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을 둘러싼 부처 간 영역 다툼이 심화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전금법)’을 두고 “빅브라더”, “화가 난다”라며 감정 싸움을 하기도 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공정위 vs 방통위 ‘관할권’ 신경전
공정위와 방통위는 ‘온라인플랫폼법’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공정위가 마련한 정부안의 명칭은 ‘온라인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 방통위와 논의해 발의한 법안은 ‘온라인플랫폼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다. 두 법안 모두 온라인플랫폼 사업자가 입점 업체에 갑질 등 불공정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막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온라인플랫폼법이 개정안이 아닌 제정안이니만큼 관할권을 확실히 하려는 두 부처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공정위 측은 “온라인플랫폼의 ‘중개거래’에 관한 것이니 불공정 규제를 담당해온 공정위가 다루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인 반면, 방통위 측은 “온라인플랫폼은 전기통신사업법상의 부가통신서비스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규제 권한을 가진 방통위가 살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두 부처의 충돌이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회는 둘 중 하나의 안을 선택해 통과시켜야 한다.
#이주열 “빅브라더” vs 은성수 “화가 난다”
한은과 금융위가 갈등을 빚고 있는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전금법)’은 두 수장의 다툼으로 이어졌다. 윤관석 민주당 의원(국회 정무위원장)이 발의한 전금법은 오픈뱅킹‧마이데이터‧핀테크 등 금융혁신 정책 추진을 위해 제도와 기반을 마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빅테크 기업의 지급결제 관리를 위해 외부청산을 의무화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는데, 금융위가 외부청산기관인 금융결제원에 대한 감독 권한을 갖게 한다는 부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는 전자지급거래 청산업무에서 금융결제원이 지급 지시를 중계하면 한은이 최종결제하는 구조인데, 법안이 통과되면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을 관리‧감독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한은과 업무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감시하고 통제하는 의미의 ‘빅브라더법’”,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한은이 ‘빅브라더’라고 한 건 오해다. 조금 화가 난다”고 주고받으며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온라인플랫폼법’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모니터 왼쪽)이 국회를 찾아 여당 정무위원들과 회의하는 모습. 사진=박은숙 기자
#서로 떠넘기던 부처들이 왜?
정부 부처들의 이 같은 모습은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서로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 익숙해져 있는데, 이번에는 서로 제 관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각 부처의 의욕적인 모습은 정부업무평가를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홍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매년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한 정부기관평가가 이뤄지는데 일상화된 일만 해서는 점수를 얻기가 어렵다”며 “보다 어렵고 새로운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평가에서 고득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부처 입장에서는 성과를 올리기 위해 이처럼 다투는 모습도 종종 보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국무총리 산하 정부업무평가위원회는 매년 연말 각 부처가 국정과제를 제대로 집행하고 목표를 달성했는지 평가해 발표한다. 평가결과가 우수한 기관에는 포상금도 지급하고 업무 유공자 포상도 실시한다. 다음 해 예산 편성에 평과 결과가 반영되기 때문에 부처 간 신경전도 피할 수 없다.
정부업무평가는 국정과제와 규제혁신 등의 부문에 따라 기관을 평가하고 A, B, C 등급을 부여한다. 43개 중앙행정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도 정부업무평가 결과 금융위와 방통위는 B 등급, 공정위는 C 등급을 받았다. 오는 2021년도 평가에 앞서 더 좋은 등급을 얻기 위한 부처 간 경쟁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평가 기준은 정권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데, 올해는 문재인 정부가 국정에 집중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인 만큼 관계부처도 온라인플랫폼법과 전금법 등 입법 성과에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피감기관 늘려 어깨 힘주기?
윤홍근 교수는 “법규가 어떤 정책에 관련됐고 이해관계가 무엇인지, 어떤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데,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기업이나 협회, 단체 등과 관계가 있는데 이를 놓치는 걸 우려해서 그럴 수도 있다”며 “또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영역 안으로 끌어 들여와서 이해관계자를 제어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한 관계자는 “밑에 거느리는 피감기관을 여럿 두면 부처의 격도 살고 권력도 세지니까 종종 그런 모습을 보인다”며 “특히 공정위가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상징인 만큼 성과를 내서 우수한 부처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부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처 간 영역 다툼이 이어지면 행정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 교수는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가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을 공동 관리하는 것처럼 서로 영역이 겹치면 공동 관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경우 문제가 생기면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부작용도 있다”며 “단일부처 형태가 가장 효율적이긴 하지만 부처 간 충돌이 계속되면 정책 혼선만 생기니 하루 빨리 정리하는 게 좋다. 국회나 총리실에서 나서서 가르마를 타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