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농가에서는 KT&G가 보이지 않는 강요와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 강남구 KT&G 본사. 사진=연합뉴스
“해당 법안은 국산 잎담배 전량을 구매하는 KT&G에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바, 잎담배 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의사결정 진행이 요청된다.” “우리 농민을 30년 생업에서 내쫓고 외국 농민을 배불리는 매국 법안으로 전국 1만여 잎담배 생산농민은 결사반대한다.”
지난해 9월 김수흥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가향캡슐담배 규제를 담은 담배사업법 일부개정안에 대한 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 측 입장문 주요 내용이다. 캡슐담배는 가향담배 일종으로 필터에 멘톨 등의 향 성분을 포함한 캡슐을 가지고 있다. 흡연자가 캡슐을 터뜨려 향을 맛볼 수 있는 담배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내 캡슐담배 시장점유율은 2012년 2.4%에서 2019년 26.4%로 11배 확대됐다.
캡슐담배에 사용되는 가향 성분은 담배 고유의 자극성을 가리고 무디게 해 청소년과 여성 등 젊은 층의 신규 흡연자가 늘어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질병관리본부 연구결과 13~39세 젊은 흡연자 중 65% 정도가 가향담배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캐나다, EU(유럽연합) 등에서는 가향물질을 넣은 일부 담배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가향물질 캡슐 관련 규제는 담뱃갑 포장이나 광고에 가향물질 표시를 제한하는 수준이다. 이에 지난해 9월 발의된 개정안은 가향물질 캡슐을 사용한 담배 제조 및 수입 판매를 금지하고, 위반 시 벌칙을 부과하는 규제를 담았다.
개정안에 대해 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는 “KT&G가 가향캡슐담배 국내 점유율 79%나 차지하는 만큼, 이번 규제는 KT&G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그럼 국내 담배농가 생산량이 급감해 농가 피해도 직격탄을 줄 수 있다”고 반박했다. 중앙회는 담배농사가 KT&G와의 전량 계약재배로 소득과 판로가 보장돼 농촌에서 선호하는 안정적인 농작물이라고 덧붙였다.
KT&G 역시 홈페이지 등을 통해 사회책임 활동 일환으로 담배농가와 공유가치 창출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KT&G는 2001년 담배 제조독점이 폐지돼 국산 잎담배 구매 의무가 사라졌으나, 국내 잎담배 농가가 안정적으로 잎담배를 재배할 수 있도록 국내에서 생산되는 전량을 구매해 제품에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KT&G는 지난 2019년 국내 경작인 2880명으로부터 965억 원 수준의 잎담배 1만 214톤(t)을 구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선 담배농가에서는 KT&G가 담배농사에 보이지 않는 강요와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언급했듯 담배농사는 KT&G와의 계약재배로 이뤄진다. KT&G와 중앙회의 계약은 농지 1단보(991.74㎡)당 잎담배 240kg만 구매한다는 조건이다. 이 계약은 십수 년 전부터 정해져 이어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KT&G가 2002년 12월 한국담배인삼공사에서 민영화되면서 사명을 바꾼 이후로 추정된다.
문제는 1단보당 수확되는 잎담배의 양이 240kg을 넘는다는 것이다. 담배농사를 짓는 경작인들은 1단보당 평균 수확량은 270kg이고, 300kg 이상 재배될 때도 많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 관계자는 “계약조건이 240kg으로 명시되긴 했지만 KT&G가 초과 생산분을 매입하지 않은 적이 없다. 항상 전량 구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KT&G의 수확량 조절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담배농사를 짓는 A 씨는 “KT&G는 계약재배에 따라 1단보에 240kg 이상은 안 받겠다고 했다. 우리 농가에서는 계약 수확량을 넘기면 양을 맞추지 못한 인근의 다른 경작인에게 물량을 넘겨 파는 방식을 취했다. 다른 지역과 조합 차원에서 서로 채워줘 계약 수량을 맞추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A 씨는 “지난해부터 KT&G가 중앙회에 240kg 계약조건을 못 박고 엄포를 놓고 있다고 한다. 초과분량을 더 이상 구매해줄 수 없으니 중앙회와 조합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이에 조합에서도 생산농가에 계약량 이상 수확하면 모두 팔아줄 수 없을 수 있다, 책임 못 진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다보니 재배를 적게 해 수확량을 줄이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조합 차원에서 잎담배를 심을 때 농작물 사이의 간격을 더 넓게 해 심는 양을 줄이라고 강요했다. 나 같은 경우도 담배밭이 40단보인데 실제 경작은 지난해 30단보 수준밖에 못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담배 경작인 B 씨도 “계약조건 240kg은 과거 농법 기준에 가깝다. 최근에는 농사기법과 영양제 등이 좋아져 훨씬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다. 하지만 KT&G는 과거 기준을 앞세워 계약조건을 내세우는 것”이라며 “계약량을 넘지 않게 중앙회나 조합, 생산농가 모두 암묵적 압력을 받고 있다. 그 압박은 최근 들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회 역시 “KT&G 측에서 계약한 재배량에 맞춰 농사를 지어줬으면 좋겠다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KT&G 측은 “1단보당 수확량이 정해져 있는 것은 최적의 품질 관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이다. 수확량에 대해서는 별도 가이드라인이 없다. 국내 농가에서 생산한 잎담배는 전량 구매하고 있다”며 “수확량을 줄이라고 강요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모종 이식 간격을 늘리라고 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경작지도·교육은 중앙회와 조합에서 시행하는 것으로 KT&G는 전혀 요청하지 않았다. 잎담배는 일조량이 중요하다. 모종에 햇빛이 골고루 노출되도록 간격을 늘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잎담배밭 전경. 사진=연합뉴스
수확량을 줄이라고 압박을 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잎담배 단가 인상은 큰 변동이 없어 담배농사를 짓는 농민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품종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잎담배 1kg당 단가는 9500원 수준이다. 십수 년 전 단가는 8500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A 씨는 “20년 동안 물가가 상승했다. 인건비는 2배가 넘게 올랐다. 하지만 잎담배 단가는 10년째 거의 변동이 없이 제자리걸음이다. 이제 재배까지 많이 하지 못한다. 1년 동안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게 없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중앙회에서도 잎담배 단가를 물가인상률에 맞춰 인상해주지 못한 점에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외국 수입 잎담배 시세도 고려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중앙회 관계자는 “외국에서 수입하는 잎담배 단가는 3000~6000원 수준으로, 국내 잎담배보다 턱없이 싸다. 이에 마냥 국내 잎담배 단가를 인상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KT&G가 국내산과 외국산의 가격 차이에도 국내 담배농가 보호를 위해 매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KT&G 관계자 역시 “중앙회의 의견을 고려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며 “2011년부터 2020년까지 구매가 인상률은 8519원에서 9620원으로 동일 기간 물가인상률을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KT&G는 담배 제조에 국내 잎담배와 수입 잎담배를 어느 정도 비율로 사용하고 있는지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KT&G 관계자는 “잎담배도 여러 품종이 있다. 나라마다 재배되는 잎담배의 맛이나 특성이 다르다. 담배 종류에 따라 맛이 다른 이유는 잎담배 품종과 배율을 달리해 블렌딩하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와 수입 잎담배 사용 비중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국내 잎담배 수확량이 KT&G의 담배 생산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설명에 따르면 KT&G가 중앙회를 통해 국내 농가 잎담배 수확량을 조절하려 한다는 설명은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다.
B 씨는 “KT&G가 주요 판매처다 보니 중앙회도 그들의 눈치를 보고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KT&G가 생산농민들을 위해 하는 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경작인들이 반발하면 KT&G는 국내 농가가 아니라도 더 싼값에 수입해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해 갑질을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A 씨는 결국 조부 때부터 이어져오던 60여 년 잎담배 농사 가업 포기를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KT&G 관계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KT&G는 국내 담배농가 생산 안정화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면서도 “담배농가의 어려운 상황을 파악해 담배 경작인들과의 상생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KT&G는 지난해 매출액 3조 4381억 원, 영업이익 1조 3414억 원, 당기순이익 1조 751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9년도 실적 대비 매출은 16.8%, 영업이익 18.2%, 당기순이익 20.6%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를 달성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