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김형 대우건설 사장이 경기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김형 대우건설 사장은 올해 6월 임기가 만료된다. 4월경 사장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가 후보를 추려낼 전망이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 체제가 들어선 이후 대우건설에서 사장이 연임한 사례는 없다. 서종욱 사장이 2011년 연임에 성공했지만 그의 첫 임기는 채권단 관리 체제 전인 2007년부터 시작됐다.
김형 사장의 연임을 전망하는 배경 중 하나는 안정감이다. 김형 사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10개월간 사장 직무대행 체제로 대우건설을 맡아 3년간의 항해를 무난하게 마쳤다는 평가다. 김형 사장은 선임 당시 반발하던 노동조합에 직접 대화를 제의하고 갈등을 봉합했다. 노조는 “김 사장 내정자와 면담한 결과 그동안 노조가 제기한 의혹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전임 사장들은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서종욱 사장은 잇단 수사에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2013년 사회 고위층 성접대 관련 ‘윤중천 게이트’와 ‘4대강 사업 담합 수주’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나오면서다. 서 사장은 경찰의 대우건설 압수수색 하루 전날 사표를 제출했다. 서 사장은 윤중천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4대강 담합 관련해서는 재판부로부터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치권 낙하산 인사 의혹도 불거졌다. 2016년 6월 대우건설 사추위가 박영식 현 사장과 이훈복 전무를 최종 후보로 확정했다. 그런데 돌연 외부인사를 포함해 재공모를 진행했고, 박창민 고문이 단독 후보로 추천돼 8월 사장에 선임됐다. 대우건설 노동조합이 ‘정치권 낙하산’이라며 강력히 반대했지만 박창민 고문의 사장 취임을 막지 못했다. 이듬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재판과정에서 최순실 씨가 인사에 개입한 정황이 실제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대우건설 노조는 정부에 인선 절차 조사를 요구하고 산은에 대한 감사청구를 감사원에 제기했다. 노조는 산은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대우건설 매각을 중단하고 최순실의 낙하산 사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결국 박창민 사장은 1년 만에 사퇴했다.
채권단은 이후 BOA메릴린치와 미래에셋대우를 주관사로 선정, 대우건설 지분 50.75%를 전량 매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우건설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호반건설은 해외사업에서 예상치 못한 손실을 발견하고 인수를 철회했다.
산은은 올해 들어 대우건설 재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말 이대현 KD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대우건설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돼 회사 경영에 직접 참여한다. 대우건설의 재무제표 개선을 통해 매각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대현 대표는 산은 수석부행장 출신으로 금호타이어 매각을 직접 진두지휘하는 등 구조조정 전문가로 꼽힌다.
앞서 2019년 7월 산은은 대우건설을 구조조정 전문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에 넘겼고, 향후 재매각에 대비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9년·2020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도 기업가치를 최대한 높이는 작업을 진행한 뒤 대우건설 재매각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KDB인베스트먼트 고위관계자는 “매각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적정한 가격에 대우건설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원매자에게 넘겨주는 게 우리 임무”라며 “시기보다는 시장에서 수용될 정도로 기업가치가 올라갔는지가 중요하다.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매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 대표가 대우건설의 실적을 견인한 점도 연임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지난해 연결기준 대우건설 영업이익은 5583억 원으로 전년보다 53.3%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6.9%로 최근 5년 이래 가장 높았다. 신규수주는 13조 9126억 원으로 전년 대비 30.8% 늘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 강조한 해외사업 정비도 성공적으로 따냈다. 대우건설은 주요 해외 실적은 △나이지리아 LNG Train7(2조 1000억 원) △이라크 알포 항만공사(2조 9000억 원) △모잠비크 LNG Area1(5000억 원) 등이다. 부채비율은 2016년 365.1%에서 지난해 248%까지 낮췄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기업가치를 최대한 높이는 작업을 진행한 뒤 대우건설 재매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진=이종현 기자
대우건설이 4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자 주가도 뛰었다. 지난해 2000원대 초반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2월 들어 6000원대로 올라섰고 최근에는 5000원 대 후반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연임에 대한 우호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매각에 앞서 기업가치를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에 현장에 강점이 있는 김형 대표보다는 재무통이 새롭게 사장에 오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우건설 내부 인사 중에 신임 사장으로 낙점받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이와 함께 잇따른 산재를 두고 김형 대표의 책임론도 나온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연도별 30대 건설사별 산재사고 현황’에 따르면, 대우건설 산재로 인한 피해자 수는 대우건설이 859명으로 2위를 차지했다. 사망자 수는 22명으로 불명예스러운 1위를 차지했다.
지난 2월 23일에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댐 취수탑 내진 공사장 현장에서 수중 에어리프팅 작업 중 흙더미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잠수부 1명이 숨지는 등 인명피해가 발생해 경찰이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앞서 2018년 대우건설이 턴키방식(설계·시공 일괄입찰)으로 입찰한 현장이다. 사업비 규모는 1164억 원에 이른다.
대우건설 한 관계자는 “대표, 본부장들이 수시로 현장을 돌아다니며 안전점검을 한다. 사장은 1년에 5번 이상 안전점검에 나가고, 본부장들은 훨씬 더 많이 다닌다”며 “청도 운문댐 사고로 내부에서는 대표, 본부장들이 현장 안전점검 나가도 사고를 막긴 어려운 것 같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주목되는 것은 국민연금의 움직임이다. 채권단이 지분 50.75%를 확보하고 있지만 국민연금도 최근 지분율을 확대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국민연금은 지난 2월 2일 공시를 통해 대우건설 지분율이 종전 7.11%에서 8.14%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올해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 2월 24일 국민연금은 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비공개 대화대상 기업’을 선정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중점관리사안에 산재와 기후변화를 포함하는 안을 논의해 오는 6월까지 도입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국민연금은 ‘문제기업’에 대해 ‘비공개 대화대상 기업→비공개 중점관리 기업→공개 중점관리 기업→주주제안’ 등 단계별로 수탁자 책임 활동을 진행한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