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의 격량 속에서도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견 해운사인 장금산성과 고려해운의 각기 다른 선택이 주목을 받고 있다. 수출화물을 실은 컨테이너선이 출항하고 있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연합뉴스
장금상선과 고려해운은 한진해운 파산과 현대상선(현 HMM) 채권단 관리, STX팬오션(현 팬오션) 매각 등 해운업을 둘러싼 격랑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3~2017년에도 흑자를 기록하며 순항했다. 장금상선은 금융감독원에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영업적자를 기록하지 않았고 고려해운은 1954년 창립 이래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두 회사의 비결은 보수적 경영이다. 불확실성이 큰 유럽이나 미주노선보다는 상대적으로 예측이 쉽고 운임이 급변하지 않는 아시아 근해 노선에 집중했다. 또 중국이 원자재를 대거 사들이고 공산품을 대량 수출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로도 타사와 달리 선박 발주를 늘리지 않고 대규모 용선(배를 빌리는 것) 계약도 체결하지 않았다. 돌다리도 두드리듯 경영한 덕분에 흑자 기조를 유지한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HMM의 뒤를 이어 선복량 기준 국내 해운업계 2~3위까지 올라섰다.
#장금상선, 흥아해운 본체도 인수 추진
그런 장금상선과 고려해운은 최근 들어서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선 장금상선은 M&A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은 2019년 선주협회장으로 취임하기 전후로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로 바뀌었다.
장금상선은 M&A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장금상선 홈페이지 캡처
장금상선은 포스코인터내셔널과 공동으로 흥아해운 인수를 추진하겠다면서 1월 말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현재 워크아웃(채권단 관리) 중인 흥아해운은 당초 STX마린서비스 컨소시엄에 매각될 예정이었으나 STX마린서비스 측에서 숨겨진 부실이 발견됐다면서 계약 해제를 요청했다. 협상 결렬로 양측은 법적 공방에 나섰는데, 차순위 인수 후보자였던 KSS해운도 발을 빼면서 매각 자체는 일단 무산됐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이번 인수전 참여는 채권 회수가 목적이라는 입장이다. 장금상선은 “흥아해운은 현재는 케미컬 탱커(석유화학제품 운송선)만 남아 있어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면서도 정부와 업계 권유에 인수에 나선 상황이다.
해운업계에서는 장금상선이 M&A의 매력을 확실히 인지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한다. 장금상선은 2018년만 해도 자산이 1조 6259억 원인 중견 해운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흥아해운 컨테이너선 인수를 마무리하면서 지난해 자산은 6조 4000억 원대로 크게 늘었다. 이로 인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하는 ‘공시대상 기업집단 리스트’에도 재계 순위 54위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선정되면 기업집단 현황과 내부거래, 비상장 회사의 주요 경영사항, 주식 소유현황을 신고하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을 받아야 하지만 대기업이 됐다는 자긍심은 느낄 수 있다. 당장 직원들의 반응이 호의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장금상선은 선복량 3위 해운사지만, 최소한 자산 규모로는 고려해운을 제치고 HMM(53위)의 뒤를 이어 국내 2위 해운사가 됐다”면서 “흥아해운마저 인수하면 재계 순위는 더 오를 것으로 보이는데, 어찌됐든 경영자 입장에서 회사 덩치가 커지는 것은 나쁘지만은 않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적당한 가격에 좋은 매물을 살 수만 있다면 M&A는 시간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비법”이라며 “정태순 회장이 흥아해운 컨테이너선 인수로 효과를 봤다고 생각한다면 추가 M&A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에 끌려가면 독? 지배구조 때문에?
반면 고려해운은 ‘은둔 경영’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고려해운 박정석 회장은 돈을 벌면 그 자금으로 다시 배를 매입해 사업을 불리는 ‘정도 경영’을 해야만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해운은 ‘은둔 경영’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고려해운 홈페이지 캡처
박 회장의 주장이 사내외에서 먹히는 것은 고려해운이 그의 계획대로 착실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2007년부터 고려해운 경영에 나섰는데, 2006년 4520억 원이었던 매출이 2019년엔 1조 8375억 원으로 늘었다. 경쟁사들이 무너지는 와중에 무리수를 두지 않고도 탄탄대로를 걷고 있으니 M&A에 나서자는 의견은 제기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보수 경영으로 일관하는 배경에 부실한 지배구조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정석 회장은 사실 부친 박현규 전 고려해운 사장에 이은 2대째 전문경영인으로 엄밀히 말하면 오너는 아니다. 고려해운 창업자는 고 이학철 고려해운 회장으로, 장남인 이동혁 회장은 32세이던 1985년부터 2004년까지 대표이사직을 맡았다.
하지만 이학철 회장 때 전문경영인이던 박현규 전 사장과 신태범 KCTC 회장이 사돈 관계를 맺으며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의 지분이 43.5%로 오너일가(40.87% 보유)보다 많아진 것. 고려해운의 불확실한 지배력 때문에 섣불리 M&A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평이다.
다만 지배구조와 별개로 애초부터 박정석 회장이 정부 주도의 M&A에 부정적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는 해운업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2018년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출범시켰고, 공사 주도로 해운사 M&A가 진행되고 있다. 장금상선이 흥아해운 컨테이너사업부 인수로 덩치가 커진 것은 맞지만, 그 때문에 중국 조선사에 컨테이너 선박을 발주했을 때 ‘정부 혜택을 받으면서 중국 조선사와 계약하느냐’는 여론의 역풍이 불어 취소하는 등 골칫거리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M&A 효과가 실제로는 불분명하다는 평가도 있다. 때마침 지난해 컨테이너선 초호황이 불어와 규모의 경제 효과를 본 것이지, 불황이었다면 흥아해운은 물론 모체인 장금상선도 위험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운업계 다른 관계자는 “고려해운 박정석 회장은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으면 계속 끌려 다니게 된다고 판단해 M&A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고려해운의 한 관계자는 “현재 중동 등 서비스 구간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인수합병 등을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