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특위 3차 회의에 참석한 이낙연 대표(가운데)와 박주민 의원(왼쪽), 윤호중 의원(오른쪽).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은 올해 초 검경수사권 조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부터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 분리하는, 이른바 ‘검찰개혁 시즌2’를 추진했다. 검찰에 남은 6개 분야 직접 수사권까지 완전히 떼어내 제3기관(가칭 수사청)에 넘기는 방안이다.
2단계 검찰개혁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내 검찰개혁특위 수사·기소분리TF가 준비하고 있다. 수사·기소분리TF 팀장을 맡고 있는 박주민 의원은 법안을 2월 중 발의하겠다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3월에 이낙연 대표 당대표직 사임, 4월 재보궐 선거, 5월 전당대회 및 원내대표 경선, 하반기 차기 대선 국면 돌입 등 향후 정치일정을 고려해 검찰개혁이 동력을 얻으려면 2월이 마지막 적기라는 판단에서였다.
김용민 의원이 지난해 말 공소청법 제정안과 검찰청법 폐지안을, 황운하 의원이 2월 초 중대범죄수사청 설치·운영법 제정안을 발의할 때까지만 해도 일정대로 진행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2단계 검찰개혁이 ‘속도조절’ 논란에 휩싸였다. 실제 최근 당내 분위기는 입법 시기를 다소 늦춘 것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와 수사·기소분리TF에서도 법안 발의 목표를 2월에서 3월로 잡았다. 3월 발의해 6월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속도조절을 당부한 것 아니냐는 말이 들렸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2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무부 업무보고에 출석, “문재인 대통령이 제게 주신 말씀은 크게 두 가지”라며 “올해 시행된 수사권 개혁이 안착하고, 두 번째로는 범죄수사 대응능력, 반부패 수사 역량이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차원의 말씀”이라고 말했다. ‘검찰개혁에 원칙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성급하게 추진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청와대가 우려한다’는 취지로 읽혔다.
논란이 일자 정부와 여당은 진화에 나섰다. 박범계 장관은 2월 24일 대전보호관찰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대통령도 저도 속도조절이란 표현을 쓴 적이 없다”며 “궁극적으로는 수사·기소가 분리돼야 한다”고 해명했다. 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 역시 “당과 정부, 청와대가 검찰개혁 방향을 공유하고 있고 이견이 없다”며 “이견이 있는 것처럼 알려진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주민 의원도 2월 2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당이나 수사기소분리TF 차원에서 (속도조절을) 공식이나 비공식적으로 들은 바가 없다”며 “3월 안에 법안을 낸다는 일정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민주당 한 의원은 “검찰개혁은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다.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에 대한 입장은 확고하다”며 “다만 입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행정부가 아니라 여당과 국회가 주도해야 한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잘 아는 의원들이 앞장 서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제동을 걸고 속도조절을 해달라 주문하겠느냐”고 반문했다.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 사진=박은숙 기자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당청 간 이견이 아니라, 이낙연 대표 지도부와 친문 의원들이 주를 이룬 검찰개혁특위 사이에 의견 차이로 법안 발의가 지연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 나온다. 수사·기소분리TF 소속 의원 등에 따르면 TF 차원에서 법률안은 거의 완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기 위해 당 지도부와 조율 중인데, 이 과정에서 이견을 보이며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 의견이 갈리는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법안 내용은 철저히 비밀로 부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TF에 참여한 한 의원 측 관계자는 “법안에 대해서는 TF 소속 의원과 실무진 외에는 자료를 공유하지 않아 TF 의원 보좌진도 그 내용을 모른다. 법안 어느 부분에서 협의가 길어지고 있는지 알 방도가 없다”고 전했다.
다만 민주당 최고위와 TF 관계자의 인터뷰를 보면 법안의 국회 통과 후 유예기간을 얼마로 하느냐를 두고 의견이 갈린 것 아닌가 유추해볼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속도조절 역시 이 연장선상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김종민 최고위원은 2월 25일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민주당의 검찰개혁 과제 추진에 대한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새로운 기구를 설계해야 하니 시행 유예기간은 1년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구 설계과정에서 반부패수사 역량이 위축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주민 의원은 2월 16일 같은 방송 인터뷰에서 ‘유예기간을 통상적인 6개월로 뒀느냐’는 질문에 “길게 유예기간을 두지 말자는 게 특위 차원에서의 의견이다. 내부적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최종 결정은 안 됐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어 2월 24일에는 시행시기를 얼마나 유예할지에 대해 “특위가 법안을 만든다고 해서 그 법안이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특위 차원에서 안을 만들면 당내 의원들과 지도부 의견을 듣고, 부처 간 조율 협의를 거치게 된다”며 “TF 차원에서 만들어진 내용이 그대로 유지될지 변화될지 예상하기 어렵다. 정해지지 않은 부분이 있어 지금 확인해 드리기 어렵다”고 다시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관계자는 “2단계 검찰개혁 법안의 유예기간을 6개월로 해 오는 6월에 국회를 통과하면, 수사청 신설 및 법안 시행이 대선 기간에 맞물린다. 검찰개혁 안착 문제가 대선 국면에 이슈로 다시 떠오를 수 있다. 대선을 준비하는 이낙연 대표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수사·기소 분리 목표에 대한 이견이 아니라, 추진 시점 조율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민주당은 당 지도부와 특위 사이에 입장 차가 없다고 반박했다. 수사·기소분리TF에 참석하는 한 의원은 “당 지도부와는 전혀 이견이 없다. 다 정리됐다”며 “다만 워낙 중요한 법안이다 보니 당내 의견수렴 절차인 의원총회, 외부 의견수렴 절차인 토론회 등 절차를 더 거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발의가 조금 늦어지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시행유예기간에 대해서도 “다수의견으로 1년으로 정리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낙연 대표가 검찰개혁에 이견을 보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반박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말 안정적 국정운영에 비중을 두고 2단계 검찰개혁 입법에 속도조절을 당부했다. 하지만 여당은 개혁 이미지를 통해 정권재창출을 해야 한다”며 “이낙연 대표도 검찰개혁 입법을 밀어붙이지 않으면 민주당 핵심 지지층이 떠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일부에서는 강경파 의원들의 ‘등쌀’에 지도부가 끌려 다닌다고 하는데, 나는 이낙연 대표도 같은 입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