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장급 인사 발표 후 터진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가 주요한 변곡점이 됐다. 사진=연합뉴스
#예상대로 ‘소폭’ 인사에서 끝나
법무부가 2월 22일 내놓은 검찰 중간간부 인사는 예상대로였다. ‘빈자리를 메우는 소폭 인사’에 불과했다. 가장 큰 관심이 쏠렸던 이상현 대전지검 형사5부장(월성 원전 수사), 이정섭 수원지검 형사3부장(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 수사)은 모두 유임됐다. 한동훈 지검장 관련 수사 처리를 두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갈등을 빚어온 변필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검사도 자리를 지켰다. 주요 사건을 맡은 부장검사들도 모두 유임됐다. 권상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장(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이동언 형사5부장(이용구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의혹), 주민철 경제범죄수사부장(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 등도 그대로 남아 계속 수사를 맡게 됐다.
윤석열 총장을 비롯한 대검에서 희망한 인사 제안은 ‘주요 수사팀 부장검사 유임’ 외에는 대부분 거절당했다. 사진=박정훈 기자
법무부는 “이번 인사는 조직의 안정과 수사의 연속성을 위해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실시했다. 검찰개혁의 지속적 추진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반영하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했지만, 언론들은 ‘윤 총장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월성 원전 1호기 사건 담당 부장검사 등에 대한 ‘유임’을 희망했던 것이 받아들여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는 ‘단면’만 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검 제안 대부분 거절당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라인으로 분류됐었으나, 최근 스탠스를 바꾼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의 발언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조 차장검사는 지난 2월 22일 열린 검찰인사위원회에 참석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장관과 총장의 인사 조율 과정에서 중앙지검장과 대검 부장을 교체해달라는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러면서 “대검은 인사 정상화를 위한 광범위한 규모의 인사 단행을 요청했으나, 법무부는 빈자리를 메우는 소규모 인사 원칙을 통보했다”며 “(대검은) 중요 사건 수사팀과 중앙지검 보직 부장들의 현 상태 유지 및 핀셋 인사를 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총장을 비롯한 대검에서 희망한 인사 제안은 ‘주요 수사팀 부장검사 유임’ 외에는 모두 거절된 셈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윤석열 총장 임기는 7월 말이면 끝나는데, 그 전에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게 위해서 작은 규모로 인사를 함과 동시에 ‘핀셋 교체’는 자제한 것 아니겠냐”면서도 “결국 대검 간부에 이종근 형사부장 등 친정부 성향 인사들이 그대로 포진했다는 것은 윤 총장이 여전히 고립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신현수 “동력 상실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터진 문제가 바로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사표다. 검사장급 인사 발표 후 터진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가 주요한 변곡점이 됐다. 법무부는 당초 검사장급 인사에 이어, 차장·부장급 중간간부 인사에서 ‘핀셋 찍어내기’를 시도했으나 신 수석이 이에 반발하며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는 게 다수의 설명이다.
사안 흐름을 잘 아는 법조인은 “신 수석을 패싱하고 검사장 인사를 강행했다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보다는 신 수석이 ‘동의하지 않은 인사안’이 그대로 발표된 사실에 대한 반발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라며 “신 수석이 복귀하기 전, 물밑에서 대검과 법무부 사이의 인사안 조율이 오갔고 이 과정에서 주요 사건 수사팀 간부들도 그대로 유임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현수 민정수석은 ‘검찰과 법무부의 원활한 관계 정리’를 목표로 민정수석 자리를 승낙했지만, 계속되는 ‘검찰 찍어내기’와 ‘검찰 인사 민정수석 패싱’에 반발해 사의를 냈다는 게 다수의 설명이다. 2월 16일 사의를 밝히고 청와대를 떠났다가 22일 거취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일임하면서 복귀한 것은 중간간부 인사에 ‘신현수 수석 의사’가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신 수석이) 휴가 중에 협의도 했고 이 사안에 대한 검토도 함께한 걸로 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신현수 민정수석의 ‘존재’가 윤석열 총장의 리더십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 번 사의를 표명하면서 신 수석의 발언권에 제한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추론이다. 실제 여권 내부에서조차 “문 대통령 만류에도 불구하고 거듭 사의를 표명한 참모가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내내 함께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검찰인사위원회에 참석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장관과 총장의 인사 조율 과정에서 중앙지검장과 대검 부장을 교체해달라는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사진=이종현 기자
신 수석은 휴가 기간 중 주변에 스스로 “동력을 상실했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직무를 계속 수행하긴 어렵다는 얘기가 힘을 받는 이유다. 여당 내 비판 세력도 생겼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신 수석을 향해 “자기 정치를 하려고 하면 (민정수석) 못 하는 것이다. 자기 의사가 반영 안 됐다고 사표를 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공개 저격하기도 했다.
더불어, 윤석열 총장의 남은 임기가 5개월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레임덕’ 시작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윤 총장이 박범계 장관 등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이유 중 하나는 마지막 남은 임기 중에 검찰의 역할과 필요성을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고 이는 결국 ‘수사’가 될 것”이라며 “이번 인사로 수사팀은 지켰지만, 주요 수사를 담당하는 곳의 지검장이나 대검 간부가 다 여전히 친정권 인사들인 점은 레임덕 본격 시작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