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가 인천공항에서 신세계 유니폼을 입기까지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서 있게 됐는지를 밀착 취재했다.
추신수가 KBO리그에 입성한다. 2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추신수는 자가격리 기간을 거쳐 신세계 구단에 합류할 예정이다. 사진=최준필 기자
#신세계 구단과 협상부터 계약까지
SK 와이번스는 이전부터 추신수 영입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추신수가 메이저리그(MLB)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강하다는 걸 알고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러다 신세계그룹이 SK 와이번스를 인수하면서 추신수의 지명권은 신세계그룹으로 넘어갔고 신세계 이마트의 ‘뉴 페이스’를 고민하던 구단은 추신수야 말로 기량과 상품성에서 최고의 카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추신수의 지명권이 신세계에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민경삼 사장과 류선규 단장은 발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접촉한 이는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이자 추신수의 국내 에이전트인 송재우 씨였다. 추신수의 생각이 송재우 씨의 의견이라는 걸 잘 알고 있던 류 단장은 2월 초부터 송재우 씨와 밀접한 접촉을 갖고 조금씩 서로의 의견을 공유해 나갔다.
그럼에도 미국의 추신수는 여전히 메이저리그 잔류를 희망했다. 가장 큰 이유는 가족들이었다. 야구선수로 성장 중인 두 아들과 아빠와 잠시라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는 막내딸, 그리고 남편을 필요로 하는 아내 등 자신의 부재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가족들을 떠올리면 한국행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송재우 씨는 추신수의 마음을 돌리는 방법은 신세계의 진정성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항상 상대방의 진정성과 진심을 중요시하는 선수이기에 송재우 씨는 신세계 구단과 협상해 나가면서 계약 규모보다 얼마나 추신수를 진심으로 원하는지, 필요로 하는지를 살폈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과 미국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들이 늘어난 가운데 2월 셋째 주부터 변화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매일 아내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앞날을 어떻게 결정할지를 놓고 고민했던 추신수에게 아내가 결정적인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하루는 아내가 그런 말을 하더라. 그동안 자신과 아이들 앞에서 야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조금이라도 잘 뛸 수 있을 때 부모님 앞에서 야구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속으로 깜짝 놀랐다. 내가 한국 간다면 무조건 말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내가 나를 설득하면서 한국에서 야구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하원미 씨는 이후 자신이 남편에게 그런 말을 한 배경을 이렇게 풀어냈다.
“남편이 메이저리그에서 16년을 뛰었고, 마이너리그부터 계산하면 20년을 미국에서 야구했는데 남편이 이룬 커리어에 비해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그리고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많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번쯤은 자신을 좋아해주는 팬들 앞에서, 또 부모님 앞에서 야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와 아이들은 남편의, 아빠의 부재를 크게 느낄 수밖에 없겠지만 충분히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라고 봤다.”
추신수의 한국행은 아내의 응원이 뒷받침되면서 급물살을 이뤘다. 그러나 또 다시 브레이크가 걸렸다.
추신수는 신세계 구단 외에도 메이저리그 소속 7, 8팀에서 계약 제안을 해왔다고 밝혔다. 사진=이영미 기자
#갑자기 밀려드는 ‘러브콜’
오프시즌 동안 추신수에게 관심을 기울인 팀은 꽤 많았다. 미디어를 통해 거론된 팀들 대부분이 추신수 에이전트와 접촉해 협상을 벌였다. 내셔널리그 지명타자 제도가 시행되지 않으면서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스프링캠프 시작을 앞두고 7, 8팀에서 크고 작은 계약을 제안했다. 그중 한 팀은 단장이 직접 추신수와 전화 통화하기를 원하며 적극적으로 달려들었고, 또 다른 팀은 우승 가능성이 있는 팀이라 추신수의 마음이 살짝 흔들리기도 했다.
우승 가능성이 있는 팀의 제안에는 아내 하원미 씨도 솔깃해 했지만 계약 규모가 다소 아쉬웠고, 단장이 나선 팀은 계약 규모는 괜찮았지만 당시 한국행을 결정하기 직전이라 추신수로선 또 다시 고민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운명을 믿는 편이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겨울을 보낼 때까지만 해도 한국행은 생각지 못한 카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SK 이름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신세계그룹이 SK를 인수하면서 조금 더 가까이 내 옆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내가 한국으로 가야 할 운명이라면 메이저리그 팀들의 러브콜이 있다고 해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올 시즌 한국에서 뛰어야 할 운명이라면 자연스레 그 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문이 열렸고, 나는 어느 순간 신세계 구단이 보낸 계약서에 사인하고 있었다.”
추신수는 신세계 구단과 ‘밀당’하지 않았다. 민경삼 사장, 류선규 단장이 고심 끝에 만들어냈고, 그룹의 재가가 떨어진 계약 내용을 받고 바로 ‘오케이’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연봉의 10억 원은 무조건 한국 야구에, 또 사회 공헌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추신수가 기부를 떠올린 건 이전에 자신과 했던 약속의 일부였다. 새로운 FA(자유계약)을 맺게 된다면 그중 10억 원(또는 100만 달러)은 내놓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계약한 팀이 한국이든 미국이든 상관하지 않고 미국에서 계약했다면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위해, 한국에서 계약한다면 한국 유소년 야구 등을 위해 기부할 생각이었다. 지금 내가 돈을 더 벌려고 야구하는 게 아니지 않나. FA 계약을 통해 얻어지는 연봉은 나한테 보너스나 마찬가지다. 그걸 좋은 일에 사용하고 싶었다.”
#가족들과 눈물의 이별
2월 25일(한국시간)은 추신수가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운동을 시작한 추신수는 학교에 가는 세 아이들과 일일이 작별 인사를 나누며 새로운 슬픔을 나눠야만 했다. 세 아이들 중 특히 둘째 건우 군은 아빠와 잠시 헤어진다는 사실에 폭풍 눈물을 흘려 보는 이를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추신수 또한 둘째 아들의 눈물과 아빠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가까스로 눈물을 참았다.
지금까지 아빠는, 또 남편은 해마다 2월이면 스프링캠프를 떠났고, 4월 되면 홈과 원정지를 오가며 야구 하느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한국으로 떠나면 7, 8개월은 만날 수가 없다. 여름방학 때 한국을 방문할 수는 있어도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기 전까지 가족들이 한국에 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신수는 한국으로 향하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져야만 했다. 다음 내용은 그가 어떤 각오로 신세계 구단에 입단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가족들의 슬픔을 크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한국 가서 더 야구를 잘해야 한다. 새로운 리그이고, 모두가 낯선 환경이지만 한국어로 대화 나누며 선후배들과 함께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마음을 모은다면 좋은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고 한국에서 야구를 잘하리란 보장은 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한국 야구에 적응해 나갈 계획이다. 오랜만에 잘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다. 그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미국 댈러스=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