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이로써 ‘야구의 신’ SK 김성근 감독과 ‘태양’ 삼성 선동열 감독의 사상 첫 포스트시즌 맞대결이 성사됐다. 시즌 동안 김성근 감독은 “선동열 감독은 참 무서운 사람이야”, “삼성 때문에 90승은 해야 정규시즌 1위를 할 것 같다”, “삼성이 치고 올라오는 힘이 무섭다” 등 유례없이 적장을 칭찬하는 코멘트를 많이 쏟아냈다. 물론 한편으론 “한국시리즈에서 만나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보였다. 이 같은 발언 속에서 공통적으로 엿보이는 사실은, 김성근 감독이 어쨌든 선동열 감독을 의식한다는 점이다.
실제 플레이오프 동안 선동열 감독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승리를 이끌어내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단기전이 아니라 마치 정규시즌을 치르는 듯 여유를 보이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빠른 판단으로 승부를 뒤엎는 모습을 보여줬다. 때문에 삼성의 승리 이전에 선 감독의 스타일이 잘 반영된 플레이오프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지도자로서 선 감독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만한 경기내용이기도 했다.
감독마다 독특한 취향과 개성이 있음은 물론이다. 선동열 감독의 스타일?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감독으로 데뷔한 뒤 6년 동안 세 번째 한국시리즈를 치를 정도로 능력을 보인 선 감독은 과연 어떤 스타일로 규정될 수 있을까. 야구장의 뜨거운 열기에서 잠시 비켜나 선 감독의 평소 스타일에 대해 짚어봤다.
#무뚝뚝함 속에 묻어나는 잔정
TV 중계화면을 통해 선동열 감독을 접하는 대다수 야구팬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 “선 감독은 무뚝뚝해보인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분명 평상시 선 감독은 말수가 적은 편이며 쓸데없는 농담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무뚝뚝하기만 한 지도자는 아니다.
지난 여름, 삼성은 인천 문학구장 원정 중이었다. 선동열 감독은 원정 감독실에서 기자를 보더니 “이거 참 난처해 죽겠네”라고 말을 꺼냈다. 대체 뭐가 난처했던 것일까. 투수 구자운 때문이었다. 그때로부터 열흘 전쯤, 삼성은 주력 투수 가운데 부상자가 생기자 2군에 있던 구자운을 1군 엔트리에 등록시켰다. 프로야구에서 ‘스팟 스타터’라고 불리는 임시 선발로 기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선 감독은 “비는 오지, 팀은 자꾸 이기지, 그러니 구자운이 1군에서 한 번도 던지지 못하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갈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잠시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자. 삼성은 6월말부터 파죽의 12연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결국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던 시기였다. 팀이 계속 승리하는 상황에서 비가 간간이 내린 덕분에, 삼성은 기존 선발 로테이션에 구멍이 나지 않은 상태로 끌고 갈 수 있었다. 그러니 구자운의 등판 기회가 자꾸 늦춰진 것이다. 선발 예고까지 된 적도 있지만, 공교롭게도 그때 비가 내렸다. 팀은 잘나가는데 구자운은 운이 없었던 셈이다. 그런 와중에 아팠던 투수들의 복귀 시점이 다가왔다. 구자운은 곧 2군에 내려가기로 돼있었다.
얼핏 생각하면 ‘그게 뭐 대수냐’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선수 사기 문제다. 1군에 올라왔는데 단 한 번도 던지지 못하고 내려가면 그 투수는 상처를 받게 된다. 선 감독은 그걸 걱정하며 “차라리 많이 지는 경기라도 나오면 마운드에 올릴 텐데 그런 상황도 나오지 않으니 참 미치겠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구자운은 결국 지는 경기에서 3이닝을 던질 수 있었다. 7월8일 SK전, 삼성의 12연승이 깨지던 날이었다. 구자운은 곧바로 2군으로 내려갔다.
경기 내용을 살펴보면 선 감독이 일정 부분 구자운을 배려한 측면이 있음이 발견된다. 12연승 중이던 삼성은 그날 SK를 상대로 5회까지 0-4로 지고 있었다. 이 정도 스코어라면 게임을 포기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때문에 불펜 추격조 투입도 고려해볼 만했다. 하지만 선 감독은 전문 불펜투수가 아닌 구자운을 마운드에 올렸다. 결국 구자운이 2점을 더 내줘 0-6으로 삼성이 패했다. 평소 연승에 지나친 미련을 두지 않는 선동열 감독은, 경기를 딱 절반 정도 치른 뒤 리드당하자 곧바로 구자운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비록 3이닝이지만 어쨌든 구자운은 1군에서 던진 뒤 엔트리에서 말소될 수 있었다. 올해 구자운의 유일한 정규시즌 기록이다. 공교롭게도 그 구자운이 이번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극적으로 포함됐다. 2군 스케줄 막판에 3경기에서 호투한 덕분이다.
#선수에게도 의리 지킨다
선동열 감독은 본인에게 도움을 준 사람을 절대 잊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한참 어린 선수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사항이다.
올 정규시즌 동안 선 감독은 강봉규 기용 문제로 홈팬들의 질타를 많이 받았다. 지난해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하며 데뷔 후 10년 만에 기량이 만개한 강봉규는 올 정규시즌 초반부터 부진에 시달렸다. 2군에도 다녀왔다. 본래 불특정 다수의 팬들은 성적에 쉽게 반응한다. 과거 좋은 활약을 보였던 선수라도 부진이 계속되면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강봉규가 그런 케이스였다. 될 듯 말 듯 하면서 타격 페이스가 올라오지 않자 팬들은 부진한 강봉규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선동열 감독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을 선 감독도 알고 있었다. 사석에서 만났던 선 감독은 “나도 그런 분위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신경 안 쓴다. 인터넷에서 팬들이 비난하는 것까지 신경 쓰면 어떻게 감독을 하겠나”라며 웃고 말았다. 선 감독이 강봉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그를 계속 기용한 건 일종의 의리 때문이다. 지난해였다. 삼성은 거의 13년 만에 최악의 성적을 낼 위기에 처했다. 주전 대부분이 크고 작은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그럴 때 의외로 좋은 성적을 꾸준히 냈던 선수가 바로 강봉규였다. 팀이 어려울 때 버팀목이 돼줬던 선수를 쉽게 버리지 않겠다는 게 선 감독의 생각이다.
강봉규와는 조금 다른 케이스지만 투수 중에선 오승환 윤성환 등이 선 감독으로부터 믿음을 받아왔다. 마무리투수 오승환은 2005년과 2006년에 삼성이 잇달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때 큰 역할을 했다. 윤성환도 지난해 공동다승왕을 차지하며 선 감독의 전력 고민을 많이 덜어줬던 투수다. 선 감독은 이런 투수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기회를 주려하며, 한편으론 조금 더 많은 인내심을 보여주곤 했다. 예를 들어 선발투수가 아웃카운트 2개만 더 잡으면 승리투수가 될 수 있는 상황을 그려보자. 그런데 자꾸 안타를 맞고 있다. 사실은 교체 타이밍이다. 그런데 평소 성실히 훈련하는 투수라면, 선 감독은 교체 타이밍을 두 박자 정도 늦추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든 승리를 챙겨주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 13일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삼성이 연장혈투 끝에 두산을 꺾었다. 선동열 감독이 선수들과 하이파이브하며 승리를 만끽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때 상당히 논란이 됐던 사건이 있었다. 잠실구장에서 열린 3차전이었다. 삼성은 천신만고 끝에 연장 11회 초 2점을 뽑으면서 8-6으로 앞서나갔다. 분위기상 삼성이 이기는 흐름이었다. 그런데 투수교체의 대가인 선동열 감독이 연장 11회 말 마지막 수비를 앞두고 투수교체를 하지 않았다. 불펜에는 올 시즌 승률왕인 차우찬이 완전히 몸을 풀어놓은 상태였다.
선 감독은 불펜을 쳐다보지 않았다. 연장 10회에 나와 1이닝을 마친 2년차 투수 정인욱을 11회에도 밀어붙였다. 정인욱은 당시 극도의 긴장감 때문에 제 컨디션을 잃어버렸다. 동점 상황이었던 10회에는 척척 막아냈지만 일단 팀이 리드 점수를 뽑자 경험 없는 저연차 투수의 특징을 드러내고 말았다. 안타와 볼넷을 마구 내준 정인욱은 결국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상태에서 동점 적시타와 역전 적시타까지 허용하며 결국 패전투수가 됐다. 그때만 해도 삼성에겐 치명적인 패배였다. 그 후 삼성 홈팬들은 차우찬을 교체투입하지 않은 선 감독을 엄청나게 비난했다. 심지어 “일부러 져주려는 것 아니었나”라는 비난까지 인터넷에 등장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선 감독은 그토록 중요한 순간에도 정인욱이란 신인투수의 성장을 위해 단기전의 1승을 버릴 수도 있다는 여유를 보인 것이다. 시즌 중반부터 선 감독은 정인욱에 대해 큰 기대를 내비쳤다. “결국엔 정인욱을 차세대 선발투수로 키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때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 그 상황에서 정인욱이 끝까지 막아내 승리투수가 된다면 더욱 좋은 일이고, 설령 난타당해 팀이 진다해도 뭔가 배우는 게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선 감독은 그 후에도 “정인욱이 많은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어차피 플레이오프 승부가 5차전까지 갈 것이라는 계산을 세워놓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정인욱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끔찍하지만 좋은 경험을 했고, 삼성은 역전극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평소 선 감독은 “올해 두 번째 5년짜리 계약의 첫 해다. 5년 계약을 두 번이나 한 나는 참 행복한 편이다. 그러니 장기적으로 팀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올 정규시즌서 팀을 2위에 올려놓았지만, 현실적으로 팀 전력이 최상은 아니라는 얘기도 자주 했다. 선 감독은 “궁극적으로 우리는 2~3년 후에 전력이 극대화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그걸 만들어가는 과정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 같은 여유가 있기 때문에, 플레이오프에서 정인욱을 끝까지 마운드에 남기는 뚝심도 나온 것이다. 8개 구단 사령탑 가운데 가장 어리지만, 한편으론 뚝심을 발휘할 수 있을 만한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는 걸 선 감독 본인이 자주 언급한다. 물론 그걸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건 선 감독의 과단성 덕분일 것이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기자
한방에 골초 졸업한 ‘독종’
선동열 감독은 한 번 안한다면 안하는 스타일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담배다. 4년여 지난 일화가 있다.
선 감독은 본래 지독한 골초였다고 스스로 밝혔다. 대학 초년병 시절 배운 담배를 20년간 피웠는데 나중엔 ‘체인 스모커’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2006년 3월에 열린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담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에서 열린 2라운드 도중이었다. 미국 야구장은, 특히 서부 지역의 야구장들은 흡연자에게 관대하지 않다. 대부분 야구장이, 담배를 피우려면 한참을 걸어 구장 밖으로 나가야하는 구조다. 선 감독은 “담배 한 번 피려면 한참을 돌고 돌아 나가야 하는데 신경질이 날 정도였다. 이참에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었다.
게다가 WBC 동안 스트레스 때문인지 선 감독은 찌릿찌릿한 가슴 통증이 생겨 다소 걱정을 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곧바로 검진을 받았고 결국 의사들의 ‘전가의 보도’인 “술 담배를 멀리 하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냥 의사 얘기만 들었다면 선 감독은 담배를 끊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WBC 때 담배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났다. 결론은 금연.
보통 흡연가들이 담배를 끊으려면 주변 동료들과 내기까지 거는 등 시련을 겪는다. 반면 선 감독은 정말 딱 한 번의 결정으로 완전히 담배를 끊었다. 요즘도 코칭스태프 회식 자리에서 선 감독은 “담배 피우실 분들은 편하게 피우세요”라고 배려하면서도 본인은 절대 담배에 손을 대지 않는다.
담배를 끊은 뒤 한동안 신경을 껐던 개인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그때부터 대구구장에선 홈 게임 때 선수들보다 먼저 나와 외야쪽을 빠른 걸음으로 걷는 선 감독의 모습이 포착되곤 했다. 한때 100㎏ 넘게 체중이 나갔던 선 감독은 요즘은 90㎏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한 번 결심하면 누구보다 실행이 빠른 스타일이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일화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겐 “담배야 건강할 때 많이 피우세요. 건강하니까 담배도 몸에서 받는 거니까. 그런데 운동은 꼭 좀 하세요”라며 은근히 뼈있는 농담을 하곤 한다. 한편으론 입담도 좋은 선동열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