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는 KBO리그 입성과 동시에 27억 원의 연봉으로 ‘리그 연봉킹’ 자리에 올랐다. 사진=최준필 기자
KBO가 3월 4일 공개한 올해 선수단 연봉 현황에 따르면, 10개 구단 소속 선수 532명(신인과 외국인 선수 제외)의 평균 연봉은 1억 2274만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억 4448만 원에서 15.1% 줄어든 금액이다. 전체 연봉 총액도 작년(738억 7400만 원)보다 86억 8000만 원 적은 652억 9000만 원으로 나타났다.
KBO리그 선수 평균 연봉은 2019년 1억 5065만 원으로 역대 최고액을 찍은 뒤 2년 연속 하락세다. 최근 두 시즌 사이 고액 연봉 선수 여러 명이 은퇴하거나 해외에 진출하면서 리그를 떠난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추신수-이대호 계약이 만든 지각변동
추신수의 KBO리그 등장과 함께 연봉과 관련한 여러 지표에 지각변동이 생겼다. 메이저리그 아시아 선수 통산 최다 홈런(281개) 기록 보유자인 추신수는 KBO리그에 막 발을 내디딘 신세계 야구단의 새출발을 상징하는 빅스타다. 2017년부터 4년간 KBO 연봉 1위 자리를 지킨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가 추신수에게 왕관을 넘긴 것 자체가 상징적이다.
이대호는 일본과 미국 프로야구 생활을 끝내고 친정팀에 복귀하면서 4년 총액 150억 원(계약금 50억 원, 연봉 각 25억 원)에 계약했다. 다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올해는 2년 총액 26억 원(계약금 8억 원, 연봉 각 8억 원, 옵션 각 1억 원)에 사인해 공동 8위까지 내려앉았다.
두 선수의 계약 결과에 따라 포지션별 최고 연봉 선수들도 바뀌었다. 외야수 연봉 1위는 당연히 추신수다. 외야수 부문 2위에 오른 LG 트윈스 김현수(10억 원)가 추신수보다 17억 원 적다. 지난해 연봉 20억 원으로 1위였던 롯데 손아섭은 올해 5억 원으로 깎여 외야수 부문 공동 8위로 떨어졌다. 삭감 폭이 큰 건 손아섭의 전략적 선택이다. 올해 말 FA 자격을 재취득하는 그는 이적시 보상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계약 마지막 시즌 연봉을 일부러 크게 낮춰 사인했다.
외야수 3위는 KIA 타이거즈와 FA 잔류 계약을 한 최형우(9억 원). 지난해 2위에서 한 계단 내려왔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고 NC 다이노스에 남은 나성범(7억 8000만 원)이 4위다. 올해를 끝으로 FA 자격을 얻는 두산 베어스 김재환은 손아섭과 반대로 ‘예비 FA 프리미엄’을 얻었다. 구단 입장에선 김재환의 올해 연봉을 최대한 올려야 타 구단 이적시 금전적 보상이라도 많이 받을 수 있다. 7억 6000만 원을 받게 된 김재환은 외야수 연봉 톱5에 처음 진입했다. 지난해 5위(8억 원)였던 LG 박용택이 은퇴하고 빈 한 자리를 곧바로 꿰찼다.
외야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 1위 선수의 연봉은 지난해보다 줄었다. 내야수 연봉 1위는 15억 원을 받는 키움 히어로즈 박병호다. 이대호가 내야수 부문 공동 4위로 내려가면서 지난해 2위 박병호가 자연스럽게 최고 자리로 올라섰다. 지난해(20억 원)보다 5억 원 줄었지만 여전히 전 구단 내야수 중 최고 연봉을 자랑한다. 신세계 야구단 간판타자 최정은 지난해와 같은 12억 원을 받아 3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
내야수 연봉 순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두산 허경민이다. 지난해 내야수 13위(4억 8000만 원)였던 그가 올해 3위(10억 원)로 뛰어올랐다. 지난해 말 친정팀 두산과 4+3년 최대 85억 원에 FA 계약을 한 결과다. 김재환을 넘어 팀 내 최고 연봉 선수로 등극했고, 지난해 내야수 5위였던 NC 박석민을 밀어내고 새로운 톱5로 올라섰다. 허경민이 프로야구 선수로서 새로운 전성기를 연 모양새다. 지난해 12억 원으로 최정과 공동 3위였던 KT 위즈 황재균은 역시 FA 계약 내용에 따라 연봉이 8억 원으로 삭감됐다. 그래도 여전히 팀 최고 연봉 선수다. 그는 이대호와 내야수 공동 4위를 이뤘다.
양의지는 FA 계약 조건에 따라 지난해 20억 원에서 올해 15억 원으로 연봉이 하락했지만 여전히 포수 연봉 1위 자리를 지켰다. 사진=임준선 기자
#포수 양의지만 포지션 연봉 1위 유지
추신수, 이대호와 동기생인 삼성 라이온즈 오승환은 올해 11억 원으로 KBO리그 투수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다. 오승환은 지난해 연봉 12억 원보다 1억 적은 금액에 계약했지만, 투수 연봉 순위는 2위에서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KIA에서 연봉 23억 원을 받은 양현종이 텍사스 레인저스와 스플릿 계약(메이저리그 연봉과 마이너리그 연봉에 차등을 두는 계약)을 하고 미국으로 떠나면서 오승환의 순위도 한 계단 상승했다.
투수 연봉 2위는 한화 이글스 마무리 정우람(8억 원)이다. 지난해와 같은 금액을 유지했는데도 순위는 4위에서 2위로 올라갔다. 지난해 10억 원으로 투수 3위였던 LG 트윈스 차우찬은 공동 5위로 떨어졌다. 4년간의 FA 계약이 끝난 뒤 올해 연봉 7억 원이 삭감된 3억 원에 잔류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NC 원종현, 두산 유희관, 신세계 김상수와 문승원 등이 올해 차우찬과 같은 연봉을 받아 공동 5위를 형성했다.
키움 마무리 조상우는 투수 연봉 3위에 올랐다. 금액은 3억 3000만 원으로 2위 정우람과 4억 7000만 원 차이가 난다. 그 뒤를 신세계 야구단 박종훈(3억 2000만 원)이 잇고 있다. 국가대표 에이스급 투수들이 해외로 떠난 뒤 투수 연봉 1~3위를 모두 불펜 투수가 차지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투수 4위 박종훈이 선발 투수 중엔 최고 연봉자다.
포수는 유일하게 최고 연봉 선수의 얼굴이 바뀌지 않은 포지션이다. NC 양의지가 15억 원으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양의지는 내야수 1위 박병호와 함께 추신수에 이은 타자 연봉 공동 2위에도 올라 있다. 포수 포지션은 심지어 연봉 2위와 3위의 이름도 작년과 동일하다. 2위는 신세계 야구단 이재원(11억 원), 3위는 삼성 강민호(5억 원)가 2년 연속 순위를 유지했다. 지난해 단독 4위였던 키움 이지영(3억 원)은 LG 포수 유강남이 올해 3억 원을 받게 되면서 공동 4위를 이루게 됐다.
#추신수가 신세계 연봉에 미친 영향
신세계 야구단은 올해 10개 구단 중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팀으로 집계됐다. 구단 등록 선수 61명의 평균 연봉이 무려 1억 7421만 원. 지난해 1억 4486만 원에서 20.3% 증가한 금액이다. 전 구단에서 가장 높은 인상률이고, 올해 전체 평균 연봉보다 5200만 원가량 더 많다.
무엇보다 올해는 신세계 야구단과 KT를 제외한 8개 구단의 평균 연봉이 지난해보다 줄었다. 창단 최초로 통합 우승을 차지한 NC조차 평균 연봉은 1억 6581만 원에서 1억 4898만 원으로 10.2% 낮아졌을 정도다. 양현종이 떠난 KIA는 1억 4657만 원에서 9030만 원으로 무려 38.4% 떨어졌고, 롯데(1억 6393만 원→1억 235만 원·37.6% 하락), LG(1억 6148만 원→1억 2898만 원·20.1% 하락), 한화(1억 1198만 원→7994만 원·28.6% 하락)도 큰 폭으로 줄었다. 창단 후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KT 정도만 지난해 평균 1억 40만 원에서 올해 1억 711만 원(6.7% 인상)으로 소폭 올랐을 뿐이다.
따라서 지난해 정규시즌 9위에 머문 신세계 야구단의 평균 연봉 인상률은 오로지 ‘추신수의 27억 원’이 만든 영향으로 보인다. 실제로 추신수를 제외한 신세계 야구단 소속 선수 55명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보다 1700만 원 정도 낮은 1억 2829만 원에 불과하다. 선수단 연봉 총액도 다르지 않다. 10개 구단 중 신세계 야구단만 총액 100억 원에 육박(97억 5600만 원)한다. 등록 선수 숫자가 56명으로 같은 NC(83억 4300만 원)와 삼성(73억 5700만 원)보다 훨씬 높다. 이 수치 역시 ‘추신수 효과’다.
#이정후의 연차별 최고 연봉 행진은 어디까지?
‘베이징 키즈’들은 여전히 무서운 속도로 약진하고 있다. KBO리그 20대 선수 중 최고 스타로 꼽히는 키움 이정후는 5년차가 된 올해 연봉 5억 5000만 원을 받는다. 종전 5년차 최고 연봉 선수는 올해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입단한 팀 선배 김하성. 그는 5년차였던 2018년에 3억 2000만 원을 받았다.
이정후의 페이스는 김하성보다 더 가파르다. 4년차인 지난해 이미 3억 9000만 원을 받아 김하성의 5년차 최고 연봉 기록을 미리 넘어섰다. 올해 연봉도 김하성의 종전 최고 금액보다 두 배 넘게 많다. 이미 경쟁자가 없는 ‘돈길’을 독야청청 걷고 있는 셈이다. KBO리그 시절 류현진(당시 한화·현 토론토 블루제이스)이 그랬듯, 이정후도 연차별 최고 연봉을 매년 경신하고 있다. 2년차 연봉 기록만 1년 후배 강백호(KT)에게 내줬을 뿐, 3년차(2억 3000만 원)부터 5년차까지 모두 역대 1위 자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부상과 같은 돌발 변수가 없는 한, 6년차와 7년차 최고 연봉 기록도 이미 따놓은 당상이다. 역대 6년차 최고 연봉은 2011년 류현진의 4억 원, 7년차 최고 연봉은 지난해 김하성의 5억 5000만 원이다. 이정후의 올해 연봉은 이미 7년차 최고 연봉과 타이 기록이다. 다만 그 이후의 기록은 미지수다. 이정후가 KBO리그에서 7년을 뛰면, 해외 진출 가능 자격을 얻는다. 많은 야구 관계자가 그의 해외 진출을 점치고 있다. 이정후 역시 확답은 하지 않았지만, “실력이 준비가 돼 있다면 도전할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절친한 선배 김하성의 활약에 따라 남은 세 시즌 동안 메이저리그로 마음이 기울 가능성도 충분하다.
물론 이정후가 한국에 남아 8번째 시즌을 치르게 된다면, 연차별 연봉 기록 행진은 식은 죽 먹기로 이어갈 수 있다. 역대 8년차 최고 연봉 역시 이정후의 연봉과 같은 5억 5000만 원(2019년 NC 나성범)이다. 이정후는 이미 그 고지에 올라 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