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파리그 16강에서 만난 맨유와 밀란은 과거 챔피언스리그에서 명승부를 연출하던 인연이 있다. 대한민국 레전드 박지성도 당시 경기에 나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0년 3월 적으로 만난 박지성(왼쪽)과 호나우지뉴. 사진=연합뉴스
#빅클럽 참가로 판 커진 유로파리그
이번 유로파리그 대진은 아약스(네덜란드)-영보이스(스위스), 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비야레알(스페인), AS 로마(이탈리아)-샤흐타르 도네츠크(우크라이나), 올림피아코스(그리스)-아스널(잉글랜드), 디나모 자그레브(크로아티아)-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AC 밀란(이탈리아), 슬라비아 프라하(체코)-레인저스(스코틀랜드), 그라나다(스페인)-몰데(노르웨이)로 결정됐다. 이 중에는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해도 손색없는 빅클럽들이 이름을 올렸다. 실제 샤흐타르, 올림피아코스, 아약스, 맨유 등은 챔피언스리그에 나섰다가 조별리그 3위에 그쳐 유로파리그로 편입됐다.
아약스는 유로파리그보다 되레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력이 더 많은 세계적 명문구단이다. 1992년 UEFA컵(유로파리그 전신) 우승 트로피를 1회 들어 올린 반면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4회나 차지했다. 2019년에는 챔피언스리그, 2017년에는 유로파리그 결승에 올라 최근까지도 꾸준히 유럽무대에서 족적을 남겨왔다.
맨유는 많은 설명이 필요 없는 슈퍼클럽이다. 21세기에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3회 진출해 우승컵을 한 번 들어 올렸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 지휘 아래 보냈던 전성기를 지난 이후에는 유로파리그에서 성과를 냈다. 2017년 결승에서 아약스를 만나 우승을 차지했으며 지난 시즌에도 4강까지 올랐다.
비야레알, 밀란, 아스널, 토트넘 등도 우승 후보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팀들이다. 비야레알은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존재감을 발휘한다. 2014년부터 3년간 세비야를 이끌고 유로파리그 3연패를 한 감독이다. 유로파리그에서만큼은 역대 최대 업적을 남긴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밀란과 아스널은 과거 챔피언스리그가 더 어울리는 구단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부진을 겪었다. 특히 밀란은 챔피언스리그 역대 우승횟수 2위(7회 우승)를 기록한 명문이다.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이번 대회 성과가 중요하다.
지난 시즌 유로파리그 32강에서 만났던 올림피아코스와 아스널은 불과 1시즌 뒤 같은 대회 16강에서 재대결을 펼치게 됐다. 지난 시즌 올림피아코스전에서 골찬스를 날리고 아쉬워하는 아스널 공격수 오바메양. 사진=연합뉴스
#눈길 끄는 빅매치
유로파리그 16강전, 8개의 매치업 중 가장 팬들의 눈길이 쏠린 빅매치는 맨유와 밀란의 만남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유럽을 호령하던 구단들이 유로파리그에서 만났다. 이들은 이전에도 유럽대항전 주요 길목에서 만나 명승부를 연출한 바 있다. 이는 맨유와 밀란의 재대결에 많은 팬들이 향수를 느끼고 있는 이유다.
양팀은 2007-2008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맞붙었다. 맨유와 밀란 모두 전성기를 달리던 시기다. 맨유에는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라이언 긱스가, 밀란에는 필리포 인자기, 클라렌스 시도로프, 파올로 말디니 등 스타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당시 4강 1, 2차전에서 가장 빛나는 스타는 카카였다. 카카는 맨유 원정에서 2골, 홈에서 1골을 기록하며 종합 스코어 5-3을 만들며 팀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결국 밀란은 이 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카카는 발롱도르, 피파 올해의 선수상 등을 들어 올리며 세계 최고 선수 반열에 올랐다.
3시즌 뒤 이들은 또 다시 유럽대항전에서 만났다. 2009-2010 챔피언스리그 16강이었다. 이번에 웃은 팀은 맨유였다. 2승을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대기 명단에서도 이름이 빠졌던 3년 전과 달리 박지성이 1, 2차전 모두 9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이 경기는 박지성이 당대 최고 미드필더였던 안드레아 피를로를 꽁꽁 묶은 경기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2차전에서 박지성은 측면이 아닌 중앙에 기용되며 피를로에 대한 수비는 물론 골까지 추가해 ‘센트럴 팍’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유럽 현지에서는 박지성을 평가할 때 이때의 경기를 언급하곤 한다. 피를로조차도 현역에서 물러나며 “가장 짜증났던 선수”로 박지성을 꼽았다.
10여 년 만에 만난 맨유와 밀란의 유로파리그 16강전에서 우세함이 점쳐지는 팀은 맨유다. 최상의 모습은 아니지만 단단함으로 승점을 챙겨가고 있다. 최근 10경기에서 5실점의 짠물 수비력은 토너먼트에서 더 큰 강점이 될 수 있다. 반면 밀란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시즌 코로나19로 인한 휴식기 이후 이번 시즌 전반기까지 최강팀의 면모를 자랑했다. 개막 이후 15경기 무패행진을 내달렸다. 하지만 최근 1승 1무 2패로 흔들리고 있다. 그 사이 리그 순위는 2위로 떨어졌다. 맨유로 승부의 추가 기우는 이유다.
올림피아코스와 아스널은 불과 한 시즌 전에도 같은 무대에서 만났다. 그리스의 절대강자 올림피아코스와 잉글랜드 명문 아스널의 만남은 지난 시즌 유로파리그 32강이 처음이었다. 1차전 적지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아스널이 무난하게 16강으로 향하는 듯했다. 하지만 2차전에서 연장 승부를 치렀고,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 팀은 올림피아코스였다.
아스널은 당시 수차례 득점기회를 날리며 16강 진출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올림피아코스는 연장 종료 1분 전 극적인 결승골을 넣으며 자격을 증명했다. 유럽축구 변방 그리스리그 구단이라고 해서 절대 무시해선 안 된다는 선례를 남겼다.
이들의 맞대결은 승부를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아스널은 시즌 초반 극도의 부진에서 벗어났다. 미켈 아르테타 감독의 전술도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올림피아코스는 쉽게 볼 수 없는 상대다. 이번 시즌도 그리스 슈퍼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2위와 승점차도 10점 이상 벌려 놨기에 유로파리그에 힘을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다.
베일이 최근 날카로운 감각을 과시하고 있는 토트넘은 팀 분위기도 부드러워진 모습을 보인다. 사진=토트넘 페이스북
손흥민의 토트넘은 디나모 자그레브를 만난다. 이번 시즌 전반기와 후반기 극명한 차이를 보인 토트넘은 최근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진 탈출의 중심에는 가레스 베일이 있다. 베일은 최근 2경기 3골로 컨디션을 끌어 올렸다. 이전까지 주로 교체로 나섰지만 선발로도 가능성이 있음을 증명했다.
토트넘의 상대 디나모 자그레브도 올림피아코스 못지않은 자국 리그 강팀이다. 이번 시즌에도 크로아티아리그 선두에 올라 있다. 다만 독주를 펼치는 올림피아코스와 달리 경쟁자들과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다.
디나모 자그레브의 공격을 이끄는 얼굴은 마리오 가부라노비치와 미슬라브 오르시치다. 그중에서도 특히 오르시치에 국내 팬들의 시선이 쏠린다. ‘오르샤’라는 등록명을 달고 K리그 전남과 울산에서 활약했던 선수다. 한국에서도 공격진 에이스로 활약하던 그는 울산에서 자그레브로 넘어가 여전히 팀 공격의 중심으로 뛰고 있다.
토트넘이 동유럽 강호 디나모 자그레브를 넘기 위해선 결국 베일의 활약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토트넘이 자랑하던 공격자원 중 손흥민과 해리 케인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이전보다 덜한 폼을 보인다. 손흥민, 케인은 꾸준한 활약을 보일 공산이 크지만 둘만으로는 부족하다. 살아나고 있는 베일의 경기 감각에 토트넘의 유로파리그 8강 진출이 달렸다.
유로파리그 16강 8경기는 오는 12일 유럽 전역에서 열린다. 결승전 개최지는 폴란드 그단스크로 예정돼 있다. 사진=UEFA 유로파리그 페이스북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