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한국토지공사 직원들의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으로 인한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부동산 공급확대 및 투기수요 억제에 총력전을 펼쳐온 정부는 정책 신뢰도에 타격을 입게된 만큼 강력하고 신속한 대응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LH 땅 투기’ 의혹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당초 의혹의 중심에 선 LH와 국토교통부가 지난 2일 자체 전수조사를 시작해 다음날 결과까지 내놨지만,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이 ‘빈틈없는 조사’를 지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초 국토부는 조사 대상을 광명 시흥 지역으로 한정했으나 대통령 지시 이후 이 지역뿐 아니라 인천 계양, 남양주 왕숙, 부천 대장, 고양 창릉, 하남 교산 등 현 정부가 내놓은 6개 3기 신도시 후보지 전체로 확대했다. 조사 대상 기관도 LH와 국토교통부에 더해 경기도와 경기주택도시공사(GH) 등 유관기관으로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관련 기관의 임직원·공무원 본인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 신도시 후보지에 투자했는지 조사받는다.
이번 조사는 총리실이 지휘한다. 대통령이 조사 주체로 총리실을 못 박았다. 청와대는 “객관성과 엄정성을 담보해 투기 의혹에 대한 조사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총리실 한 관계자는 “공직자들의 직무수행을 감찰하는 조직인 공직복무관리관실이 역할을 맡게 됐다”며 “이 업무의 주무부서”라고 말했다.
총리실은 국토부와 합동으로 3기 신도시 전체 토지거래현황을 조사할 방침이다. 이를 조사 대상 기관 직원 명단과 대조하는 방식으로 검증이 이뤄진다. 작업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라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관가에선 공직복무관리관실이 국세청에 협조를 요청해 차명 거래 가능성까지 확인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여기에 문 대통령이 4일 “신도시 투기 의혹이 일부 직원의 개인적 일탈이었는지, 뿌리 깊은 부패 구조에 기인한 건지 준용해서 발본색원하라”고 추가 지시를 내린 만큼 현재 거론되고 있는 내용 외에 조사 대상과 범위가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처럼 정부가 의혹이 제기된 직후 동시다발적으로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번 의혹이 미칠 파장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현 정부가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부동산 대책이 직격탄을 맞은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는 부동산 정책과 관련,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투기 수요 억제’를 강조해왔다. 정부는 출범 이후 올해 ‘2·4 대책’까지 부동산 대책을 총 25차례 내놨는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투기 수요 억제를 대책의 핵심으로 뒀다. 여기에 ‘2·4 대책’은 공공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공공주도의 개발에 방점이 찍혀 있다. 개인의 땅을 LH와 SH(서울주택도시공사) 등의 공공이 사들여 개발하고 개발이익의 일부를 땅 주인에게 나눠주는 게 골자다. LH가 핵심 업무를 손발이 돼서 처리해야 한다. 결국 이번 LH 직원들의 비리가 사실로 드러나면 공공주도 사업의 핵심인 투명성과 공익성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는 만큼 이에 대한 우려가 정부의 강력 대응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신임 국토부 수장으로 임기 말 정부 부동산 정책을 이끌어갈 변창흠 장관에 대한 날선 시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변 장관은 이번 ‘2·4 대책’을 내놓으면서 “공공이 주도하면 충분한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다”며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사업 진척이 더딘 도심 역세권 땅의 경우 공공만이 이런 이해관계를 책임지고 조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번 사태의 조사 대상으로 전락했다. 여기에 LH 직원들이 광명·시흥 지역 토지를 매입한 시기는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LH 사장으로 재직했던 기간과 겹치면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지난 2월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광명·시흥 지구에서 사전에 100억 원대 땅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지난 2일 제기됐다. LH와 관계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고 위법 사항이 발견되면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광명시흥 개발구상안. 사진=국토교통부
임기 말 정부의 부동산 대책 신뢰도와 직결된 만큼 조사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법리적으로 보면, 당장 광명·시흥 지역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LH 직원들의 경우 처벌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국토부와 LH 자체조사 결과 직원 13명이 광명·시흥 지역 12필지를 약 100억 원에 취득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런데 이들은 2015년 이후 신규 후보지 관련 부서나 광명시흥 사업본부에서 근무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내부에서 다른 직원이 전달한 정보를 넘겨받아 땅을 매입했을 수도 있지만 처벌을 하려면 이 행위를 입증해야 한다. 법조계 일각에선 12명의 직원이 전원 실명으로 투자했다는 점에 비춰 현행법이나 내규상 불법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사전 정보를 받아 투자를 한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현행 공공주택 특별법상 처벌 대상이 되기 어렵다. 현행법에선 ‘업무처리 중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한 경우에만 처벌 대상이 되는 만큼 받은 정보에 대해선 처벌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있다.
또 광명·시흥 지역의 경우 2015년 보금자리지구에서 해제된 후 특별관리구역으로 관리돼 왔다. 그동안 일반인 사이에서 ‘개발 영순위’ 지역으로 꼽혀왔던 만큼 내부정보를 이용한 매매로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실제 광명·시흥 지역 땅을 매입한 일부 LH 직원도 뒤늦게 신도시로 지정되면서 문제가 됐을 뿐 정상적인 매매라는 취지로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러한 사정 탓에 솜방망이 처벌 또는 아예 처벌이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질 경우 투기 의혹 이상으로 파장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LH 직원들이 광명·시흥 지역에 땅을 사면서 했던 행위들이 전형적인 투기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다.
의혹을 처음 제기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LH 직원들 본인과 배우자, 지인 등은 광명·시흥 지역 토지를 ‘쪼개기’ 방식으로 공동으로 사들였다. 쪼개진 땅은 LH의 토지 보상 기준이 되는 1000㎡(약 302평) 이상으로 나뉘었다.
토지보상법을 보면 외지인은 채권으로만 보상받을 수 있고 1억 원 이내에서 현금보상, 대토(토지) 보상이 가능하긴 하지만 규모가 크지 않다. 다만 1000㎡ 이상 토지 소유자는 토지를 협의양도를 하는 경우 추후 단독주택 용지 우선 공급권이 주어진다. 이 때문에 LH 직원들은 여러 명이 이 토지 우선 공급권을 받기 위해 지분을 쪼개거나 이 기준에 맞춰 토지를 매매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토부는 최근 지침을 개정해 400㎡(약 121평) 이상 협의양도시 주택용지 대신 100% 당첨이 가능한 아파트 분양권을 주는 추가 혜택도 마련하기도 했다.
여기에 LH 직원들은 약 100억 원 가운데 58억 원을 농협의 한 지점에서 집중적으로 대출했다. 매입한 토지가 대부분 농지라 대출 이자 부담 등을 고려하면 확실한 개발정보 없이는 하지 않는 행위라는 게 부동산 업계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대출을 받을 땐 은행에 농사를 짓겠다며 ‘가짜 농사계획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선 토지 매입 이후 대대적인 나무 심기 공사가 진행된 정황도 있다. 이는 보상가를 높이기 위해 여러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동원되던 방법이다.
국토부는 조사 결과 위법 사실이 발견되면 수사 의뢰 또는 고소·고발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재발 방지 대책도 검토 중이다. 정부 안팎에선 자본시장법에 준하는 강력한 대책이 될 것으로 관측한다. 현재 금융 관련 공공기관의 경우 부서장 이상이면 주식 투자가 금지되고, 그 이하 직원은 사전 신고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행법상 사각지대가 있는 만큼 관련 법 개정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변호사는 “지금까지는 사실상 개발 관련 업무 공무원들의 양심에 맡긴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며 “재발 방지 대책이나 법 개정은 절실하지만 ‘사후약방문’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꼬집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