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검사들의 고민은 심각하다. 특히 검찰 간부급들의 경우 ‘어떻게든 중수청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상당하다. 하지만 문제는 방법이다. 여권이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검찰 개혁 완수’라는 깃발 아래 중수청을 추진하고 있는데, 국민에 ‘검찰의 권력을 지키려는 게 아니’라는 설명을 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검찰 안팎에서는 오는 7월 임기가 끝나는 윤 총장이 ‘직’을 걸고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갖은 압력에도 검찰이 굽히지 않으니 칼을 빼앗고 쫓아내려 한다”며 “원칙대로 뚜벅뚜벅 길을 걸으니 아예 포클레인을 끌어와 길을 파내려 하는 격”이라는 등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사진=이종현 기자
#작심 심정 드러낸 윤석열
문재인 대통령의 ‘속도조절’ 당부에도, 여권에서 오는 6~7월 중수청 신설을 목표로 속도를 내면서 검찰의 고민은 깊어졌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직접 이슈에 대해 ‘입’을 떼고 나섰다. 평소 개별 언론과의 인터뷰를 피해왔던 윤석열 총장이지만, 검찰에 남은 유일한 직접 수사권(6대 중대범죄)이 중수청으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검찰을 흔드는 정도가 아니라 폐지하려는 시도”라며 직접 언론전에 나섰다.
윤 총장은 3월 2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갖은 압력에도 검찰이 굽히지 않으니 칼을 빼앗고 쫓아내려 한다. 원칙대로 뚜벅뚜벅 길을 걸으니 아예 포클레인을 끌어와 길을 파내려 하는 격”이라며 “거악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 공소유지 변호사들로 정부법무공단 같은 조직을 만들자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것이 검찰의 폐지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중수청) 입법이 이뤄지면 치외법권의 영역은 확대될 것이다. 보통 시민들은 크게 위축되고 자유와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여권의 중수청 설립 등 수사·기소 분리방안 추진에 대해 비판의 입장을 내놓았다.
‘직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검찰 내부의 목소리도 언급했다. 윤 총장은 “직을 걸고 막을 수 있다면야 100번이라도 걸겠다”면서도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니다. 국민들께서 관심을 가져 주셔야 한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쇠퇴한 것이 아니듯, 형사사법 시스템도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 서서히 붕괴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윤석열 총장의 생각보다 이른 반대 의사 표명에 대해 법조계는 여론전을 위한 윤 총장의 작심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최근 대검에서는 물론, 일선 검찰청에서도 중수청에 대해 ‘과한 조치’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총장이 직접 나서 내부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했던 부분도 있는 것 같다”며 “실제로 선거를 앞두고 여권에서 검찰 개혁이라며 중수청을 더 밀어붙일 경우 검사장급이나 고검장급 고위 검사들이 함께 입장을 내고 반대를 위한 사의를 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중수청 신설과 관련해서는 평검사들의 위기의식도 상당하다. 사진=박은숙 기자
#평검사들도 부글부글
이번엔 평검사들의 위기의식도 상당하다. 친정부 계열 검사로 분류되는 이성윤 지검장이 수장으로 있는 서울중앙지검 평검사들도 비판글을 올리며 중수청 반대 목소리를 개진하기 시작했다. 성기범 서울중앙지검 검사(사법연수원 40기)는 3월 1일 저녁, 검찰 내부 게시판에 ‘중수청 : 일제 특별고등경찰의 소환’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중수청은 일제강점기 특별고등경찰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성 검사는 먼저 일제강점기 특별고등경찰에 대해 ‘경찰부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내무대신에 즉보하는 업무체계를 갖췄다’고 설명한 뒤, “(여권이) 구 일본제국의 유령을 소환하고 있다. 중수청은 그냥 대놓고 하나의 경찰 조직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인데, 가장 엄중한 범죄에 관한 수사만 콕 찍어 직무로 부여하고 있으니 이게 특고가 아니면 무엇이 특고에 해당되겠냐”고 비판했다.
그는 또 “중수청은 검사는 물론 누구로부터 통제를 받지 않는 수사기관”이라며 “(이미) 수사권 조정으로 검사는 사법경찰에 대한 유효한 통제방법을 상당 부분 잃었다. 수사기관의 직무수행의 합법성을 통제하는 검사의 권한을, 검사의 소중한 사명을 쏙 빼낸 다음 중수청이라는 또 다른 괴물이 이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서게 됐다”고 덧붙였다.
해당 글에 대해 검찰 내에서는 “검찰 내 분위기를 잘 전달했다”면서도 일반 국민들의 시선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중수청 설치를 지지하는 이들은 검찰권 약화보다는 새로운 수사기관으로 수사권을 이관하는 절차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검찰 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이런 입장을 받아들이는 시선이 적지 않다.
다만 재경지역의 한 검사는 “검찰 개혁이라고 했을 때 국민 대부분은 ‘필요하다’고 하지만 막상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과 경찰의 권한과 역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검찰의 수사권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는 대부분 모르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실제 윤석열 총장도 “검찰을 둘러싼 이슈가 부각되는 것이 피로할 지경이며 내용도 자세히 알지 못하실 것이다. 다만 국민들께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했는데, 이런 검찰 내 ‘명분 부족’ 우려를 감안해 발언했다는 설명이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장경태, 민형배 의원 등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중대범죄수사청법 발의 기자회견 후 취재진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사의 시기 ‘정치적 셈’ 불가피
자연스레 법조계 시선은 다시 윤석열 총장에게로 쏠린다. 가장 존재감 있는 검사이자 검찰의 ‘장’인 윤 총장이 어떻게 투쟁할지가 가장 확실한 ‘옵션 카드’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총장의 임기는 7월 말까지다. 4개월 넘게 남았는데, 문제는 임기에 가까워질수록 사의를 표명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파급력이 작아진다. 윤 총장이 중수청 입법 추진에 빠른 ‘반대의사’를 드러낸 것도 사의 카드의 파급력이 최대한 클 때 활용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 입장에서 이번 중수청 신설을 막아내려면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여론조사보다는 선거가 더 확실한 카드”라며 “정치적인 일정을 감안할 때 4월 보궐선거에 쟁점 가운데 하나로 이슈화시킨 뒤 선거 결과가 이에 대한 판단도 담겨 있다는 점을 함께 유도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거 일정 전에 사의 카드를 활용하는 게 가장 정치적 파급력이 클 것”이라고 얘기했다.
선거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중수청 신설에 반기를 드는 게 가장 윤 총장에게 유리한 일정이라는 것인데, 앞선 변호사는 “하지만 그런 옵션을 정말 선택했을 경우,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에 검찰총장이 반기를 든다는 점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때는 윤 총장이 대선을 앞두고 정치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