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는 소년’ 미스터리는 한동안 잠잠하다 1992년 다시 ‘발화’됐다. |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무서운 이야기가 한동안 영국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우는 소년(Crying Boy)’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건 집에서는 꼭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해서 집이 전부 타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기묘한 것은 가재도구를 비롯해 집 전체가 모두 불에 타서 무너져도 ‘우는 소년’ 그림만큼은 항상 무사했다는 사실이었다.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그림은 불에 타기는커녕 그을음 자국 하나 없이 멀쩡해서 보는 사람들을 오싹하게 만들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비슷한 일을 겪은 영국인들이 늘어나자 이 그림은 ‘저주가 내린 그림’이라는 소문에 휩싸였으며, 결국 2500점의 그림을 한데 모아 단체로 불태워 버리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이처럼 한바탕 소동을 겪은 후 한동안 잠잠했던 미스터리가 최근 영국인들 사이에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 ‘BBC 라디오4’가 이 그림에 관한 미스터리를 쫓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그림은 소년의 저주 때문에 불에 타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너무도 단순한 어떤 이유 때문에 멀쩡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어린 소년 혹은 소녀가 눈물을 흘리면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우는 아이’ 시리즈는 스페인 화가 브루노 아마디오(1911~1981)의 작품들이다. 1950년대에 27~28점가량의 비슷한 그림들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 후 수많은 복제품들이 대량으로 시중에서 팔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60~70년대 영국에서만 무려 5만 점 이상이 팔렸고, 당시 시장이나 백화점 등 어느 곳에서나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는 대중적인 그림이었다. 예술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가치를 인정 받지 못했지만 일반 대중들,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높은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림이 많이 팔린 데 비해 그림을 그린 화가인 아마디오에 대해서는 딱히 알려진 사실이 없었다. 그림에는 모두 생전에 그가 사용했던 필명인 ‘G Bragolin’이라는 사인만 적혀 있을 뿐 어디 출신인지, 또 어떤 화가인지 등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단지 알려진 것이라곤 그가 2차대전이 끝난 후부터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작품 활동을 했으며, ‘우는 소년’ 그림은 당시 베니스를 찾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팔기 위해서 그린 것들이라는 정도였다.
이처럼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팔리던 그림이 사람들의 특별한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5년 영국의 대중지 <더 선>의 기사 때문이었다. 당시 9월 4일자 기사에서 <더 선>은 “우는 소년의 불타는 저주”라는 제목으로 “사우스요크셔에 살고 있는 홀 부부의 집에 불이 났는데 놀랍게도 ‘우는 소년’의 그림이 화재의 원인일지 모른다”고 보도했다.
조사 결과 화재는 1층 부엌에 있던 낡은 프라이팬에 불이 붙어 발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따로 있었다. 집이 모두 전소됐는데도 불구하고 ‘우는 소년’ 그림은 불에 타지 않은 채 멀쩡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림을 한눈에 알아본 은퇴한 소방관인 앨런 윌킨슨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나왔다. 그는 “근 10년 전부터 이와 비슷한 화재 현장을 50여 차례 목격했다. 현장에서는 늘 이 그림이 발견되곤 했었다”라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그저 우연이겠거니 생각했다고 말한 그는 “워낙 어느 집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이어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지역 신문에서 두어 줄 정도로 보도됐을 이 화재 사건이 전 영국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것은 <더 선>이 윌킨슨의 말에 ‘저주’라는 양념을 가미하면서부터였다. <더 선>은 “그림 속 소년의 저주로 인해 불이 났다” “그림만 멀쩡한 것은 어떤 원한이 맺혀 있기 때문이다”라는 등 독자들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더 선>의 보도가 나가자 곧 영국 전역에서 비슷한 제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레이에 사는 한 여성은 “그림을 사고 6개월 후에 갑자기 집에 불이 났다. 집에 있던 모든 그림들은 다 불탔는데 ‘우는 소년’ 그림만 무사했다”고 말했는가 하면, 노스요크셔의 한 여성은 “나뿐만 아니라 집에 그림을 건 시누이와 또 한 명의 친구 역시 집에 불이 났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두려움에 떨기 시작하자 소방당국은 “화재와 그림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발생한 화재는 대부분 전기 누전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조사 결과 그림이 그려진 하드보드가 불에 잘 타지 않는 소재였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라며 안심시키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에 저주가 걸려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자 결국 <더 선>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이색적인 제안을 했다. 소장하고 있는 그림들을 <더 선> 편집부로 보내주면 한꺼번에 모아서 태워버리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모인 그림들은 모두 2500점가량이었으며, 실제 <더 선>은 커다란 모닥불 속에 그림들을 집어넣어 소각시켜 버리는 일대 ‘쇼’를 벌였다.
▲ 미들즈브러의 한 임대아파트에 ‘우는 소년’ 그림을 걸었다가 화재를 겪었다는 여성. |
또한 2002년에는 화재가 가장 먼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요크셔에서 또 한 차례 화재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0년 전 시장에서 2파운드(약 3500원)를 주고 ‘우는 소년’ 그림을 사왔다고 말한 스탠 존스는 “한밤중에 잠을 자던 중 집에 불이 나서 간신히 도망쳐 나왔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시 저녁식사를 그릴에 올려 놓은 채 그냥 잠든 것이 화재의 원인이었지만 이번에도 ‘우는 소년’ 그림이 무사했다는 사실은 영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이 그림에 정말 저주가 깃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림 속의 소년은 누구며, 왜 저주를 품게 된 걸까. <더 선>을 통해 ‘우는 소년’ 그림이 알려지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럴 듯한 추측과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아마디오가 관광객들을 상대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스페인의 한 시골 마을에 있는 고아원에서 만난 아이들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림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아원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불에 타 죽은 아이들의 원한이 그림에 깃들었다는 것이다.
또 이와 달리 어떤 사람들은 아마디오가 모델이었던 아이들을 학대했으며, 이 때문에 아이들이 복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저주를 방지하려면 소년과 소녀의 그림을 나란히 걸어 놓으면 된다’는 불분명한 저주풀이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가장 많이 퍼진 소문은 1995년 화가의 정체를 처음 밝혀냈다고 주장한 퇴직 교사인 조지 말로리의 추론이었다. 당시 그는 ‘우는 소년’ 그림이 프랜쇼 세빌이라는 필명으로 마드리드에 살고 있던 아마디오가 길에서 만난 한 떠돌이 소년을 모델로 그린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말을 하지 않은 채 슬픈 눈빛을 하고 있던 소년을 불쌍하게 여겼던 아마디오는 소년에게 빵을 준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침 지나가다가 이 모습을 본 한 신부가 아마디오에게 “이 소년의 이름은 돈 보닐로다. 얼마 전 집에 불이 나서 부모가 모두 죽었는데 그때 충격으로 말을 못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이 소년을 거두었던 집에서는 모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으니 조심하라. 마을 사람들은 소년을 가리켜 ‘악마’라고 부르고 있다”며 경고했다.
하지만 신부의 충고를 무시하고 소년을 집으로 데리고 왔던 아마디오는 그날부터 소년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림으로 많은 돈을 벌었던 것도 잠시.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의 집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으며, 결국 아마디오 본인도 화재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신부의 말을 떠올린 그는 소년을 방화범으로 몰아세우며 다그쳤고, 결국 소년은 울면서 집을 뛰쳐나간 후 영영 행방을 감추고 말았다.
이처럼 수십 년이 넘도록 미궁에 빠져 있던 저주에 대해 최근 영국의 작가 겸 코미디언인 스티브 펀트가 ‘BBC 라디오 4’의 <펀트 PI>를 통해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어쩌면 ‘우는 소년’ 그림이 불에 타지 않는 이유는 다른 데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소문으로만 떠도는 그림의 저주가 사실인지를 면밀하게 조사한 그는 조사 과정에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일단 그림 자체가 원래 불에 잘 타지 않는 하드보드에 그려져 있었다는 사실이 그것이었다. 그림 앞에 대고 불을 지르는 실험을 하자 놀랍게도 액자 코너에서부터 불이 붙기 시작하더니 결국 바깥 테두리만 탄 후 점차 불길이 사그라들었던 것.
또한 불이 난 집에서 그림이 타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대부분의 그림이 실에 매달아서 고정시켜 놓은 형태였기 때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즉, 불이 나서 실이 끊어지면 자연히 그림은 앞으로 쓰러지게 되고, 그림의 앞면이 바닥에 엎어진 채로 있었기 때문에 연기와 열로부터 보호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펀트는 “아마도 그림 속 소년의 침울한 표정과 화가 아마디오의 수수께끼 행적 때문에 엉뚱한 소문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화랑 주인·비평가 1년 안돼 사망
그림은 소년과 여자 인형이 나란히 유리문 앞에 서 있고, 유리문 뒤로 여러 개의 손이 보이는 다소 기괴한 모습이었다. 더욱 기이한 것은 소녀의 손에 들린 권총으로 보이는 정체 불명의 물체였다.
이 그림을 경매에 내놓은 익명의 캘리포니아 부부는 “이 그림에는 ‘유령이 나오는 그림’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고 말하면서 실제 이 그림을 구입한 후에 발생한 이상한 사례들을 몇 가지 소개했다.
가령 밤마다 그림 속의 소년과 여자 인형이 움직인다거나, 심지어 그림 밖으로 나와서 방문을 열고 나갈 때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 부부는 증거로 웹캠을 통해 촬영한 사진 몇 장을 첨부해 놓았으며, 사진 속에서 여자 인형이 손에 든 권총으로 소년에게 그림 밖으로 나가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부는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미리 경고를 하는 바이며, 일단 그림을 구입한 후에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법적 책임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베이에 올라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이 그림은 곧 누리꾼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 그림을 인터넷으로 본 사람들이 이상한 경험을 했다면서 댓글을 달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냥 보기만 했는데도 갑자기 몸이 심하게 아파서 앓아누웠다고 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기절을 했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어떤 집에서는 그림을 본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가기도 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갑자기 구토가 쏠리는 등 몸에서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고도 말했다.
이런 괴소문이 퍼지자 그림의 경매가는 치솟기 시작했다. 시작가 199달러(약 22만 5000원)에 불과했던 그림은 한 달 후 약 10배가 올랐으며, 결국 1050달러(약 120만 원)에 낙찰됐다.
그림을 구입한 것은 미시간주의 ‘퍼셉션 갤러리’였다. 당시 갤러리 측은 그림을 그린 스톤햄에게 연락을 취해서 유령과 관련된 소문에 대해서 자세하게 물었다. 하지만 이 소문을 들은 스톤햄은 되레 매우 놀라워하면서 자신은 그림을 둘러싼 미스터리 이야기를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자 인형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사실 권총이 아니라 건전지에 전선이 감겨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림 속의 소년은 내 다섯 살 때 모습이다. 어릴 적에 시카고 아파트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유리문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의미하며, 옆에 서 있는 여자 인형은 이 경계에 있는 상상 속의 친구, 혹은 안내자라고 했다. 또한 유리문 안의 손들은 ‘여러 생명 혹은 가능성들’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을 털어 놓았다. 1970년대 초반 처음 이 그림을 전시했던 LA 갤러리의 화랑 주인 두 명과 당시 그림을 비평했던 <LA타임스>의 예술비평가가 전시회가 끝난 후 1년 안에 모두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모두 우연이라고 생각했으며, 결코 저주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주변 사람의 권유로 후속작을 그리기도 했다. ‘스레스홀드의 레지스탕스’라는 제목의 그림이 그것으로, 그림은 소년의 40년 후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