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홋스퍼의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 손흥민 특유의 환한 미소도 자주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사진=토트넘 홋스퍼 페이스북
그사이 토트넘의 순위는 9위까지 떨어졌다. 우승권은 물론 유럽대항전 진출권과도 멀어졌다. 한 단계 위인 8위 아스톤빌라가 1경기를 덜 치렀기에 간격은 더욱 벌어질 수 있다.
팀의 부진과 함께 선수들의 폼도 떨어지고 있다. 손흥민은 시즌 초반 토트넘과 함께 쾌조의 컨디션을 보였다. 리그에서 3경기 이상 골 침묵이 없었다. 모하메드 살라, 제이미 바디 등 내로라하는 골잡이들을 제치고 리그 득점 순위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올 들어 그 기세를 잃었다. 지난 2개월간 리그에서 넣은 골은 겨우 2골이다. 시즌 초반에 비해 자신감이 떨어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손흥민뿐 아니다. 모든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부진하다. 흔들리는 수비는 아킬레스건이다. 최근 5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한 경기는 단 1경기뿐이다. 핵심 중앙수비수 토비 알더베이럴트는 30대 중반으로 들어서며 예전의 단단함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 주전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많다.
손흥민, 해리 케인과 함께 팀 공격을 이끌어야 할 루카스 모우라의 공격력도 무뎌진 지 오래다. 2년 전 팀의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우던 날카로움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시즌 리그에서 골은 고작 2골이다.
이외에도 이번 시즌 많은 기대를 받으며 영입된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 맷 도허티, 세르히오 레길론, 가레스 베일 모두 부진하다. 케인의 백업 공격수 카를로스 비니시우스는 경기장에서 모습을 보기도 어려울 정도다.
#부진의 이유는
토트넘은 불과 2시즌 전 유럽 최강을 가리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던 팀이다. 2019-2020시즌 부진을 겪는 듯했으나 조세 무리뉴 감독 부임 이후 반등에 성공, 6위에 오르며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따냈다. 이번 시즌 초반에는 우승권에서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던 토트넘이 왜 단기간에 중위권으로 내려앉게 됐을까.
이상윤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무리뉴 감독의 지도력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선수들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너무 내려 않는 경기, 안정만 추구하는 경기를 하고 있다. 토트넘 선수들 각자 나름대로 능력이 있는 선수들이다. 지금 성적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해설위원은 “감독은 자신의 전술이 통하지 않으면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일관된 모습만 보이고 있다. 예측이 쉬운 팀이다. 적으로선 토트넘을 상대하기가 쉬울 것”이라고도 했다. ‘플랜B’가 없다는 지적이다. 토트넘은 시즌 초반 최전방 공격수 케인을 내리고 손흥민을 전방에 머무르게 하는 ‘변칙 전술’로 재미를 봤다. 수비진에 웅크리다 둘의 콤비 플레이로 골을 낚아냈다. 그 결과는 손흥민 득점 1위, 케인 도움 1위였다.
토트넘이 이 같은 방식으로 승점을 따내자 프리미어리그 팀들은 대응 방식을 내놨다. 후방에 손흥민을 견제하는 수비수를 뒀고 미드필드 지역에서 케인이 공을 잡으면 강하게 압박했다. 자연스레 케인으로부터 나오는 패스의 정확도가 떨어졌고 손흥민의 골 행진도 멈췄다. 날카롭던 토트넘의 역습도 상대의 대비 속에 무뎌져갔다.
토트넘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무리뉴 감독의 지도력이 꼽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반등의 여지가 없다
토트넘의 상황이 더욱 절망적인 이유는 반전을 기대해 볼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유독 이번 시즌 어려움을 겪고 있는 디펜딩 챔피언 리버풀은 부상 악재가 겹치고 있다. 핵심 선수 다수가 장기 부상에 빠져 팀이 흔들리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부상 선수들이 빠진 기간을 잘 버티면 다시 상승곡선을 그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반면 토트넘에는 이렇다 할 부상 선수가 없다. 가진 전력의 100%를 가동하고 있지만 좀처럼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
부진의 원인을 감독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토트넘은 젊은 재능들이 모인 팀으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2021년이 된 현재 유망주들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기대치를 충족시킨 이는 케인과 손흥민 정도다. 루카스 모우라, 에릭 라멜라, 에릭 다이어 등은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성장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영국 전체에서 가장 주목받은 재능이었던 델레 알리는 되레 ‘실패한 유망주’의 대명사가 됐다. 토트넘은 우승을 노리던 젊은 팀에서 이제 리빌딩을 고려해야 하는 팀으로 처지가 바뀌었다.
감독 교체도 기대하기 어렵다. 무리뉴 감독 부임 이후 만 1년을 갓 넘긴 시점이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감독인 만큼 높은 임금을 받고 있고 경질 시 위약금도 크다. 위약금만 4000만 유로(540억 원)로 알려져 있다. 토트넘은 큰 금액을 지출하기를 꺼려하는 ‘짠돌이’ 성향을 갖고 있다. 코로나19로 유럽축구 구단들이 재정난을 겪고 있는 상황도 절망을 더하고 있다.
감독 교체의 명분도 부족하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 체제하에 성장을 이뤄낸 토트넘은 우승 트로피를 얻으려 무리뉴를 데려오는 도전을 택했다. 리그 성적은 9위로 떨어졌지만 리그컵은 결승에 진출했고 유로파리그 역시 토너먼트에서 살아남았다. 우승 가능성을 남겨둔 상황에서 섣불리 감독을 잘라내기도 어렵다.
토트넘이 급격히 흔들리면서 손흥민의 이적설이 다시 짙어지고 있다. 손흥민은 2015년 입단 이후 2018년 한 차례 재계약을 했다. 오는 2023년 6월 계약기간이 만료된다. 지난해부터 또 한 번의 재계약 추진 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협상이 보류 중이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최근 이탈리아 명문 유벤투스와 손흥민이 연결되고 있다. 그러나 1000억 원 이상의 고액 이적료가 책정되는 상황에서 유벤투스가 이를 부담할 능력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적 시장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토트넘과 손흥민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눈길이 쏠린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