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한 분은 나 같은 병아리 법조인에게는 우상 같은 분이었다. 강직하고 청렴한 그는 실력마저 완벽해 법조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대법원장이 되지 못했다. 내가 이상해서 상관에게 왜 그렇게 됐느냐고 물었다. 나의 질문에 상관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대통령이 말 안 듣는 놈을 시키겠니? 아니면 정치적 상황을 잘 파악하고 말 잘 듣는 놈을 시키고 싶겠니”라는 반문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정계에 인연을 대고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기회를 살피고 권력 앞에 손을 비벼야 그런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통령의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던 사람으로부터 개인적으로 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엄상익 변호사
정치적 사건에 그런 뒷거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대법원장들은 사법부 내부에서는 왕이었다.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때였다. 시위대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했던 판사가 바로 강원도 오지의 법원으로 명령이 났다. 다른 판사가 발표한 자그마한 칼럼이 대법원장의 심기를 건드렸다. 법원 인사의 부당성을 지적했던 것이다. 그 판사는 한 시간 만에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해안 도시로 쫓겨 갔다.
대법원장은 판사들의 보직에 대해 절대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관료적인 수직적 권력체계는 법원장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대학 동기 중에 지방에서 판사로 오랫동안 근무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지역 여론이나 법원장 눈치를 보지 않았다. 그의 판사 재임용 심사 때였다. 위원회에 심사하기 위해 위원으로 참여한 친구가 있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친구가 은밀히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심사자료 안에 근무평정자료가 있는데 어떻게 된 게 법원장이 그 친구에게 상중하 중에서 계속 ‘하’만으로 평가했더라구. 그게 공정한지 의심이 되더라구. 그렇다고 그 친구가 뇌물을 먹을 친구도 아니고 말이야.”
법원장은 일반 판사들의 평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판사가 되는 실무공부를 하기 위해 법원에 1년 정도 있었던 적이 있었다. 단번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걸어갈 때도 서열대로 걷고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도 서열대로 앉지 않으면 큰 실수를 하는 셈이었다. 판사들은 의견을 제시할 때도 눈치를 보며 조심했다. 그게 내가 전에 보았던 법원의 분위기였다.
초임 판사들을 보면 법과 정의를 따지고 사명감에 차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변해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대법원장의 눈치를 살피고 정치적 사건을 맡으면 권력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야 법원장이나 폼을 잡는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것 같다.
예전에 대법관이 된 친구는 내게 “그 자리가 하루아침에 거저 오는 줄 알아? 미리미리 신경줄을 대고 있어야 오는 자리야”라고 말한 적도 있다. 지금 대법원 앞에는 ‘김명수 대법원장 물러가라’는 플래카드가 깃발처럼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그의 간단한 거짓말이 문제가 됐다. 탄핵소추가 된 판사가 미리 사직서를 냈는데 그걸 내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추궁을 받으니까 기억이 불분명하다고 했다. 그러다가 관련된 진술의 녹음파일 중에서 “정치적 상황도 살펴야 하고…”라고 말한 부분이 꼬리를 잡힌 것이다. 사법부가 감추고 있던 파충류의 꼬리가 드러난 것이다. 정파적 충성심이 아니라 사법부의 독립을 지킬 수 있는 대법원장이 나와야 한다. 대법원장이 정치적 상황을 살핀다는 자체로 이미 법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이 기울고 칼이 녹이 슬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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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