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미래권력 대전의 막이 오르면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전략적 공존설이 고개를 들었다. 4·7 재보궐 선거 이후 열리는 차기 당권과 대권 과정에서 ‘돈키호테’ 이재명 지사와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송영길 의원이 손을 맞잡는다는 게 핵심이다.
둘의 만남은 차기 대권주자 1위와 민주당 당권 3파전에서 앞서고 있는 후보 간 전략적 연대다. 그 시너지효과에 따라 여권 내부 권력구도를 흔들 메가톤급 변수로 격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3월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경기지역 국회의원 정책협의회에서 참석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들의 교집합? 반이낙연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가 ‘이재명·송영길’의 전략적 공존설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던진 말이다. 미래권력을 준비하는 양측이 연대의 필요성을 공유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시나리오의 얼개는 다음과 같다.
오는 5월 민주당 당권 경쟁 과정에서 이 지사 측은 송 의원을 물밑 지원한다. 송 의원이 포스트 이낙연호에 오를 경우 이 지사는 차기 대권 과정에서 당권파의 암묵적 지원을 받는다. 이들의 전략적 공존설은 ‘당권 송영길·대권 이재명’으로 양분하는 시나리오인 셈이다. 민주당 차기 당권은 송 의원 외에 친문(친문재인)계인 홍영표 의원과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우원식 의원 등이 뛰고 있다.
당 안팎에선 이 지사와 송 의원이 ‘호남 대선주자 필패론’을 고리로 전략적 공존을 할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송 의원은 전남 고흥 출신이다. 호남 주자를 차기 당권주자로 세우면, 비호남인 이 지사 공간은 넓어질 가능성이 높다. ‘호남이 당권과 대권을 다 독식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다.
이 전략의 최종 타깃은 ‘호남 필패론(호남 대선주자는 필패한다)’의 한가운데 서 있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다. 제3후보로 거론되는 정세균 국무총리도 마찬가지다. 정 총리는 2012년 대선 때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나섰지만, 호남 필패론 벽을 넘지 못했다. 이낙연 한계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논거 중 하나도 호남 필패론이다.
‘이재명·송영길 전략적 공존’의 시너지효과는 작지 않다. 이 지사는 올해 초부터 1강 체제를 구축했다. 일요신문이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3월 4일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이 지사는 28%로, 이낙연 민주당 대표(14.3%)보다 2배가량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2월 28일부터∼3월 2까지 사흘간 조사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다(관련기사 [3월 여론조사] 이재명 28.0% ‘독주’…윤석열 21.8% ‘주춤’ 바닥 다지기?).
포스트 이낙연을 노리는 송 의원은 86그룹과 호남 등의 지지로 차기 당권 구도에서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당 의원실 한 관계자는 “송 의원이 차기 당권 경쟁 초반 판세를 잡았다는 분석이 많다”고 귀띔했다.
지역·세력·이념적 시너지효과도 있다. 우선 출생지로는 경북 안동(이재명)과 전남 고흥(송영길)인 영호남 만남이다. 정치적 고향으로는 경기(이재명)와 인천(송영길) 간 연대다. 송 의원은 인천시장(민선 5기) 출신이다. 또한 둘 다 비주류다. 다만 이 지사는 비주류 중 비주류에 속하지만, 송 의원은 당 주류와 때때로 전략적 동거를 하는 운동권 그룹이다. 세대로는 86그룹에 속한다. 이 지사는 1964년생, 송 의원은 1963년생이다. 둘 다 50대 후반으로, 비교적 젊다. 이념적 공통분모도 있다. 이 지사는 진보와 보수를 넘나든다. 운동권 그룹인 송 의원은 개혁적 성향에 가깝다.
송영길 의원이 지난해 12월 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대북전단금지법 개정안)과 관련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하지만 차이도 있다. 이 지사는 여의도 문법을 거부하는 ‘이단아’다. 흙수저 출신인 이 지사는 특유의 정치 감각을 앞세워 저돌적으로 드라이브를 거는 ‘파이터형’이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를 맨 처음 제기한 이도 이 지사였다.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이 눈치 보는 사이, 그는 헌법주의를 앞세워 촛불이 있는 거리로 향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 지사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이 파이터형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데 한몫했다고 진단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 지사는 공장에 취업해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교(중앙대 법학과)와 사법시험(사법연수원 18기)에 합격하지 않았느냐”며 “이런 삶의 궤적이 국민 정서에 녹아드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본소득을 비롯해 기본주택 등 이재명표 정책도 그의 삶과 무관치 않다.
반면 송 의원은 전형적인 ‘엘리트 운동권’ 출신이다. 1981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송 의원은 3년 뒤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을 맡아 학생운동을 이끌다가, 투옥됐다. 출소 후 인천 지역에서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과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에서 활동하며 노동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1991년 구소련 붕괴 후 사법시험에 합격한 송 의원은 이후 인권변호사 등을 거쳐 2000년 16대 총선 때 정치권에 입문했다. 송 의원도 노동운동을 했지만, 삶 자체가 전태일 같은 삶이었던 이 지사와는 결이 다른 셈이다. 정의당 한 관계자는 “운동권 그룹 내에서도 학생운동 층과 노동운동 층의 간극은 존재했다”고 회고했다.
관전 포인트는 이재명·송영길 연대의 현실 가능성이다. 여권 복수의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이 지사는 송영길·우원식 의원 가운데 누구와 공통분모 찾기에 나설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사석에서 주변에 “누구를 도와줘야 하느냐”라며 적잖은 고민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안팎에선 “비주류인 이 지사 측이 친문계인 홍영표 의원이 당 대표에 오르는 것은 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오는 2022년 대선 전 호남 주자를 당권으로 미리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송 의원과 전략적 연대를 꾀할 가능성이 크다. 여당 관계자들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라면서도 “홍영표 대세론 여부에 따라 이들의 전략적 연대설의 실체가 분명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호남 주자 당권 지원설이 ‘호남 알박기’ 논란으로 튈 수 있다는 점은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런데도 여의도 안팎에서 이들의 공존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까닭은 파괴력 때문이다. 당장 이들은 만만치 않은 세를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계는 경기도 인맥에 치중돼 있다. 계파 맏형격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김영진 김병욱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정 의원은 이 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다. 이 지사와 김영진 의원은 중앙대 선후배로 묶여 있다. 김병욱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캠프 대변인을 맡았다.
이 지사는 3월 3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경기도 지역구를 가진 여야 의원들을 초청, 자신의 정책 브랜드인 ‘기본주택’을 세일즈했다. 이 자리에는 민주당뿐 아니라, 송석준 국민의힘·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30여 명이 찾았다. 지난 1월 26일 열린 경기도 기본주택 토론회 땐 20여 명이 방문했다. 5주 만에 다시 연 이 지사 토론회 자리에 더 많은 여야 의원들이 함께하자, 여의도 안팎에선 “대선 주자 지지도 1위 효과”라는 말이 나왔다.
당내 초·재선 등 개혁적 성향의 인사들도 이 지사와 밀착하고 있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지사의 기본주택 토론회에 참석하기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전에 착실하게 공부하고, 오후에는 광교의 기본주택 홍보관에 들러 어떤 정책인지 꼼꼼하게 살펴보겠다”며 힘을 보탰다. 당 밖에선 제윤경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 등이 이재명의 사람들로 꼽힌다. 송영길 의원의 세력은 운동권 그룹은 물론, 인천 지역 전·현직 국회의원과 외교 인맥 등을 기반으로 뭉치고 있다.
송 의원이 이 지사와 손을 맞잡는다면, 운동권 그룹도 분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내 운동권은 86그룹과 함께 민평련 등으로 이뤄졌다.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이인영 통일부 장관, 우상호 의원 등부터 김근태계까지 다양하다.
다만 문재인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임 전 실장은 친문계에 속한다. 이 장관과 우 의원 등은 86그룹의 독자 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다. 차기 당권과 대선 국면을 거치면서 친문계에 이어 운동권 그룹도 분화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경우 차기 대선 국면에선 이재명계와 일부 운동권 등이 합세한 연합군과 당 최대 주주인 친문계가 ‘죽느냐, 사느냐’의 치킨게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