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총장의 사의 명분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과 함께 기소권을 줘서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일명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에 대한 반발이다. 검찰 내에서는 “총장이 적절한 시기에,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잘 맞섰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늦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더 일찍, 직을 걸고 맞섰어야 했다는 비판이다.
지난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꾸준히 여권과 갈등을 빚어왔던 윤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검찰은 다시 격랑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됐다. 특히 윤 총장이 직접 챙겨왔던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등 굵직한 수사들도 흔들릴 수밖에 없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한 당장 검찰은 후임은 누가 될 것인지도 주목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총장직 사퇴 의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임기 넉달 앞두고 깜짝 사의
3월 3일 대구지검을 찾은 자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지금 진행 중인 소위 말하는 검수완박이라고 하는 것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으로 헌법 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다.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작심 발언했다.
다음날인 4일 사의를 밝혔다. 4일 오전 반가를 내고 쉬던 윤 총장은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취재진에게 뜻을 밝힐 것’이라는 내용을 알린 뒤, 카메라 앞에서 준비해 온 메시지를 직접 밝혔다. 윤 총장은 “저는 오늘 총장을 사직하려 한다”며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고 말했다.
정치적 행보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며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신 분들, 그리고 제게 날선 비판을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끝맺었다. 추가로 쏟아진 기자들의 질문에는 응답을 하지 않고 대검찰청으로 들어갔는데, 윤 총장의 사의 표명은 임기를 142일 앞두고 이뤄졌다.
#“좀 더 빨리 표명했더라면…”
윤 총장의 검찰 표명은 사실 어느 정도 예상됐다는 게 중론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중수청 추진에 대해 윤석열 총장을 겨냥한 여권의 개혁안이라면 윤 총장이 직을 걸고 막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라며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중수청을 선거 이슈로 쟁점화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도 불가피했던 선택”이라고 말했다. 실제 윤 총장도 측근들에게 “나를 잡겠다고 하는 것이라면 내가 막아야 하지 않겠냐”는 뉘앙스로 ‘항전 의지’를 내비쳤다는 후문이다. 재경지역의 한 검사 역시 “다들 분위기가 퇴직하더라도 막아야만 한다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 빠른 사의를 통해 적극적으로 비판을 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사실 박범계 장관 취임 후 첫 인사 때부터, 신현수 민정수석을 통해 검찰개혁을 조정해 나갈 수 있을 확률은 제로(0)에 가깝다는 게 확인됐던 것”이라며 “더 빠른 시기에 사의를 표명했다면 오히려 정치권에 더 큰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간부 출신의 변호사 역시 “개인적으로 사의는 불가피했지만, 시점은 조금 늦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제 검찰은 ‘정치권’을 바라보고 있다. 윤 총장이 ‘사의’와 함께 검찰총장이 아니라 예비 정치인 윤석열의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4월 보궐선거가 자연스레 중수청을 포함, 여권의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심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당장 여당도 윤 총장의 사의 표명이 4월 보궐 선거에 어떤 영향을 줄지, 셈을 하느라 분주하다.
앞선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윤 총장과 검찰개혁 및 정상화 방향의 궤를 함께하는 후보가 등장하고, 그가 여권을 누르고 당선된다면 여권의 중수청 입법 무산은 물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윤 총장의 존재감이 더 커지게 될 것”이라며 “검사가 아닌, 정치인으로의 윤석열의 행보는 이번 보궐선거 결과에 달렸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차기 총장 후보군에서 단연 앞서가고 있는 이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이기도 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사법연수원 23기)은 검찰 내 리더십에서는 한계를 보인다는 평이다. 사진=일요신문DB
#차기 총장은 누구?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 결정으로 ‘사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청와대는 곧바로 윤 총장의 사의를 받아들였다. 윤 총장이 사의를 밝힌 지 1시간 20여 분 만에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 사의를 수용했다”고 짧게 입장을 밝혔다. 후속적인 입장이 전혀 없는 이번 사의 수용 발표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윤 총장에 대한 미움이 상당하지만 정치적으로 더 확대될 여지가 있어 윤 총장에 대한 비난을 곧바로 쏟아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자연스레 차기 총장 후보군에 관심이 쏠린다. 단연 앞서가고 있는 것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이기도 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사법연수원 23기)은 검찰 내 리더십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 총장 사의 표명 당일에도, 일부 대검 간부들이 ‘사의’를 반대하면서 제기한 이유도 이성윤 지검장 등 친 정권 인사들의 총장 임명으로 인한 검찰 혼란 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수원지검에서 수사 중이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관련 사건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건이 공수처로 넘어갔지만, 사건 피의자가 검찰총장으로 임명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선이다.
수개월 전만 하더라도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사법연수원 24기) 또한 ‘신임을 받고 있다’는 하마평이 돌았지만, 최근 대검 차장검사로 윤석열 총장의 참모 역할을 하면서 여권에 찍혔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검찰이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현 고검장들로 시선을 돌릴 가능성도 있다. 조상철 서울고검장이나 구본선 광주고검장, 강남일 대전고검 검사장, 장영수 대구고검 검사장(모두 사법연수원 23기) 등도 무난하게 총장직을 소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현재 고검장으로 있는 분들 모두, 정권과 각을 세우는 것을 먼저 할 스타일도 아니면서 동시에 검찰을 잘 다독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며 “검찰총장으로 앉힐 경우 중수청 관련 검찰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는 카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