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법조계에선 ‘형식적인 절차’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성윤 지검장이 공수처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만, 아직 수사 인력을 갖추지 못한 점 등 현실적 한계를 고려할 때 공수처가 다시 사건을 수원지검으로 재이첩해 수사를 마무리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수사팀이 이성윤 지검장에 대해 체포 등 강제 수사까지 검토했던 터라 이 지검장이 ‘잠깐’ 시간을 벌었다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잇따른 소환에 불응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갑작스레 언론에 입장을 내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검찰총장 주도 하에 이뤄지는 수사에 대해 ‘불신’의 뜻을 밝힌 것인데, 대검은 일단 사건을 이첩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일단 검찰에서 공수처로 이첩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형사3부(이정섭 부장검사) 수사팀은 3월 3일 오전 사건 관련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이규원 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 등 현직 검사들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했다고 밝혔다. 이성윤 지검장은 2019년 6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재직 당시 수원지검 안양지청이 수사 중이던 김 전 차관 출금 사건에 대해 수사 중단 외압을 행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첩 이유는 공수처법 25조 2항. ‘공수처 외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그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한다’는 규정인데, 앞서 김진욱 공수처장도 “규정 상 공수처에 이첩해야 한다고 돼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세 차례 수사팀의 소환에 불응하면서, 수사팀에서는 강제 수사까지 고려했던 상황에서 이성윤 지검장이 밝힌 희망사항이기도 했다. 이성윤 지검장은 이보다 앞선 2월 26일 출입기자단에 “당시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이성윤 검사는 전 법무차관 출국금지 사건과 관련해 당시 상황을 기재한 진술서를 26일 수원지검에 제출했다. (당시) 반부패강력부는 안양지청에 대해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지휘하거나 수원고검에 통보하지 못하도록 지휘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혐의를 부인한 뒤 “현재 시행 중인 공수처법은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이를 수사처에 이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공수처로의 이첩을 주장했다.
특히 이성윤 지검장은 공수처법 25조 2항에서 명시하는 ‘혐의를 발견한 경우’에 대해 “범죄를 인지한 경우가 이에 해당함은 명확하고, 고발사건도 수사과정에서 수사를 해야 할 사항이 상당히 구체화된 경우에는 이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혐의는 부인하면서도 공수처로의 이첩에는 해당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최근 윤석열 총장이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앞두고 법무부에 이성윤 지검장을 비핵심 보직으로 인사 요청하는 등 갈등이 두드러졌던 점을 반영한 제안이라는 평이다.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금 요청서에 허위 사건번호 등을 기재한, 비교적 기소 가능성이 높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규원 검사의 경우에도 이 지검장과 마찬가지로 공수처 이첩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이성윤 지검장이 윤석열 총장이 지휘하는 수사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 아니냐”고 평가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금지 사건에 대해 김진욱 공수처장도 “규정 상 공수처에 이첩해야 한다고 돼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회동을 위해 대검찰청을 찾은 김진욱 공수처장의 모습. 사진=이종현 기자
#변수는 윤석열 ‘행보’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 이번 사건이 ‘공수처 1호 사건’이 될 것으로 보는 이는 드물다. 형식적으로 공수처에 이첩했다가, 다시 검찰로 넘어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가 1호 사건으로 낙점하려면 ‘구속’에 성공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유죄’도 받아낼 수 있는, 그런 상징성 있는 사건이어야 한다”며 “이성윤 지검장 사건은 다소 검찰 내 정치 라인에 대한 갈등적인 요소들이 담겨 있어, 수사 인력도 제대로 꾸리지 않은 공수처가 실제 수사까지 담당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공수처법에 따라 사건을 이첩받기는 했지만, 넘겨받은 사건을 다시 수원지검으로 재이첩하는 방식으로 털어낼 것이라는 얘기다.
임기가 7월 말 끝나는 윤석열 총장이 ‘직’을 걸고 중대범죄수사청 저지에 나섰다는 점이 변수로 거론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실제 수사팀은 이규원 검사를 비롯해 당시 반부패부의 선임연구관이었던 문홍성 수원지검장과 수사지휘과장이었던 김형근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던 윤대진 현 사법연수원 부원장 등에 대한 소환조사를 이미 마무리했다. 남은 소환 조사 대상자는 이 지검장뿐이다.
하지만 이성윤 지검장 사건 수사는 여전히 변수가 가득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뢰를 받는 이성윤 지검장이 차기 검찰총장으로 유력하다는 점, 임기가 7월 말 끝나는 윤석열 총장이 ‘직’을 걸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저지에 나섰다는 점 등이다.
윤석열 총장은 2일 국민일보와의 작심 인터뷰에서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 100번이라고 직을 걸고 검찰 폐지를 막겠다”며 여권의 중수청 신설 입법을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미 검찰 안팎에서는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이성윤 지검장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윤 총장이 ‘빠른 사의 카드’를 꺼내들 경우 이 지검장이 검찰총장이 돼 자기 사건에 대한 수원지검 수사를 지휘·보고받게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선 대검찰청 관계자는 “검찰 존폐 위기라고 판단한 윤석열 총장이 작심하고 여권의 중수청 설치 입법 저지에 나선 상황에서, 이성윤 지검장 사건 기소 여부 등은 지금 당장 중요한 게 아닐 것”이라며 “윤 총장이 4월 보궐선거 전 물러나고 이 지검장이 차기 총장으로 지목될 경우, 사건을 다시 검찰에서 맡는다면 말이 나오지 않겠냐. 앞으로 한두 달 사이 윤 총장과 여권의 중수청 갈등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가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