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전문회사와 초대형 유통업체들이 또다시 신용카드 수수료 문제로 격돌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신용카드사들이 오는 9월부터 이마트, 롯데마트 등 유통업체 가맹점들을 대상으로 한 수수료율을 현행 1.5%에서 2%, 혹은 2%에서 2.5%로 0.5% 포인트 올리기로 결정을 하면서 시작됐다.
신용카드사들은 이미 이 같은 내용의 인상안을 자체 확정하고 해당 가맹점들에게 통보한 상태다. 이에 따라 오는 9월부터 이마트 등 대형할인점에서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고 카드로 결제하면 신용카드사들은 과거보다 0.5%의 수수료를 더 챙기게 된다. 신용카드사들과 유통업체는 이미 지난 2002년에도 이 문제로 한판 붙었었다. 당시 비씨카드, 국민카드 등 카드업체들은 수수료율을 올렸다가 유통업체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혀 무효화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신용카드 회사들은 더 이상 현행 수수료율로는 경영적자를 메울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사활을 건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에 대항해 유통업체들 역시 현행 1.5%의 수수료율이 2~2.2%까지 오르면 수익이 크게 줄어들 게 뻔해 기를 쓰고 방어에 나섰다.
양측의 대결은 공정위나 재경부 등 관련 정부 부처까지 나서는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각종 소비자 단체의 장외집회까지 예상되는 등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신용카드사들의 수수료 인상 문제는 단순히 가맹점과 카드회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통회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그대로 고수하기 위해 전략을 편다면 카드수수료 인상률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될 위험성이 높다는 점에서 물가불안의 한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신용카드사들은 지난 2000년 가맹점들의 수수료율을 인상했고, 이것이 대부분 업체의 물건 값 인상으로 전이돼 사실상 소비자 가격만 올리는 도미노 현상을 불러 오기도 했다. 하지만 카드사들도 카드사용사들의 신용대란으로 고리의 현금대출에 대한 여론의 비난과 금융당국의 규제강화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빠져 있다. 금융당국에선 신용판매 부분에 치중할 것을 요구하지만 카드사들의 수익 대부분은 현금대출에서 이뤄지는 기형적인 구조여서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만약 금융당국의 권장대로 신용판매 부분을 늘리려면 이 부분의 수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신용카드사들의 입장이다.
반대로 유통업체 입장에선 경제활동 인구의 90% 정도가 신용카드를 쓰고 있는 데다, 유통업체 매출의 80%가 카드결제로 이뤄지는 것을 감안하면 수수료 문제는 유통업체의 목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용카드사들은 신용카드사들대로, 대형 유통업체는 유통업체대로 이번 싸움에서 물러설 수 없는 이유.
이렇게 이해가 첨예하자 유통업체들은 소비자들의 권익에 호소하고 있다. 카드 수수료율을 올리면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는 유통업체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박리다매’라는 할인점의 기본입장에서 카드 수수료까지 오를 경우 결국 상품 가격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싸움의 첨병으로 나선 곳은 할인점 1위인 신세계 이마트와 비씨카드. 8월 초 개점한 이마트 지점에 대해 비씨카드가 기존 1.5%의 수수료율을 0.5% 인상한 2%를 요구하자 이마트는 가맹점 계약을 해지했다. 이어 업계 3위인 롯데마트도 8월에 개점하는 장유점과 화성점에 대해서 비씨카드가 수수료율 인상을 통보하자 계약을 해지했다.
이마트나 롯데마트의 기존 점포에서는 물론 정상적으로 비씨카드의 결제가 이뤄지고 있다. 적용 수수료율은 기존과 같은 1.5%. 하지만 비씨카드가 9월부터 수수료율을 2%로 올리겠다고 공식화한 상태이고, 국민카드 역시 2.2%대로 올리겠다고 각 유통업체에 공문을 발송해 놓은 상태다.
이마트 신규점과 롯데마트 신규점의 비씨카드 가맹점 계약 해지는 본격적인 수수료율 인상전에 앞서 벌어진 힘겨루기였던 셈이다. 때문에 카드사들이 통보한 수수료율 인상 시기인 9월 초부터 비씨, 국민, LG 등 대형 카드사들의 카드를 할인점에서 쓸 수 없는 또 다른 ‘카드대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카드사들이 신용판매의 수수료율을 올리겠다는 입장이 워낙 확고한 탓이다. 이들은 이미 지난 6~7월부터 수수료 인상안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분쟁의 총대를 멘 비씨카드의 경우 할인점 업계 1위인 이마트에서만 작년 한해 동안 소액결제와 낮은 가맹점 수수료로 2백5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자금조달 비용 0.61%(조달금리 연 7.3% 기준), 카드거래 승인 대행업체 수수료 등 매출 청구 처리 비용 1.05%, 부가서비스 제공 등 서비스 비용 0.64% 등 인위적으로 조정하기 힘든 결제건당 고정비용이 2.3%에 달해 현행 2%로는 장사를 할수록 손해라는 입장이다. 때문에 소액결제 비중이 높은 할인점 수수료를 2.3% 수준으로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 비씨카드는 근거로 지난 7월 동안 발생한 5천3백24만 건의 결제건수를 분석한 결과 5만원 미만의 소액 결제 건수가 3천4백89만 건(65.5%)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중 이마트 등 할인점에서 이뤄진 결제가 13.6%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때문에 할인점에 대한 수수료 인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마트의 경우 비씨카드가 9월부터 ‘일방적’으로 수수료를 올릴 경우 즉시 가맹점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마트는 이번 사태에 ‘카드사 수수료 인상 요구에 대한 이마트 입장’이란 성명을 통해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 인상 방침은 카드사 자체의 방만한 경영으로 인한 부실을 가맹점과 소비자에게 떠넘기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이마트는 “할인점이 저비용구조를 바탕으로 서민경제와 직결된 생필품을 최저가로 판매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수수료 인상은 결과적으로 상품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소비자 부담가중과 물가인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인상이나 카드사의 비용 증가 등 카드 수수료 인상이 불가피한 환경변화가 없음에도 비씨카드가 신규점포는 물론 기존 점포까지 오는 9월부터 1.5%에서 2.5%로 수수료를 인상하려고 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주장.
할인점들은 카드사들의 수수료 인상요구는 카드부실을 초래한 방만한 경영에 대한 책임을 외부로 전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마트에선 “수수료 인상을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계열사에 전업카드사인 롯데카드와 할인점인 롯데마트를 모두 두고 있는 롯데그룹 계열사의 반응. 롯데카드는 수수료율 인상에 앞장서고 있지는 않지만 카드사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고, 롯데마트는 수수료율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