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해서야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된 임영웅은 4학년 때 주차장에서 외사촌들과 함께 놀다가 넘어져 얼굴을 크게 다친다. 무려 서른 바늘이나 꿰맸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왼쪽 뺨에 지금도 흉터가 남아 있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에는 이마에 흉터가 있는 해리포터가 있다면 대한민국 가요계에는 왼쪽 뺨에 흉터가 있는 임영웅이 있다.
포천에서 열린 한 가요제에서 1등을 차지하며 임영웅은 비로소 입상에 성공한다. 기존 가요제와 다른 부분은 트롯을 불렀다는 점이다. 사진=SBS ‘판타스틱 듀오’ 방송 화면 캡처
어린 시절부터 가수가 꿈이었던 임영웅은 2010년 경기도 포천 소재의 경복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진학한다. 가수를 꿈꿨지만 처음부터 트롯 가수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발라드나 R&B 장르의 가수가 되려 했다. 가수 데뷔를 위해 이런저런 가요제에 자주 나갔지만 입상에는 실패했다.
그러다 포천에서 열린 한 가요제에서 1등을 차지하며 임영웅은 비로소 입상에 성공한다. 기존 가요제와 다른 부분은 트롯을 불렀다는 점이다. 당시 가요제에는 어르신 관객들이 많아 그분들이 좋아할 노래로 트롯을 선택한 것이었는데 따지고 보면 탁월한 선택이었다.
트롯 선택은 바로 2016년 2월 출연한 KBS ‘전국노래자랑’ 포천편 최우수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그해 7월에는 SBS ‘판타스틱 듀오’ 이수영 편에 출연하게 된다. 당시 ‘홍대 트롯 영웅’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던 임영웅은 그날 방송에서 장윤정에게 칭찬받은 것이 특히 기뻤다고 한다. 무명가수 시절 한 인터뷰에서 “언젠가 장윤정 선배님과 꼭 한 번 같은 무대에 서보고 싶다”고 말했던 임영웅이 이제는 장윤정과 나란히 앉아 마스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왜 ‘홍대 트롯 영웅’일까. ‘트롯’ 가수이며 이름이 ‘영웅’이라는 점은 쉽게 이해가 되는데 ‘홍대’라는 표현은 다소 어색하다. 이미 꿈을 정통 트롯 가수로 정했지만 젊은 가수만의 에너지와 신선함도 함께 가져가길 원했던 임영웅은 한강이나 홍대에서 버스킹에 나섰다. 흔치 않은 트롯 버스킹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트롯 가수가 그 발판을 마련한 곳은 바로 10대 20대가 많이 오가는 홍대거리에서의 버스킹이었다.
2016년 7월 SBS ‘판타스틱 듀오’ 이수영 편에 출연한 임영웅. 그는 당시 본인을 ‘홍대 트로트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사진=SBS ‘판타스틱 듀오’ 방송 화면 캡처
버스킹은 임영웅에게 많은 것을 선사했다. 발라드 가수를 꿈꾸다 정통 트롯 가수로 전향한 그는 길거리에서 10대 20대와 함께 호흡하며 공감했다. 당시 버스킹 관객들은 임영웅 노래에서 발라드와 트롯의 오묘한 조화를 발견한다. 임영웅이 발라드를 불러도 트롯의 느낌이 나왔기 때문이다. 임영웅은 무명 시절 한 인터뷰에서 “그때 발라드와 트로트의 조합이라는 의미로 ‘발로트’라고 표현을 했더니 반응이 좋았다. ‘발로트’ 하면 임영웅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길거리 트롯 버스킹으로 내공을 쌓고 ‘발로트’라는 절대 신공을 터득한 임영웅은 SBS ‘판타스틱 듀오’를 통해 공중파에 등장했다. 이후 한 연예기획사에서 연락을 받은 임영웅은 2016년 8월 데뷔앨범 ‘미워요’를 발표하며 정식 가수가 된다.
당시만 해도 신예 트롯 가수는 곧 무명가수였다. 트롯 가수의 활동 영역이 너무 제한적이라 무명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데뷔 이후 전국 각지의 행사 무대를 다니며 활동했지만 스타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2017년 1월 신곡 ‘뭣이중헌디’를 발표할 당시 임영웅은 ‘대형 트롯 신예’라고 불릴 만큼 큰 기대를 받았고 몇몇 매체와 인터뷰도 했다. 그럼에도 신인 트롯 가수가 무명을 벗어나는 길은 너무 험난했다.
1년 6개월여의 무명 생활을 이어가던 임영웅이 다시 잡은 기회는 2017년 12월 KBS ‘아침마당’의 인기 코너 ‘도전 꿈의 무대’ 출연이다. 이미 확실한 내공을 갖추고 있던 터라 첫 출연에서 순조롭게 1승을 거두며 ‘5연승 졸업’까지 쾌속 질주를 할 것처럼 보였지만 두 번째 출연에서 2승 도전에 실패한다. 그에게 패배의 쓴맛을 보여준 이는 ‘미스트롯2’의 유력 우승 후보였지만 최근 학폭 논란으로 자진하차 한 진달래였다.
당시 방송에서 임영웅은 군고구마 장사를 하고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임영웅은 그 이유를 “군고구마 장사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고 멋지게 말했지만 사실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 가수로 데뷔해 꾸준히 지방공연을 다녔지만 수입은 많지 않았고 스케줄도 일정치 않았다. 그래서 다시 길거리로 나가 군고구마 장사를 하며 내공을 쌓은 임영웅은 2018년 1월 KBS ‘아침마당’ 패자부활전에 다시 출연하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진정한 내공은 선보이며 5연승을 거둬 3월 21일 명예롭게 이 프로그램에서 ‘졸업’한다.
군고구마 장사를 하며 내공을 쌓은 임영웅은 2018년 1월 KBS ‘아침마당’ 도전꿈의무대 코너의 패자부활전에 다시 출연해 5연승을 거둬 3월 21일 이 프로그램에서 명예롭게 졸업했다. 사진=KBS ‘아침마당’ 방송 화면 캡처
바로 3월 28일 신곡 ‘엘리베이터’를 발표해 평단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히트를 치진 못했고 2018년 8월 다시 신곡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를 발표한다. 비로소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가 히트를 치면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던 무명 가수의 굴레를 조금씩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2018년 12월 30일 KBS ‘전국노래자랑’ 연말 결산 방송에 초대가수로 출연한 임영웅은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를 열창한다. 무명가수 시절인 2017년 4월 한 인터뷰에서 “언젠가 ‘전국노래자랑’에 초대가수로 나가고 싶다”며 “송해 아저씨는 저를 기억 못하겠지만 꼭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던 그가 비로소 그 꿈을 이룬 것이다.
대한민국 트롯의 역사는 2019년 2월 시작된 TV조선 ‘미스트롯’을 통해 다시 쓰이기 시작한다. 임영웅은 2018년 연말 ‘전국노래자랑’에 초대가수로 출연하며 아무도 예상치 못한 대한민국 트롯계의 격동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임영웅 스토리②’로 계속됩니다. |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