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균주 도용을 둘러싼 메디톡스와의 미국 내 분쟁이 일단락되면서 대웅제약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웅제약 건물 전경. 사진=일요신문DB
#미국 소송전 일단락…손익계산서는?
메디톡스는 최근 대웅 나보타(미국명 주보) 판매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 등 모든 지적재산권 소송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미국 엘러간(현 애브비), 에볼루스와 3자 간 합의 계약을 체결했다. 3자 합의를 통해 메디톡스와 엘러간은 에볼루스가 나보타의 미국 내 판권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합의금 3500만 달러(약 380억 원)와 나보타 매출 일부를 로열티로 받는다. 또 에볼루스가 메디톡스에 자사 신주 676만 2652주(16.7%)를 부여하면서, 메디톡스는 에볼루스의 2대 주주가 됐다.
앞서 메디톡스와 앨러간은 2019년 대웅제약과 에볼루스를 상대로 자사의 보톡스 균주를 도용해 제조한 나보타 제품의 미국 내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ITC는 지난해 12월 최종판결에서 대웅제약의 나보타가 관세법 337조를 위반한 제품이라고 보고 21개월간 미국 내 수입 및 판매 금지 명령을 내렸다. 미국 관세법 337조는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등의 침해와 관련된 불공정 무역관행을 다루는 제재 규정이다.
다만 보툴리눔 균주가 영업비밀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예비판결에선 10년이었던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에 대한 수입금지 기간이 21개월로 단축됐다. 이 조치도 대웅제약이 ITC 결정에 불복하며 연방순회항소법원에 신청한 수입금지 명령 집행정지 관련 긴급 임시가처분 신청이 빠르게 인용되면서, 결국 나보타의 판매 공백은 없었다. 나보타 판매 금지 기간이 예비판결 때보다 짧아졌고, 판결 결과 메디톡스가 얻은 실익도 없어 시장에서는 메디톡스가 ‘반쪽 승리’를 얻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3자 합의로 대웅제약과 메디톡스는 ITC 위원회 소송이 제기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대웅제약은 미국 내 나보타 사업 재개가 가능해져 사업 리스크를 해소했고, 메디톡스는 에볼루스의 나보타 매출에 대한 로열티 수익을 얻게 됐다는 점에서 두 회사 모두 실리를 챙겼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대웅제약은 합의에서 빠지면서 로열티 지급 의무에서 제외됐고, 나보타 판매 재개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최종 승자라는 의견도 있다.
한 증권사 제약담당 연구원 “대웅제약은 수익성 높은 나보타의 미국 출시가 가능해졌고, 메디톡스는 국내 주요 제품들의 품목허가 취소로 우리나라에서는 성장이 힘들고 실적 악화가 불가피한데 에볼루스로부터 합의금과 로열티를 받으며 재무 개선이 가능해졌다”며 “에볼루스도 나보타 제품 하나로 기업공개(IPO·상장)를 했는데 공백 없이 판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라고 분석했다.
이혜린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2월 22일 발표한 ‘중장기 위너는 나보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메디톡스가 받을 합의금 규모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 합의금과 로열티로 현금 흐름 악화에 대응하고 미국 소송비용은 아낄 수 있게 됐으나 미국 톡신 시장 선점 지위 회복엔 실패한 것”이라며 “오히려 이번 합의를 통해 대웅제약은 미국 소송비용을 아끼면서 나보타의 21개월간 미국 내 수입금지 조치가 해제돼 즉시 판매 가능해졌다. 상당 기간 미국 저가형 보톡스 시장 내 선점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에볼루스와 대웅제약 펀더멘탈에 호재성 이슈”라고 평가했다.
보톡스 균주 도용을 둘러싼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 미국 내 분쟁이 일단락됐지만 국내 소송전은 지속된다는 점에서 양사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메디톡스 빌딩(왼쪽)과 대웅제약 본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대웅의 히든카드 CDMO, 새 성장동력 될까
이 가운데 대웅제약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첨단바이오의약품 제조업 허가를 받아 CDMO 사업에 진출하면서 관심이 쏠린다. CDMO는 타사 제품의 위탁생산(CMO)에 더해 개발까지 함께하는 사업으로, 대웅제약은 이번 허가를 기반으로 세포치료제를 포함한 첨단 바이오 의약품 제조와 개발부터 품질시험·인허가 지원·보관 및 배송·판매까지 아우르는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CDMO는 개발도 함께해 CMO 수주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이 외국기업과의 계약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수준이 올라오다보니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서 CDMO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제약업계 다른 관계자는 “대웅제약의 줄기세포 플랫폼 ‘DW-MSC’는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개발돼 줄기세포주의 상업화와 확산 실현이 가능하다”며 “CDMO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모두 국내 소송은 계속 진행한다는 방침이어서 균주 도용을 둘러싼 분쟁이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메디톡스는 최근 3자 합의 사실을 밝히며 “이번 합의는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와 전체 제조공정 기술 도용 혐의를 밝혀내고, 미국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다고 판결한 ITC 최종 결정에 관한 것으로 대웅제약은 이번 합의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또한 본 합의는 한국과 타 국가에서의 메디톡스와 대웅 간 법적 권리 및 지위, 조사나 소송 절차에는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대웅제약도 “자사는 합의 당사자가 아니며 사전에 동의한 적이 없다. 에볼루스가 합의에 응한 것은 나보타 21개월 수입 금지명령이 내려진 가운데 영업활동 중단을 피하기 위해 전적으로 경영상 판단 아래 내려진 결정”이라며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에 항소를 제기했고 항소심에서 메디톡스의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질 것을 확신하기에 합의할 이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본 합의에 따라 ITC 결정의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가 없어져 유감”이라며 “메디톡스의 근거 없는 주장에 진실 규명 노력을 지속할 것으로 국내 민∙형사 재판 승소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CDMO 사업도 기존 글로벌 CDMO사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공장 설비와 운영 역량, 제품 개발 기술은 물론 수주 물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글로벌 평판을 쌓아야 하는 사업이어서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고 진입장벽이 높아 단기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제약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대웅이 보톡스 제품에 있어 미국이라는 시장을 확보했지만 이익을 얹으려면 더 나아가 시장 경쟁에서 제품력을 인정받고 자리 잡아야 한다”고 했다. CDMO와 관련해서도 “최근엔 영업·제품력에 더해 한미약품처럼 기술 수출 등 기술력에서 역량을 보여준 회사들이 나왔지만 대웅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합성의약품에서는 인정받았지만 바이오나 기술적 성과는 많지 않다”며 “CDMO는 단기 성공 가능한 사업이 아니다. 이름을 알린 기업들도 10년 이상은 투자했다. 장기간의 그림을 그리며 안목을 가져야 하기에 시장을 읽어낼 수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