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내 왕따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고 그때마다 상당히 화제가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학폭 폭로 흐름과 맞물리면서 그 여파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더욱 눈길을 끄는 부분은 비슷한 왕따 논란이 다른 걸그룹에서도 폭로될 수 있다는 점이다.
걸그룹 에이프릴의 전 멤버 이현주를 둘러싼 왕따 논란이 불거지면서 멤버 이나은이 모델로 활동하는 ‘포스트 콘푸라이트바’와 삼진제약 ‘게보린 소프트’ 광고가 중단됐다. ‘2020 SBS 가요대전 in DAEGU’에 참석한 이나은. 사진=SBS 제공
가요관계자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런 왕따 논란이 감춰진 걸그룹이 꽤 많다고 얘기한다. 가요계 데뷔와 스타 등극이라는 목적으로 모인 다양한 멤버들이 하나의 그룹으로 함께 지내다 보니 이런저런 마찰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기 그룹으로 뜨는 데 성공할지라도 이 가운데 몇몇 멤버만 스타로 살아남을 수 있어 내부 경쟁도 치열하다. 그런데 가요관계자들은 결국 뜨지 못하고 사라진 걸그룹들 사이 이런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고 한다. 걸그룹 전성시대 때는 1년에 수십 개의 걸그룹이 데뷔했지만 대부분 금세 사라졌다. 다음은 당시를 기억하는 한 중소 연예기획사 임원의 말이다.
“당시 중소 연예기획사들이 비용이 많이 드는 걸그룹을 거듭 데뷔시키는 이유는 걸그룹이어야 그나마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고 행사무대에서 설 수 있어서였다. 그 시절 솔로는 데뷔해도 설 수 있는 무대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급하게 멤버들을 모아 제대로 호흡을 맞추고 연습할 시간도 없이 싱글앨범을 만들어 데뷔시키는 일이 많았다. 데뷔곡이 히트를 못 치면 금세 활동이 중단됐는데, 향후 가능성이 보여 다음 음반을 준비하려고 해도 이미 멤버들 사이가 너무 험악해져 그냥 해체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과거 걸그룹 멤버로 데뷔했지만 두 달도 활동하지 못하고 그룹 해체의 아픔을 맛봤던 A 씨를 만났다. 그는 왕따를 당한 경험담도 털어놨다.
“나는 그 그룹의 원조 멤버는 아니고 두 번째 앨범 멤버로 들어갔다. 첫 앨범 발표 당시 멤버 가운데 두 명만 그대로이고 나머지는 모두 새로 합류했는데 와서 보니 회사가 원조 멤버 가운데 한 명만 밀어주고 나머지는 들러리였다. 또 다른 원조 멤버는 그 친구의 말을 잘 듣는 부하 같은 존재였다. 매니저들도 어쩌지 못하는 절대적인 존재였는데 내가 회사에 그런 부분을 문제제기 했다가 심하게 왕따를 당했다. 나도 그때 얘기를 글로 써서 어디다 올리면 난리가 날 것이다. 알고 보니 걔가 대표랑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 우리 걸그룹은 물론이고 그 연예기획사 자체가 걔를 스타로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셈이었고 그래서 매니저들도 설설 긴 것이었다. 그래서 원조 멤버 대부분이 팀을 나간 것이었고 우리도 잘될 리 없었다. 우리가 나가고 나중에 다시 멤버를 모아 또 앨범을 냈는데 역시 잘 안됐다. 만약 걔가 잘돼서 지금 연예계에서 활동하고 있다면 나도 폭로를 했을 수 있는데 당연히 그런 애가 스타가 될 리 없지 않겠나. 결국 대표한테 버림받아 불쌍한 처지가 됐다는 얘기를 들어 죗값은 받고 있는 것 같아 참고 있다.”
가요관계자들은 A 씨의 사례처럼 걸그룹 멤버 한 명이 소속사 관계자와 교제하는 경우 왕따가 더 심각해진다고 얘기한다. 대표나 임원, 내지는 매니저 등과 교제하는 멤버는 아무래도 다른 멤버들 위에 군림하게 되고 회사도 그런 멤버를 더 밀어주게 돼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최근 논란이 된 에이프릴 왕따 논란에서도 비슷한 폭로가 있었다. 이현주의 친구라는 이도 “멤버 가운데 한 명이 매니저와 연애 중이라 매니저가 왕따 사실을 알면서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A 씨처럼 뜨지 못하고 사라진 걸그룹에서 왕따 등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낸 이들은 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가해자들도 뜨지 못했고 연예인이 아닌 터라 별다른 폭로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중견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진이 각별히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무명가수와 트롯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 요즘 인기인데 둘 다 과거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이미 데뷔했던 이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다. 아예 신인이면 학창시절 학폭 문제 정도만 검증하면 되겠지만 잘 안 풀린 걸그룹 출신은 과거 활동 당시도 살펴봐야 한다. 학폭보다 무서운 왕따 폭로가 불거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