선 ‘디펜딩 챔피언’ 쿠바를 상대했다. 이승엽이 선제 결승 2점 홈런을 쳤고, 선발 류현진이 8⅓이닝 2실점으로 역투했다. 석연찮은 볼 판정이 만들어낸 1사 만루에선 정대현이 극적인 유격수 병살타를 솎아냈다.
한국 남자 단체 구기종목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베이징 우커송 구장 하늘에 태극기가 올라가는 순간, 태극마크를 달고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선수들의 눈가마저 젖어 들었다. 그리고 이 영광은 결국 프로야구의 부흥과 ‘베이징 키즈’의 대거 등장으로 이어졌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