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경기도 제공
[일요신문] 기본소득이 연일 화제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주요 정책인 까닭이다. 이 지사가 선호도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자 여야를 가리지 않고 기본소득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다.
같은 당에선 이낙연 대표가 “알래스카 빼고는 그것(기본소득)을 하는 곳이 없다”고 했고 정세균 총리는 “지구상에 보편적 기본소득 제도를 성공적으로 시행한 나라가 없다”며 거들었다. 기본소득 뒤 이 지사를 겨냥한 거라는 해석이 나온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자산과 소득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균등하게 지급하는 것은 정의롭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이 지사가 중장기 목표로 제시하는 월 50만 원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약 371조 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50만 원은 생계비에 터무니없이 부족한데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증세가 필요하다”며 날을 세웠다.
당 밖에선 국민의 힘 김세연 전 의원이 “한 달에 4만 1600원 지급을 기본소득이라 부르는 것은 명칭과 본질의 괴리가 너무 커서 적절치 않다. 내년 대선 일정에 맞춰 무리하게 내놓은 탓이 아닐까 짐작한다. 기본소득 최초 시행이라는 성과만 가져가려는 전략이라면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저격했다.
이 중 다른 나라 사례를 들었을 뿐인 이낙연 대표, 정세균 총리의 주장을 제외하고 임종석 전 실장, 김세연 전 의원이 지적한 예산과 증세 문제는 차후 반복적으로 제기될 공산이 크다. 그리고 기본소득이 단순 선거를 위한 정치적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현실적인 예산 추계가 따라야 한다는 것도 상식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얼마가 들까. 그리고 반대론자들의 말처럼 정말 서민 주머니에서 꺼내 ‘줬다 뺏는’ 조삼모사식 정책에 불과한 것일까.
이재명 지사는 몇 년 전 2만 5000원부터 5만 원, 10만 원씩 차츰 늘려 1인 당 월 50만 원을 지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최종적으로 월 50만 원, 4인 가족 기준 월 2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임종석 전 실장의 말대로 매년 300조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지난해 국가 예산이 639조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300조 원은 결코 만만치 않은 액수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 재원 확보를 위해 큰 틀에서 조세 개혁과 증세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던 지난 정부나 복지 확대를 운운하며 세금 얘기는 하지 않는 정치인과는 달랐다.
2017년에는 국가 예산 중 토목사업 지원금과 대기업 연구개발 지원금, 토지세와 법인세 인상, 대기업 증세를 주장했고 2020년에는 이산화탄소 배출에 과세하는 탄소세, 인터넷 기업에 대한 디지털세, 사람 대신 생산을 담당하는 산업 로봇에 과세하는 로봇세 그리고 국토보유세를 언급했다. 당시 얼마를 거둘 것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지만 이 지사의 대권 도전이 초읽기에 들어감에 따라 재원 마련 방법도 가시화되고 있다.
2월 23일 국회기본소득연구포럼에서 유종성 가천대 교수는 “월 30만~50만 원의 기본소득제 실시를 위해 GDP 9~15%의 재원이 필요하다. GDP 5%는 재정지출구조 개혁으로 복지지출 비중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늘리고, 추가로 GDP 10%는 보편 증세와 부자 증세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명목 GDP는 약 1900조 원으로 15%면 380조 원가량이 된다.
유 교수는 소득세의 비과세 감면 정비, 기본소득세‧사회보장세 신설(모든 소득 원천에 5% 정률 과세), 토지보유세 신설 및 공시가격의 1% 정률 과세, 종부세를 금융자산을 포함한 부유세로 대체, 상속증여세를 생애 누적 수증세로 개편, 탄소세 배당과 연계한 탄소세 도입 등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제시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토지(국토)보유세다. 이재명 지사는 지난해 “개인 토지 소유자 상위 10%가 전체 개인 토지의 64.7%를, 법인 토지 소유자 상위 1%가 전체 법인 토지의 75.2%를 소유할 정도(2014년 기준)로 토지불평등이 심각하다”며 “국토보유세를 도입하고 증세분 전액을 지역화폐로 전 국민에게 균등 환급하자”고 했다. 국토보유세는 증세임은 분명하지만 명백히 토지를 기준으로 한 증세라는 점에서 서민들에게 겁을 주던 증세 프레임에서 벗어나 있다.
이 지사의 싱크탱크인 경기연구원의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도입과 세제개편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국토보유세의 세율을 부동산 공시가격의 0.5%부터 4%까지 범위로 정하고 각 범위에 따라 지급할 수 있는 액수를 추산했다. 가령 0.5%일 경우 1인당 지급액은 25만 원 정도며 4%의 경우 인당 328만 원을 지급할 수 있다.
통계청의 100분위 통계를 기준으로 하면 토지를 소유한 세대 중 국토보유세 부담이 없는 순 수혜 세대가 1~77분위 세대에 이른다. 무(無)토지 세대와 합치면 전체 세대의 85.9%가 순 수혜 세대가 된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토지를 많이 보유한 78~100분위가 순 부담 세대가 되고 이들이 전체 세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1%다. 즉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부유층이 국토보유세의 주된 과세 대상인 셈이다.
국토보유세율을 1%로 정하는 경우 1억 원 주택만 소유한 경우 245만 원의 순 수혜액이, 5억 원의 주택 보유 세대는 137만 원의 순 수혜액이, 10억 원의 주택소유세대에는 7.7만 원의 순 수혜액이 발생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기본소득을 주려면 서민 주머니 털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를 부수는 연구 결과다.
국토보유세는 투기와 정책 실패로 날뛰는 부동산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담으려던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와 결을 같이 한다는 해석도 있다. 최근 부동산 폭등으로 평생 일해도 집 한 채 가질수 없는 상황에 놓인 청년들의 지지를 기대할 수도 있다. 다만 이 지사가 보수, 친기업 언론의 ‘공산주의’ 프레임을 뚫고 국토보유세를 전면에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이 지사는 그동안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환수해 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그건 대권이 눈앞에 보이지 않던 시절의 얘기다. 그가 변함 없이 부와 토지와 권력을 소유한 재벌, 대기업과 법인, 부유층을 상대로 싸움을 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