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란된 것으로 보였던 한국앤컴퍼니그룹의 3세 간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됐다. 경기도 성남시 한국앤컴퍼니그룹 본사. 사진=한국앤컴퍼니그룹 제공
조현식 부회장은 지난 2월 24일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를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제안하는 주주서한을 공개했다. 앞서 지난 5일 한국앤컴퍼니 이사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이 교수를 선임하는 안건을 전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주주제안을 강행했다.
조현식 부회장은 주주제안과 함께 대표이사직도 내려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생 조현범 사장에게 경영을 맡기고 물러나더라도 이 교수로 하여금 경영을 제대로 감시하도록 하는 게 회사와 주주에 이득이 된다는 취지였다. 현재 한국앤컴퍼니는 조현식·조현범 각자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앤컴퍼니 계열사 한국타이어테크놀러지에는 조현식 부회장과 장녀 조희경 한국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함께 주주제안을 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후보로 이혜웅 비알비코리아 어드바이저스㈜ 대표이사를 추천했다. 조희경 이사장은 대리인을 통해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현재 건강한 경영권 승계나 투명한 기업 경영에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며 “이런 시기에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올바른 견제와 회사를 위한 건강한 정책 조언과 자문을 지원할 수 있는 외부 전문가의 역량이 필요하다”고 조현식 부회장과 함께 주주제안을 한 이유를 밝혔다.
한국앤컴퍼니 남매들은 지난해 6월 조현범 사장이 시간외 대량매매로 조양래 회장의 몫 23.59%를 전부 인수해 그룹 지분을 42.90%로 늘리자 갈등을 벌여왔다. 지분이 옮겨진 지 한 달 뒤인 지난해 7월 장녀 조희경 이사장이 “아버지가 건강한 상태에서 의사결정을 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며 서울가정법원에 조양래 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하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조현식 부회장도 조양래 회장의 뜻에 반발하는 입장문을 내고, 참가인 자격으로 의견서를 내면서 갈등이 본격화됐다.
2016년 3월 인천시에서 열린 ‘2016 한국타이어 체험행사’에서 인사말을 하는 조현식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올해 조현식 부회장의 대표이사 사임과 조희경 이사장과 함께 한 주주제안 등을 통해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지주사인 한국앤컴퍼니는 조현식 부회장의 주주제안이 공개된 직후 이사회를 열고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선임할 분리 선출 이사(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 김혜경 전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을 추천했다. 계열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도 이사회를 열고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후보로 이미라 제너럴일렉트릭(GE) 한국 인사 총괄을 내세웠다. 장남·장녀가 제안한 후보 대신 동생 조현범 사장 측이 별도로 후보를 내세운 것이다.
한국앤컴퍼니 측은 “회사와 사전 협의를 통해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대표이사이자 이사회 의장인 분이 주주제안을 하고 보도자료를 회사가 아닌 변호사를 통해 배포한 것은 매우 당황스럽다”며 “이사회를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이사회에서 제안한 사외이사 선임안에 대항해 별도의 사외이사 선임안을 제안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공식 입장을 냈다.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대표이사가 공개적으로 밝힌 주주제안에 대해 조현범 사장 측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셈이다.
다만 조현식 부회장의 요구사항은 주총이 열리기 6주 전인 지난 2월 초 제출한 것이어서 안건 채택 여부와 관계없이 오는 3월 말 열릴 주총에서 다뤄질 전망이다. 주주제안제도에 따르면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3 이상 주식을 가진 주주가 6주전 주주제안을 하면 주총 안건으로 상정된다. 조현식 부회장과 조희경 이사장 등이 제안한 이사 선임 건을 두고 남매간 ‘표 대결’이 불가피해졌다.
한국앤컴퍼니 지분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조현범 사장이 42.90%를 보유하고 있으며, 조현식 대표가 19.32%, 차녀 조희원 씨가 10.82%, 조희경 이사장이 0.83%을 가지고 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한국앤컴퍼니가 최대주주(30.67%)다. 조양래 회장(5.67%), 조희경 이사장(2.72%), 조현범 사장(2.07%), 조희원 씨(0.71%), 조현식 대표(0.65%) 등의 순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조현식 부회장이 현재 맡은 그룹 부회장과 이사회 의장직 유지 및 보유 지분 정리 여부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고 있어, 재계 안팎에서는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의 씨앗이 남아 있다고 관측한다. 주총 표대결과 함께 조양래 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심판이 진행 중인 것도 남매 간 경영권 분쟁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