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주소만 해도 그렇다. 혼자 쓰는 공간도 아니고 며칠에 한 번씩 들르는 친구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들여놓은 것이 고작인 처지에 주소가 세 번이나 바뀌는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이 사무실이 있는 빌딩의 현주소는 곧 폐기처분 운명에 놓인 지번주소 ‘서울 마포구 도화동 몇 번지’다. 그러나 이 빌딩을 지은 건물주도 정문 기둥에 놋쇠로 만든 ‘도로 명 주소’를 박아놓았다. ‘마포로 2X6’ 도로이름과 숫자만 새긴 문패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그 놋쇠 문패가 쓸모없이 되고 말았다. 마포로가 마포대로로 바뀌고 번지수도 달라진 새 문패가 나붙었기 때문이다. ‘마포로 2X6’에서 ‘마포대로 5X’로 바뀐 것이다. 도로이름만 바뀐 게 아니라 번지수도 두 자리 숫자로 바뀌었으니 놋쇠에다 새긴 문패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서울시내 도로 중 상당수가 대로로 바뀐 것은 ‘도로 폭이 40미터가 되거나 왕복 8차로 이상인 도로는 대로라고 표기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폭이 12미터 이상 40미터 이하거나 2~7차로이면 그냥 ‘로’(路)라고 부르고, 그보다 좁은 도로는 그냥 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울역에 이르는 태평로는 도로 폭이 50미터에 이르는데도 세종대로에 흡수·통합되면서 60여 년 만에 이름마저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반포로, 서초로, 마포로가 하루아침에 반포대로, 서초대로, 마포대로로 승격한 것도 바로 그 같은 방침에 따라 도로이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워낙 다리나 도로이름에 큰 대(大)자 붙이기 좋아하는 대한민국이다 보니 한강에 놓인 스물 대여섯 개 교량 중 이름에 큰 대자가 들어가지 않는 다리는 광진교와 잠수교뿐이다.
주소체계를 지번중심에서 도로중심으로 바꾸기로 한 정부방침이 확정된 것은 이미 14년 전의 일이다. ‘도로 명 주소 등 표기에 관한 법률’이 공포된 것이 2006년 10월이었고 그 이듬해에 시행령과 함께 주소체계 개편 시범사업이 시작되었다. 2012년부터 전면실시하게 되면 주소 한 번 바꾸는 데 15년이 걸리는 셈이다. 문제는 전면실시 2년을 앞둔 지금까지도 도로이름이나 번지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행정안전부는 앞으로 국민의견 수렴을 거쳐 도로 명 주소를 내년 7월까지 확정고시하고 2012년부터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민의견 수렴을 거친다는 것은 도로명칭이나 번지수가 또 다시 바뀔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한 지붕 밑에 세 개의 문패가 달렸던 것이 사정에 따라서는 네 개로 늘어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도로 이름을 두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이 엇갈려 차일피일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새 명함을 찍는 일은 당분간 보류해야 할 것 같다.
이광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