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5위 롯데그룹이 유통 부문의 부진한 실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사진=일요신문DB
#3조 원 쏟았더니 ‘와르르’…부문장 OUT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외출이 줄면서 온라인쇼핑 거래는 특수를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61조 1234억 원으로 2019년 대비 19.1% 증가했다. 반면 신동빈 회장의 야심작 ‘롯데온’은 지지부진했다. 지난해 롯데의 이커머스 거래액은 7조 6000억 원으로 같은 기간 7% 성장했다. 신세계그룹 통합 쇼핑몰 SSG닷컴 거래액이 같은 시기 37% 오른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롯데온은 백화점·마트·슈퍼·롭스·하이마트·홈쇼핑·닷컴 등 롯데의 7개 유통 계열사를 통합한 쇼핑 플랫폼으로 론칭 전 3조 원의 자금과 인력을 쏟아 부은 것으로 전해졌다. 1996년 롯데인터넷백화점을 선보이며 온라인 쇼핑에 첫 발을 내딛은 역사도 지녔다. 하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1월 14일 사장단회의에서 “(롯데가) 업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고도 부진한 사업군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롯데온을 간접적으로 질책했다.
롯데온의 위기는 이를 론칭한 롯데쇼핑에도 타격을 입혔다. 2015년 전체 매출 30조 원에 육박했던 롯데쇼핑은 지난해 16조 762억 원을 기록하며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영업이익은 3461억 원으로 2년 전보다 19.1% 감소했다.
결국 지난 2월 25일 조영제 대표가 실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서비스 출범이 1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결과였다. 롯데는 당시 “조영제 사업부장은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에 차질을 빚으며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롯데온의 시너지 효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롯데온뿐 아니다. 롯데 유통 계열사별로 칼바람이 불었다. 롯데는 지난해 △롯데슈퍼 99곳 △롭스 29곳 △롯데마트 12곳 △롯데백화점 1곳을 폐점시켰다. 특히 롯데마트의 경우 이마트, 홈플러스와 함께 국내 3대 대형마트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져왔지만 실적부진으로 전망이 불투명해진 상황.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롯데마트의 지난해 매출액은 6조 390억 원으로 전년보다 4.6% 줄었다. 최근 3년간 누적 영업적자가 660억 원이다. 롯데마트는 지난 2월 24일 정직원 4300여 명 가운데 동일 직급마다 10년차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롯데푸드, 롯데아사히주류, 롯데GRS, 롯데하이마트 등도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거나 마무리했다. 대부분 유통 계열사다. 롯데 한 계열사 직원은 “롯데 자부심이었던 유통이 업계에서 밀리면서 내부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내부에선 (롯데가) 이를 쇄신하지 못하면 신동빈 회장 이후 3세 경영이 승계되지 않고 공중분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해 롯데 관계자는 “조직 분위기를 개선해 나가고 있다“며 ”유통 부문 정상화를 위해서 다각도로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말했다.
#“롯데, 외부 역량에 눈 돌려야”
그룹 전체 유통 BU(Business Unit)장을 맡고 있는 강희태 롯데 부회장은 유통 실적 부진이 이어지자 체질개선에 박차를 가했다. ‘정통 롯데맨’으로 알려진 그는 2012~2018년 롭스 대표로 역임하며 매장을 단기간에 100개 정도 늘려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강희태 부회장이 지난해 재신임되며 롯데의 야심작으로 꼽힌 롯데온 살리기에 들어갔다. 그 일환으로 구조조정과 인재 영입이 진행됐다. 외형 확장 대신 내실을 다지겠다는 것.
실제로 강희태 부회장은 최근 11번가 출신 김현진 플랫폼센터장(상무)과 임현동 상품부문장(상무급)을 롯데온으로 영입했다. 또 직속 데이터 거버넌스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해 윤영선 롯데정보통신 상무를 TF장으로 임명했다. 롯데온 서비스를 한층 더 강화하고 빅데이터 사업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유통 부문 도약을 위해 그룹 차원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다. 롯데지주 경영개선실 차원에서 감사가 이뤄진 것. 롯데지주 경영개선실은 지난해 말부터 롯데이커머스에 대한 감사를 벌이며 롯데온 출범 과정과 실적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롯데이커머스가 지주의 감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롯데가 내부개혁 대신 외부 전략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롯데쇼핑의 ‘세미다크스토어’(배송 전 단계인 포장에 주안점을 두고 자동화 설비를 구축한 매장)가 대표적이다. 롯데쇼핑은 오프라인 매장 인프라를 물류 거점화해 온라인에서 주문한 상품을 인근 매장에서 픽업할 수 있도록 하는 세미다크스토어를 올해까지 29개 점포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월마트와 같은 방식이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이 유통업계의 한 축으로 성장하면서 세미다크스토어 대신 온라인 쇼핑에 대한 전반적인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은경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롯데가)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유통업종 내 점유율 회복을 위한 온라인 부문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통업계 변화에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있다. 최근 롯데의 경쟁사인 신세계그룹과 현대백화점은 업계를 뒤집을 반전 카드를 내놨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경우 야구단을 인수했으며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찾아가 양사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서울 여의도에 ‘더현대서울’을 열고 새로운 개념의 백화점을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반면 신동빈 회장은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의 위기는 신동빈 회장 리더십에 달렸다”며 “보수적인 분위기를 타파하고 업계 흐름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권가는 올해 롯데 유통 부문의 실적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대신증권은 지난 3일 롯데쇼핑에 대해 구조조정 효과로 마트 사업부가 안정화되고 있고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목표주가를 18만 원으로 상향했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2020년 국내 마트 점포 수가 지난해 말보다 12개 줄었는데 부진 점포 폐점으로 분기당 감가비와 인건비 등 400억 원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했다”며 “2%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안정화 단계에 안착했다”고 판단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