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부지방법원. 사진=고성준 기자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5단독(부장판사 박광우)는 19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으로 기소된 A 씨(52)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A 씨는 지난해 2월 서울 은평구의 한 다세대주택가 앞 도로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068% 상태에서 약 1m를 운전한 혐의로 기소됐다.
A 씨가 운전대를 잡아야 했던 사연은 이랬다. 당시 A 씨는 대리운전기사 B 씨를 불러 자택에 도착했다. 문제는 A 씨가 거주하는 다세대주택가의 주차공간이 넉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당 도로는 편도 1차로의 일방통행도로로 그 폭이 매우 좁아 다른 차량의 진출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벽에 밀착해 주차하여야만 했다.
하지만 대리운전기사 B 씨는 A 씨의 차를 이미 주차되어 있는 한 택시 앞에 세운 채 대리비 2만 원을 수령하고 떠나버렸다. A 씨는 할 수 없이 자신의 차량을 1m 가량 직접 이동시켰다가 이웃의 신고로 경찰에 적발됐다.
A 씨는 자신의 운전행위가 긴급피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대리운전기사 B 씨는 A 씨가 기소되자 “자신이 주차를 잘 했어야 했다”며 선처를 부탁하는 사실확인서를 제출했다. 형법 22조 1항은 ‘자기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긴급피난)에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벌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A 씨의 운전행위를 긴급피난에 해당한다고 봤다. 박 부장판사는 “피고인 A 씨가 거주하는 다세대주택에 주차를 하는 경우 다른 차량의 진출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벽에 밀착하여야함에도 불구하고 B 씨는 도로 진입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차를 세운 채 떠났다. 그러나 A 씨에게는 지인이나 일행이 없었고 새로운 대리운전기사를 부르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당시 운전을 부탁할 사람이 없었고 대리운전기사를 기다리기에는 당장 교통방해와 사고발생의 위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A 씨는 위 택시의 도로 진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위치로 주차하기 위해 약 1m 가량 운전하였을 뿐 더 이상 운전할 의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 운전행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어서 형법 제22조 제1항의 긴급피난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실제로 A 씨와 같이 대리운전기사를 부른 후에도 자택 인근에서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는 사례는 적지 않다. 대부분 비좁은 도로에서 진로를 확보하기 위해 차량이동이 불가피했던 경우다. 지난해 12월에도 대리운전기사와 말다툼을 벌인 후 기사가 좁은 도로에 차량을 버리고 떠나자 차를 주차장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운전대를 잡은 운전자의 행위가 긴급피난으로 인정된 바 있다.
한편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주차실수를 바로 잡기 위해 1m 가량 음주운전을 했다가 기소 돼 약식명령이 내려진 사건”이라며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는 한 가구에 2~3대씩 주차를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다가구, 다세대주택처럼 주차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곳에 사는 이들은 퇴근 후 반주를 하다가도 차를 빼주러 가게 된다. 누구나 음주운전의 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